해맑은 너를 증오하지만 동경한다.
너는 그날 유달리 해맑았다. 그런 너의 삶이 부러워 미워질 정도로.
너와 다르게 난 스치는 바람에도 균형을 잡지 못할 만큼 감정의 소용돌이 가운데 서있었다. 우울했다. 힘들었다. 해맑은 너에게 나의 우울을 토해내자니 약점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망설여졌다. 그러나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너에게 얘기했다. 너의 경청을 기대하지도, 너의 공감을 원하지도 않았다. 그런 건 사치였다. 단지 얘기하고 싶었고 끄덕임 한 번이면 됐다.
그러나 돌아오는 너의 대답은 잊을 수 없다. 몇 년이 흐른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날 너와 내 옷차림, 날씨, 카페의 분위기까지 모두. 빨간색 스웨터를 입은 너,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던 너. 회색빛 재킷을 입은 나, 차가운 커피 한 잔을 마시던 나.
“나는 행복해.”
나의 얘기를 들은 넌 자신은 행복하다고 했다.
난 뭘 기대했던 걸까. 나에게 해로울 만큼 해맑은 너에게 뭘 바라고 기대했던 걸까. 넌 원래 그런 아이였는데. 너에게 나의 말은 카페에서 원두를 가는 소리보다 못했으며 문이 열릴 때 딸랑거리는 종소리보다 가벼운 소리였다.
안다, 너의 의도가 섞이지 않았다는 걸. 나와 비교해 더 나은 너의 삶을 자랑한 게 아니라는 걸.
넌 티 없이 순수하고 맑은 너의 모습을 날카로운 화살로 만들어 너도 모르게 날 향해 쏴버린 거다. 그러나 난 아무것도 모르고 웃고 있는 너의 모습이 더 날 아프게 했다. 네가 그렇게 해맑게 자라는 동안 나는 그간 수 없는 고난을 겪었다는 증거였으니까. 그렇게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며 살 수 있는 인생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는 걸까. 나는 태생적으로 그러지 못했다. 싫은 소리 한 번 못 하고 거절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난. 모든 이들에게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기에 내 기분보다 남의 기분이 먼저였다. 그러나 널 보면 볼수록 나는 너처럼 살고 싶었다. 너의 티 없이 해맑은 모습을 증오하면서도 동경하는 내 모습이라니. 참 어렵다.
아, 인생은 너처럼 살아야 하는 걸까? 내가 바보인 건가.
사실, 난 아직도 모르겠다. 어쩌면 평생의 숙제일 수도 있다. 티 없이 해맑은 너처럼 자신이 먼저여야 할지. 아니면 타인의 감정이 먼저일지.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학교에 가도, 직장에 가도, 심지어 집에서도. 그 관계 속에서 나는 오늘도 외줄 타기를 한다. 너와 나 사이에 그어진 줄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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