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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 Jan 08. 2020

부러진 옷걸이

부러진 것들에 미련을 갖지 말자

나가는 곳


  내 방 왼 편에는 터지기 일보 직전인 옷장이 있다. 입는 옷, 안 입는 옷 구분 없이 잔뜩 걸려있다. 괜찮다. 이미 미니멀리스트는 포기한 지 오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 뒤집어엎는데도 어느 순간 보면 옷걸이들이 엉켜 폭발 직전의 상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두꺼운 옷을 한 번 꺼내려면 전쟁이다. 옷에 치여, 다른 옷걸이에 걸려 잘 나오지 않는다. 옷을 계속 당기다 보면 옷걸이가 부러지기 일쑤이다. 그러나 부러지지 않는 옷걸이들도 있다. 내가 당기면 당기는 대로 놓으면 놓는 대로 잘 구부러지는 옷걸이들. 사실, 무작정 당기는 것보다는 차근차근 꺼내는 게 정답이긴 하다. 알지만 급하다 보면 안 된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출근 2분 전, 부랴부랴 옷장을 열어 코트를 꺼냈다. 이 코트가 걸려있는 옷걸이는 두꺼운 편이어서 다른 옷걸이에 걸리지 않고 잘 나오는 편이었는데도 유달리 그날은 엉켜 나오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아차, 옷걸이가 부러지고 말았다. 일단 급하게 코트를 입고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향했다.


  퇴근하고 방바닥에 널브러진 옷걸이 잔해들을 보니 오늘 또 하나를 해 먹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어서 치우고 피곤한 몸을 뉘고 눈을 감자 문득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붙잡고 있는 모든 미련들이 부러진 옷걸이와 같다고. 이미 부러져 다시 고쳐 쓸 수도 없는 걸 붙여보겠다고 이리저리 풀칠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나는 인간이다. 신이 아니다. 그러기에 모든 걸 잘할 수는 없다. 그런 능력은 없다. 나는 한때 모든 걸 잘하고 싶어 하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몇 해가 지난 지금, 내가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마치 부러진 옷걸이처럼. 이미 부러져있는 걸 내가 붙잡고 있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마음만 아플 뿐. 이미 부러져버린 것들과 마음은 어서 보내주자. 슬퍼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어찌 부러진 마음을 놓아주는 게 가슴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맘껏 그리고 충분히 슬퍼하라. 그러나 슬픔에 잠겨 부러진 옷걸이만을 바라보며 아파하기에는 아직 당겨질 옷걸이들이 많이 있다.


  새 옷걸이들과 내가 당기는 대로 구부러지는 옷걸이들만 바라보며 살기로 했다. 부러진 옷걸이는 버리기로 했다. 그러나 몇 번 당겨보고 부러질 것 같다고 겁먹어 놓아 버리겠다는 게 아니다. 온 힘을 다해 이리저리 여러 번 당겼을 때 부러진다면 후련하게 보내주고 당길 새로운 무언가를 찾겠다는 것이다. 분명 세상에는 당기는 대로 날 따라와 줄 옷걸이들이 많다고 확신한다. 나는 이제 부러진 마음을 보낼 출구를 향해 갈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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