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곰 Jan 04. 2020

외줄 타기

해맑은 너를 증오하지만 동경한다.



너는 그날 유달리 해맑았다. 그런 너의 삶이 부러워 미워질 정도로.

너와 다르게 난 스치는 바람에도 균형을 잡지 못할 만큼 감정의 소용돌이 가운데 서있었다. 우울했다. 힘들었다. 해맑은 너에게 나의 우울을 토해내자니 약점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망설여졌다. 그러나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너에게 얘기했다. 너의 경청을 기대하지도, 너의 공감을 원하지도 않았다. 그런 건 사치였다. 단지 얘기하고 싶었고 끄덕임 한 번이면 됐다.

그러나 돌아오는 너의 대답은 잊을 수 없다. 몇 년이 흐른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날 너와 내 옷차림, 날씨, 카페의 분위기까지 모두. 빨간색 스웨터를 입은 너,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던 너. 회색빛 재킷을 입은 나, 차가운 커피 한 잔을 마시던 나.    

“나는 행복해.”    

나의 얘기를 들은 넌 자신은 행복하다고 했다.

난 뭘 기대했던 걸까. 나에게 해로울 만큼 해맑은 너에게 뭘 바라고 기대했던 걸까. 넌 원래 그런 아이였는데. 너에게 나의 말은 카페에서 원두를 가는 소리보다 못했으며 문이 열릴 때 딸랑거리는 종소리보다 가벼운 소리였다.    


안다, 너의 의도가 섞이지 않았다는 걸. 나와 비교해 더 나은 너의 삶을 자랑한 게 아니라는 걸.

넌 티 없이 순수하고 맑은 너의 모습을 날카로운 화살로 만들어 너도 모르게 날 향해 쏴버린 거다. 그러나 난 아무것도 모르고 웃고 있는 너의 모습이 더 날 아프게 했다. 네가 그렇게 해맑게 자라는 동안 나는 그간 수 없는 고난을 겪었다는 증거였으니까. 그렇게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며 살 수 있는 인생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는 걸까. 나는 태생적으로 그러지 못했다. 싫은 소리 한 번 못 하고 거절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난. 모든 이들에게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기에 내 기분보다 남의 기분이 먼저였다. 그러나 널 보면 볼수록 나는 너처럼 살고 싶었다. 너의 티 없이 해맑은 모습을 증오하면서도 동경하는 내 모습이라니. 참 어렵다.

아, 인생은 너처럼 살아야 하는 걸까? 내가 바보인 건가.  


사실, 난 아직도 모르겠다. 어쩌면 평생의 숙제일 수도 있다. 티 없이 해맑은 너처럼 자신이 먼저여야 할지. 아니면 타인의 감정이 먼저일지.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학교에 가도, 직장에 가도, 심지어 집에서도. 그 관계 속에서 나는 오늘도 외줄 타기를 한다. 너와 나 사이에 그어진 줄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고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