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 두 번째 여자
여름이다. 그러니까 아직 해가 저쪽 산꼭대기에 걸터앉아 저물지 못한 다 늦은 오후다. 도로는 자동차 행렬로 꼬리의 꼬리를 물고 있고 그 꼬리에서 뿜어대는 열기와 낮 동안 덥혀진 아스팔트와 도시를 감싸고 있는 눅눅한 습기가 한데 어우러져 후덥지근한 여름 가운데였다.
재원은 학교 뒤편 주차장에서 차의 시동을 걸었다. 3개월 전에 자동차 세일즈를 한다던 대학 동창 놈에게서 억지이다 싶게 넘겨받은 것이다. 숨이 턱턱 막히던 차 안은 강으로 틀어놓은 에어컨 때문에 금방 차갑게 바뀌었다. 자신을 둘러싼 이 모든 환경들에 재원은 여전히 가끔씩 낯섦을 느끼곤 한다. 혹은 두려움일는지도 모른다. 1년 전만 해도 대각선으로 누워야 겨우 다리를 뻗을 수 있는 고시원에 비하면 지금은 왕국의 삶인 셈이다. 그랬던 재원이다. 방 두 칸짜리 아파트와 자동차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다. 그것은 사실이다. 대학을 다니던 내내 아르바이트를 단 한 달도 쉴 수 없었던 게 그의 현실이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는 아파트 평수만 절반 이상으로 줄어드는 그런 간단한 문제에서 끝나지 않았다.
「오빠, 아빠 좀 어떻게 해봐? 아니면 오빠 니가 우리 좀 데려가라. 응?」
「울지만 말고, 자세히 설명을 해봐. 여전히 술만 드시고 계셔?」
「몰라. 나도 알바하느라 정신없는데, 엄마는 울기만 한단 말이야」
어머니는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문제의 심각성을 회피했고, 아직 고등학생이던 여동생도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아버지와 관계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담보와 보증들, 재원은 가족만 생각하면 마음 한쪽이 허물어져 내렸다. 그것은 좀처럼 다시 세워지지 않았고, 결국은 술을 마시고 억지로 잠이 들거나 미친 듯이 고시원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을 뛰어야만 했다.
재원은 가족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아예 버리겠다는 심사는 아니고 잠시 없는 것처럼 지내야만 자신이 숨을 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때도 있었다. 가족을 등진다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지만 죽을 만큼 힘든 것도 아니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지금도 월급의 절반을 뚝 잘라서 보내지만, 언감생심 고시원시절을 생각하면 낙원이나 다름없는 생활이었다. 재원은 깊은 심호흡을 하며 핸들을 움켜쥔다.
자동차 속에서 퀸이 속삭이듯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된 차와 13평짜리 아파트,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준 그녀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까. 재원은 첫 번째 여자인 윤희를 떠올렸다.
2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모든 건 칼로 자국을 낸 그날처럼 선명하기만 하다. 운전석 앞창에 아지랑이가 내려와 앉았고, 재원은 조용히 볼륨을 높였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뜬다.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그리고 반듯하게 슬픔을 토해낸다. 그의 목소리는 모든 악기들을 지배하는 독재자 같은 느낌이었으며, 모든 연주를 제 맘대로 휘두르는 목소리를 가졌다고 재원은 늘 생각하곤 했다. 그의 마지막 목소리가 담긴 「too much love will kill you」를 따라 부른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어쩌면 알고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재원은 볼륨을 최대한 높였고 거칠게 따라 불렀다. 자신의 죽음을 알았던 남자와 앞으로 펼쳐질 일이 어떤 것인지 짐작도 못하는 남자, 둘이서 화음을 넣는다. 목소리가 커질수록 윤희의 얼굴이 자꾸만 선명해져 온다.
갑자기 모든 것이 우스워졌다. 속이 후련해졌다. 웃음이 나왔다. 재원은 웃고 있는 건 자신이 아니라고 믿었다. 지금, 진희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그녀와 만난 지 300일째가 되는 날이다. 재원이 다니던 교직임용고시 학원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재원은 100대 1이 넘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서울의 북쪽에 해당되는 재개발지구의 아파트 단지에 만들어진 고등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고, 그녀는 떨어져 학원 강사를 하면서 다시 임용고시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강남에 갔더라면 부유한 아이들의 생활에 주눅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강북, 변두리의 아이들은 많은 부분이 재원, 자신의 생활과 비슷했다. 국수 한 그릇을 사줘도 고맙게 먹는 걸 보면 울컥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교사라는 직업은 사회적으로 많은 혜택이 주어졌다. 차도, 아파트도, 교사라는 직업이 아니었으면 3년은 넘게 걸릴 일이었다. 게다가 아버지에게 돈을 보낼 수 있게 되었으며, 어머니와 동생에게 선물로 들어온 백화점 상품권을 줄 수 있다는 것도, 마음만 먹으면 수업이 끝난 후 과외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는 재원은 교사가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퇴근시간과 맞물려 차들이 움직일 줄을 몰랐다. 재원은 진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금 늦을 것 같다고.’ 그녀는 ‘나는 괜찮아요. 기다리고 있을 테니, 서둘러 운전하지 말고 천천히 와요.’라며 부탁하듯 간결하게 말한다. 그 어떤 여자도 그렇게 말할까.
진희는 늘 배려하고 진심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감싸는 사람이었다. 재원은 잠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윤희를 떠올렸다. 분명한 건 진희는 윤희보다는 착한 여자였다. 진희와 만난 지 100일째 되던 날이었다. 재원은 여느 날과 다름없는 만남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그녀는 술을 많이 마셨다.
서운했을까. 술에 취한 진희는 바래다주기 위해 탄 택시 안에서, 재원의 어깨에 기대어 말했다.
「오빠를 처음 만났을 때,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이 사람과 오랫동안 함께 할 것 같다는…」
재원은 무작정 택시를 멈추게 했고, 진희와 함께 내렸다. 길가에 불이 켜져 있는 아무 커피 전문점으로 들어가 그녀를 기다리게 해 놓고, 재원은 보석가게를 찾았다. 땀에 젖은 재원이 셔터를 내리고 있는 보석가게를 발견했고, 막무가내로 들어가 반지를 샀다. 반지를 들고 커피전문점에 도착했을 때, 진희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단정히 앉아 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주반지. 재원은 그 가게에서 가장 예쁜 걸로 골랐다고 말했다. 그녀는 맘에 들어했고 재원은 그녀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오빠, 진주는… 눈물이래. 앞으로 나를 얼마나 울리려고? 벌써, 이렇게 울리면…」
재원은 진희에게 반지를 끼워주는 순간에도 윤희를 생각했다. 윤희에게는 그토록 사랑하면서도 그 흔한 아이들 뽑기 반지조차 끼워주지 못했었다. 진희는 울고 있었고 재원은 그런 그녀를 안아주었다. 재원이 다음날 백화점에서 진희에게 주었던 것과 비슷한 진주반지를 하나 더 산 것을 진희는 모른다. 재원은 백화점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문득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윤희에게 주고 싶었다. 그건 진심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진희는 재원의 책상 깊숙한 곳에 감추어져 있는 또 하나의 반지를 알지 못했다.
300일 기념으로 재원과 진희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와 있다. 진부하다. 아마도 그곳에 온 손님의 대부분은 무슨, 무슨 기념일일 것이다.
「오빠를 만나면 만날 수 록 황동규의 시 같아」
「……」
순간, 재원은 당황하면서 우울해졌다. 진희의 목소리가 자신의 목소리로 용해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무표정하게 아무 맛도 없는 질긴 고기를 씹는 것에만 열중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늘, 재원은 윤희에게 말했었다. 너를 만나면 만날수록 나는 기형도의 시를 삼키는 것 같아. 그때마다 윤희는 아무 표정 없이 새까만 눈동자를 껌뻑이며 재원에게 말했다.
‘시는 삶을 바꿀 수 없어.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을 뿐이야.’
달라지고 싶었다. 달라지고 싶다. 지금, 이 순간만은 진심이다. 아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재원은 진희에게 만은 순수해지고 싶었다.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질긴 고기를 넘기기 위해 맥주를 한 모금 마실 뿐이었다. 그뿐이었다. ‘시는 삶을 바꿀 수 없어.’란 랭보의 후회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녀, 윤희는 랭보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진희가 보내는 편지엔 이미 재원은 그녀의 전부, 혹은 모든 것이라는 문장이 반복되고 있었다. 시간이 주는 믿음이란 참 무서운 것이다.
업무적인 일도 익숙해져 갔다. 보너스로 생활을 했고, 급여의 반은 자동차 할부금과 주택부금으로 나머지 반은 가족에게 보냈다. 생활하고 남은 돈은 몽땅 저축을 했다. 재원은 비용이 많이 드는 취미를 가진 것도 아니었으며, 술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가끔 진희를 만나거나 문지사나 창비에서 새로 나온 시집을 사거나 대학원 준비에 필요한 책들을 사는 것이 지출의 전부였다.
그는 이미 모든 것이 굳어져버렸다고 단정 지었다. 하지만 여전히 재원의 생각과 몸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다른 것이라는 걸 재원, 자신만 알지 못할 뿐이었다. 아니, 그저 지금 이 모든 것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기만을 바라기로 작정을 한 사람 같다. 그래야만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재원은 자기를 자기 맘대로 할 수 없는 것에 화가 났고 그것은 고통스러운 슬픔을 동반했다. 조금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와 조금 더 큰 차로 바꾸는 일에 몰두할 것이고, 수익률이 높고 안전한 투자전문회사에 저축할 것이며, 안정이 주는 행복감과 무기력감에 빠져들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들어서 전처럼 돌아가기는 누구에게나 무리일 수밖에 없다.
그와 비슷한 일상으로 재원을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윤희에 관한 기억들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의 여자였다. 재원이 30년쯤 뒤에나 타볼지도 모르는 자동차를 가진, 한 달 유지비가 재원의 월급보다 더 되는 빌라에 살고 있다. 그녀, 윤희다.
진희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재원의 눈을 보며 말하고 있다. ‘부모님에게 오빠를 인사시키고 싶어.'라고. 어찌나 조심스럽게 말을 하던지 재원이 다 미안할 정도였다. 재원은 앞 뒤 가리지도 않고 기다렸다는 듯, 단박에 좋다고 웃으면서 대답해 주었다.
「거절하면 어쩌나… 며칠 동안 고민했어요. 아빠가 선을 보라고 하셨거든요. 오빠이야기… 엄마랑은 자주 하는데… 아빠는 아직 모르고 계세요」
재원은 선뜻 대답해 놓고 진희의 눈을 보며 생각한다.
‘그래 아무것도 달라지지는 않을 거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