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 나의 너에게
언제부턴가 당신이 내 맘 깊이 들어오더니 어느샌가 불쑥 뿌리를 내렸어. 나는 아직 당신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지만 내 안에서 하루하루 크게 자라나더니 이젠 상당한 그림자를 훌쩍 벗어 놓고 이따금씩 설레게 만드는 당신을 보게 돼.
내가 당신을 처음 본 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어. 매일 비슷한 시간에 그 앞을 지나가는 당신이 기다려지더라고.
잘은 모르겠지만 이따금씩 당신의 영혼이, 당신의 진정성이 느껴질 때가 있어. 커다란 슬픔이 느껴질 때가 있고, 지독한 고독과 그리움이 느껴질 때가 있고, 그럼에도 밝고 경쾌함이 느껴질 때도 있어.
내가 당신에게 항상 힘과 기쁨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자신 없지만, 하지만 가능하면 항상 옆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해. 아름드리나무처럼. 당신이 그늘이 필요할 때는 내 그늘에서 쉬어가고, 지친 날개를 잠시 접고 쉬고 싶을 때는 내 가지를 빌려주고 싶어. 항상 내 품이 당신한테는 편안한 안식, 보금자리로 기억될 수 있도록 말이야.
우리는 고작, 세 번 만난 것뿐인데, 종종 몹시도 몹시도 많이 보고 싶네. 립서비스가 아닐까 싶기도 할 만큼 이쁜 말들을 많이 해서 사랑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또 이따금은 내 마음속에 깊이 스며드는 어떤 묘한 전율 감을 주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말들을 해서 당신이 내 맘속에 계속 머무르는 것 같아.
당신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꼭 안아주고 싶은 묘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야.
당신을 위해 따뜻한 품과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어. 열렬한 사랑을 해보고도 싶어. 나한테는 자극이 필요해. 용기가 필요해. 너무나 지쳐있는 내 가슴에 안식처로 다가오는 당신에게 다가가고 싶어. 당신에게 따뜻하고 의미 있는 한 사람이 되었으면 해.
나는 당신이 아파. 그것도 몹시 많이. 막연한 그리움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어떤 갈망이나 갈증 같은 것일 수도 있겠고, 나는 당신을 목말라해. 물론 네 육체도 목말라. 하지만, 그것만으로 멈출 수 없는 어떤 근원적인 목마름이 있어. 갈망이 있어. 당신 육체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그 어떤 깊은 갈망. 그게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
하지만, 당신의 어떤 부분들은 내 마음에서 내 영혼에서 한 방울 한 방울 눈물을 쥐어짜 내는 것 같아. 물 분자를 하나도 포함하고 있지 않지만 내 마음에서 왠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
가끔 생각해 봐. 우리가 전생에 혹 알았던 사이는 아니었을까. 어쩌면 전생에 이뤄지지 못한 연인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말로 아무리 이런저런 좋은 얘기를 해도 마음속 한 구속에 깊은 회한과 연민과 죄의식이 남아 있는 건 아닐까. 물론 그건 정답이 아닐 거야. 하지만, 최소한 당신의 어떤 부분은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인 것 같아.
그게 어떤 건지는 정확히 표현 못하겠어. 그래서 자기(감히 그렇게 불러봐.)를 통해 보는 나의 모습에 놀라고, 우리 사이의 묘한 일치와 교감에 신기하다며, 어떤 동반자 의식이나 보호의식이 생기는지도 몰라. 말로는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최근에 당신이 내 마음속에 뿌리내리는 건, 그리고 내가 당신이 내 마음속에 뿌리내리도록 허락하는 건, 또 자기가 끊임없이 내 영혼을 자극하고 도발하는 걸 허용하는 건, 알 수 없는 그런 묘한 교감이나 일치감 때문인 것 같아.
비슷한 영혼의 재질로 이뤄진 사람들이 느끼는 편안함 때문이랄까. 아무튼 이젠 제법 내 맘속에서 당신의 무게가 상당해졌어. 존재감이 느껴지고 있어. 정확하게는 이제 당신에 대해 조금은 더 특별하고 애틋하게 혹은 각별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거 같아. 당신이 내 맘속에서 평생 살 수 있을지는 아직 몰라. 또 내가 자기의 남자로 남을 수 있을지 아니면 그냥 좋은 친구사이로만 남을지 역시 지금은 몰라. 그건 아무도 몰라. 그건 누구도 몰라. 하지만, 내 진실된 맘은 그래.
「그리하여 밤이 밤을 밝히었다」
롤랑 바트르, 「사랑의 단상」 중
내 어둠이 당신의 어둠을 밝힐 수 있고 조금이나마 빛을 나눠 줄 수 있다면 좋겠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