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 거울 속의 그녀
드디어, 윤희와 창수, 창수와 그의 여자에 대한 보고서가 윤희의 집안과 창수의 집안에 접수되었다. 창수는 더 이상 나빠질 것도 더 이상 뒤로 물러서서 눈만 내리깔고 착한 척하는 아들일 필요가 없어졌다. 윤희는 창피했고 모욕이었고 수치였지만 창수에게는 오히려 득이 된 셈이다. 두 집안의 사이가 나빠진 것은 당연했고 전화로 욕이 오고 갔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만한 비인격적인 뒷모습도 보게 되었다. 친척들도 각자 한 마디씩 거들었다. 창수를 소개해준 이모는 조용히 미국으로 오고 간다는 말도 없이 나가버렸다. 하지만, 윤희와 창수를 걱정하기보다는 이혼을 하게 될 경우, 결혼식 전에 오고 갔던 혼례 품과 혼수의 사후처리와 아직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를 어떻게 정리할지만이 화제가 되었다. 윤희는 자기보다 돈 때문에 싸우는 가족이라는 사람들에 향한 불만과 섭섭함, 실망으로 한기를 느꼈다.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남자와의 결혼은 사람을 단순 바보가 아닌 조롱거리로 만들어 놓았다. 윤희는 싸움의 연속일 뿐인 가족회의를 박차고 나와 방배동 집으로 돌아와 술만 마셨다. 진열장에 있는 양주들을 한 병씩 모조리 비워나갔다. 며칠이 흘렀는지 무슨 요일인지는 관심도 없게 되었고, 어느 날부터인가 계속해서 비만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생리가 시작되었다. 자신이 여자라는 게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달력을 보았다. 예정일보다 일주일이나 지난 후였다.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달거리가 늦어진 것이다. 취한 얼굴로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가 생리대를 찾기 위해 조명등을 켰을 때, 거울 속에는 이상한 여자가 한 명 서 있었다. 광대뼈가 툭 튀어나왔고 눈 밑이 검게 그을린 여자, 말라 갈라지고 부르튼 입술과 거칠어진 피부, 여러 갈래로 뭉쳐져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
「너는… 누구세요?」
거울 속의 그녀는 윤희를 침묵 속에서 무표정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누군데… 아니, 아니에요. 상관없어요. 그런 거… 그렇게 말없이 서 있지만 말고 나랑, 이야기할래요?」
윤희는 애원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마주 보고 있었지만 거울 속의 그녀는 말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윤희는 그녀를 남겨두고 옷을 하나씩 벗었다. 거울 속의 그녀도 똑같은 속도로 옷을 벗기 시작했다.
「함께… 샤워해요」
윤희가 본 거울 속의 그녀의 몸은 방치되어 메마른 나무토막 같았다. 아주 오랫동안 버려져 있었다는 느낌이 드는 몸이었다.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누군가로부터 심지어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그런 몸이었다. 쓸쓸하다는 이미지가 바로 이런 모습일까. 그녀가 먼저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따뜻한 물이 몸을 감싸자, 알 수 없는 서러움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 이유를 생각할 시간도 없이 거울 속의 그녀가 자신을 보며 아파할 것을 생각한 윤희는 그녀에게 시선도 보내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거울 속의 그녀는 윤희를 일으켜 세워주지 않았다. 그저 한 없이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윤희는 간절히 누군가의 체온을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는 거울 속의 그녀에게 바득바득 소리를 질렀다.
「왜 거기 그렇게 가만히 있는 거야. 나 좀 안아줘. 제발… 그렇게 서있지만 말고, 나를 안아주세요. 따뜻하게 한 번만……」
윤희는 두 손을 모아 그녀를 향해 안아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미동도 없이 그대로 매몰차게 윤희를 외면했다. 윤희는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너무나 서러워 목이 멨다. 꺼이꺼이 울음소리가 샤워기의 물줄기 속에서 잠식당했다. 백화점에서 창수를 본 그날, 윤희는 엄마와 통화를 하고는 그 길로 친정으로 갔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다.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님은 윤희 앞에서 소리 내어 싸웠다. 아버지는 윤희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머니를 향해 전화기를 던지셨다. 윤희는 이틀 만에 집에서 나왔다. 그게 서로를 위한 최선의 일이었다. 혼자 참아내야만 했다. 아니, 어디로든 사라져야만 했다. 그게 언제까지일지는 윤희, 자신도 알지 못했다.
이제 더 이상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 윤희는 샤워실 바닥에 죽은 것처럼 누워있다.
「죽을 거야. 죽어버릴 거야……. 당신들에게 복수할 거야」
윤희는 천천히 세면대를 더듬어 창수가 쓰던 스킨 병을 잡아들더니 이내 있는 힘껏 벽을 향해 던졌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몇 조각의 파편들이 바닥에 흩어졌다. 지독한 무스크향이 욕실에 퍼졌다. 윤희는 자기 앞에 떨어진 유리조각을 오른손으로 힘껏 쥐었다. 몇 개의 손가락 마디 사이에서 붉게 피가 솟아나 팔목을 타고 흘러내린다. 이번에는 왼손을 세로로 바닥에 눕히고 오른손을 높이 들었다. 동시에 찔끔하면서 눈을 감았다. 그때, 누군가가 윤희의 팔목을 잡았다. 허공에 그대로 멈춰진 윤희의 팔과 그 팔을 잡고 있는 그녀. 윤희가 천천히 눈을 떴다. 거울 속의 그녀가 윤희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내버려 둬」
「살아야지. 이 집엔 아무도 오지 않아……. 너도 알고 있잖아」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 은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거야. 이제 그만둘래. 그만하고 싶어…」
「그렇지 않아」
윤희는 다시 코끝이 아렸다.
「너는 몰라. 어둠뿐이야. 너무 어두워서… 나는 내가 이미 죽은 것 같단 말이야. 정말로 죽은 다음에도 온통 이렇게 어둡기만 한다 해도… 죽는다는 게 두렵지가 않아」
거울 속의 그녀는 윤희를 처음으로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윤희는 자신의 의지로 있는 힘을 다해 일어섰다. 세면대 물을 틀어 손에 박힌 유리 파편을 씻어내고 한 손으로 머리를 감고 샤워를 마쳤다. 샤워기의 보라색 수증기에 설핏 무지개가 피었다 사라졌다.
「방법이 있을 거야. 어쩌면, 시간을 되돌려야 해…」
윤희는 몸의 물기를 닦아내고, 간편한 옷차림으로 큰 길가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 어귀에 있는 병원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손가락 마디 사이에서 계속 피가 흘러내렸는지 손은 온통 피투성이였고, 손가락 끝은 무척이나 시렸다. 상처를 본 의사는 기계적으로 벌어진 살점들을 실로 꿰매고 붕대를 감았다. 윤희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고,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통증을 자각하는 몸의 모든 감각 기관들의 느낌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거울 속의 그녀는 윤희의 어깨를 어루만졌고 윤희는 엷은 미소를 그녀에게 보냈다. 그녀도 윤희에게 작은 웃음을 지었다.
윤희는 병원을 나와 거울 속의 그녀와 함께 택시를 타고 친정집으로 갔다. 때마침, 집엔 아무도 없었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자신의 방에서 몇 권의 오래된 일기장과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을 찾아 집을 나왔다. 다시, 그녀와 택시를 탔고 서둘러 방배동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해는 저물지 않았다.
재원에게는 연락할 수가 없었다. 윤희는 수첩에서 그녀의 세 번째 남자였던 재원을 찾아냈다. 차마, 그렇게 하면 안 될 것만 같았다. 누구보다도 윤희의 행복을 빌어주었던 사람이었다. 유일하게 윤희에게 진심 어린 축복을 보내 준 사람이었다. 그는 윤희가 행복하게 살고 있으리라 믿고 있을 것이다. 재원을 떠올리며 윤희는 자꾸 흐르는 눈물 앞에서 작아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너무나 만나고 싶은 사람은 재원이었지만, 그에 관한 모든 것은 지워져 있었고, 찢겨 있었다. 어느 곳에도 그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쩌면 다행일까. 일기장을 읽으며 그 대부분을 차지하던 두 명의 남자를 기억해 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첫사랑이었던, 아니, 첫 남자였던 조준환의 연락처를 찾아냈다. 그에 대한 감정은 과장된 사치로 가득했고, 심지어는 그를 미화시키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 모든 여자들이 느끼는 첫 남자에 대한 회고 같은 것이었다.
윤희는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을 들여다보며 한참을 망설이다 전화기의 숫자버튼을 또박또박 하나씩 눌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의 연락처는 그대로였다. 목소리까지도.
옛 여자의 급작스런(2년 반 만의) 연락에 준환은 당황해하면서도 의례적인 안부를 물었고 곧 두 사람은 그 시절로 돌아가 떨어져 나갔던 긴 시간이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쉽게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전화는 ‘툭!’ 끊겼다.
윤희는 아주 천천히 오랫동안 정성을 들인 화장을 했다. 준환을 만나기 위해서 아니, 스스로를 위해서. 거울 속의 그녀가 윤희를 노려봤다.
「이건 시간을 되돌리는 일이 아니야」
「상관할 바 아니잖아. 내가 뭘 하든……」
윤희는 그녀를 외면해야만 했다.
‘미안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