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n the world am I? Ah, that is the great puzzle.-Alice in Wonderland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요? 아, 그건 정말 대단한 수수께끼죠.
저녁식사 내내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던 남편이 입을 열었다.
"너 오늘 낮에 쌍둥이 엄마 만났구나?"
응? 어떻게 알았지? 집안에 CCTV라도 달아놨나?
깜짝 놀라 어떻게 알았냐고 되물었지만 곧 물어볼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오늘 낮에 만난 이웃의 말투와 표정을 그대로 따라 하면서 말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이렇게 내 주변의 영향을 잘 받고 쉽게 변하는 쪽이다.
친구에게서도 이런 나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15년 만에 만난 친구였다.
그녀가 나와 한참 이야기를 하더니 넌지시 내게 말했다.
"너 말투가 많이 달라졌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말투가 바뀐 것은 당연한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단순히 말투만을 언급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를 보내고 한동안 나는 그녀가 알고 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려 보았다.
'내가 어땠더라?'
하지만 나는 친구가 했던 말을 이내 잊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말이 다시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그날 나는 아는 분의 집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뭐라도 사들고 가는 게 맞겠다 싶어 마켓에 들렀는데 입구에 배상자가 잔뜩 쌓여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한국 신고배가 들어온 날이었다.
초대해주신 그분에게도 올해에는 이 배가 처음이겠구나 생각하니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았다.
얼른 배 한 상자를 카트에 넣고 계산대 앞에 줄을 섰다. 근데 그때 계산대 바로 옆에 세일하는 과일박스들이 눈에 들어왔다. 망고였다.
새로 들어온 배 덕분에 망고가 자리에서 밀려난 것이었다. 가격차이는 고작 10불 안팎이었는데 내 마음은 우왕좌왕해지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나는 배 상자를 내려놓고 몇 불 싼 망고를 카트 안에 넣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초대받은 집에 도착해 망고 박스를 건네는 내 손이 찝찝했다. 식사대접을 받으면서도 신경은 키친 카운터에 있는 망고 박스로 향했다. 대화하는 내내 망고 생각만 났고 급기야는 인사를 하고 나오면서 망고를 들고 나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에이씨!'
이렇게 좁아터진 마음은 호의를 베풀 때만 아니라 호의를 받는 것에서도 표시가 났다.
12월 말이었다. 큰 아이의 친구가 현관 벨을 눌렀다.
"저희 엄마가 이거 미쎄스 리 갖다 드리래요."
열어보니 간장게장이었다. 이런 귀한 반찬을!
코로나 때문에 위험한데도 굳이 마스크까지 쓰고 온 친구와 보내주신 친구 어머니에게 감사했다.
그날 저녁 밥상에 간장게장이 한가운데를 차지했다.
근데 잘 먹다 말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갑자기 간장게장을 준거지? 혹시 너무 많이 사서 남아서 준 건가? 아님 유통기한이라도 가까워졌나?'
나는 의구심이 듦과 동시에 이런 어이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기가 막혔다.
'에이씨!'
오그라진 마음은 딱 그 수준처럼, 상대방의 호의마저 얄팍하게 저울질하고 있었다.
'말투가 변했다'라고 말했던 친구의 말은 어쩌면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가치 있는 어떤 것이 희미해졌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우리 집에는 거울이 여러 개 있다. 근데 이놈들은 각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화장실 거울은 길어 보인다. 현관에 있는 거울은 땅딸해 보인다. 사실 어떤 거울이 진짜 나의 겉모습을 가장 가깝게 보여주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집안에 있는 거울들은 예뻐 보이는 나던, 뚱뚱해 보이는 나던, 어쨌든 '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것처럼 내가 아무리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고 해도, 나라는 사람을 대변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중심의 그 어떤 것은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
더 이상 어쩌다 보니 사는 게 힘들어 그렇게 되었노라고 핑계 대는 것은 그만하고 싶다. 어떤 환경적 요인도 누구의 탓도 아닌 나를 놓아버린 것은 결국 나였을 테니.
나는 지금 거울에 비친 나를 바라보며 물어본다.
"지금의 나는 정말 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