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스러운 삶을 지탱하기 위한 몸부림
세상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있고, 저마다의 길이 있을 것이다. 그럼 내 길은 뭘까. 앞서 말한 나의 직업적인 진로는 나를 이루는 구성 중 가장 큰 조각이겠지만 전부도 아니다.
나는 내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가성비 있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의 삶과 젊음, 체력과 운은 무한의 자원이 아니다. 인간은 허무하고 유한한 자원이다. 그렇게 태어났다. 태생적인 한계는 인간을 절망하게 하지만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 아이러니하게도 더 많은 것들을 보고 얻게 될지도 모른다.
우선, 나는 여기부터 출발해보기로 했다.
‘나’라는 인간을 게임 캐릭터의 능력치로 수치화 할 수 있다면 어떤 그래프가 나올까.
우선,
체력이 50(꾸준한 운동 요망)
수면- 7~8시간.
행복수치- 평균 7~80프로(이따금 대자연 시기와 맞물려 위아래로 요동친다.),
직업적 능력- 혼자 먹고살기 적당한 정도.
경제관리 능력- 다년간의 자취경력으로 안정권 하위에 들어섬, 하지만 좀 더 가성비 있는 소비 필요 요망(예전에는 쓴 만큼 더 벌자가 좌우명이었다)
요리실력- 평균. 장보기 좋아함. 근데 갈수록 해 먹기가 귀찮다.
운전면허- 무면허(놀랍게도 이 나이 먹도록 운전면허를 안 땄다.)
멘탈- 튼튼한 편. 예민한 경향이 없지 않으나 회복력이 빠르다.
성실도- 게으름.
인간관계- 좁고 깊게. 주위 절친 열 한 명이 평균 우정 경력(?) 10년이 넘는다. 당장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 약 세 명.
가족- 간헐적 전쟁 모드를 제외하면 화목한 편
방랑벽- 65%
자취경력- 약 3~4년
음, 뭔가 애매한데. 게임 캐라면 레벨이 이도 저도 아닐 것 같다. 방금 이 글을 쓰며 깨달았는데 나 자신을 객관적 수치보다 상향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생각보다 쉽게 만족하는 편이랄까. 예전에는 모든 면에서 상위권 목표가 컸는데 갈수록 평정심 유지에 더 치중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 아닐까. 아니 그냥 내 성격 자체가 이런 것 같다. 한 때 나의 심리상담사였던 그녀가 말하길, ‘00씨는 절대 우울증이 걸릴 수 없는 성격이라 딱히 걱정이 안 된다‘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 정신 건강상 허점을 캐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있던 나는 다소 민망해졌던 기억이 난다.
오 이 부분은 아주 큰 장점인 것 같다(메모).
물론 이러다 한 번 우울하거나 무기력해지면 여파가 꽤 크다. 그럴 때마다 나의 칭얼거림을 들어주는 친구 A,B,C와 나의 버팀목인 부모님과 오빠에게 감사를. 이따금 사람은 나를 지지해주는 이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삶의 원동력이 되곤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분명 축복 받은 사람일 것이다.
다만 건강과 체력, 스트레스 관리 면에서 보완이 필요하다. 올해 들어 나는 스트레스 조절에 실패했고 그래서 수면과 식사에 부실한 기간이 있었으며 그 때문에 역류성 식도염에 걸렸다. 머릿속 비상등이 요란하게 울렸다. 세상에, 나는 그 흔한 질병이 이토록 삶을 갉아먹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밤에 누우면 가슴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아서. 병원을 다녔고 식사를 마음대로 못해 골골거리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 나 자신을 돌보지 못한 내 게으름을 후회했다.
혼자 살며 삼시 세끼 챙겨 먹고 적절한 운동과 활력있는 생활을 영위하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아니 아주 많이 어렵다. 나는 내가 꾸준히 그걸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 스스로를 과신했다. 귀찮으면 정말 답이 없다.
돈 주고 요가 클래스를 끊어도 마찬가지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생리 기간이면 그날이니까, 하면서 다 미루는데 대체 운동은 언제 한단 말인가. 한 때는 요리해서 잘 챙겨 먹는 게 내 삶의 낙이었는데 일과 병행을 하면 그게 어렵다. 글도 쓰고 마감도 해야 하고 장 봐와서 밥도 해먹어야 한다고? 장난하나. 그럼 난 언제 쉬어? 엄마의 위대함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결국, 늘어가는 건 배달 음식 쓰레기고 훈장은 배민 VIP다.
나란 인간은 왜 이리 손이 많이 갈까. 바라는 게 왜 이리 많은 거야. 적당히 운동도 시켜줘야 하고 질 좋은 밥도 맥여야한다. 까딱하면 배탈이 심심치 않게 나니까 말이다. 잠도 충분히 재워야 짜증을 안 내고 또 너무 놀면 지루해하고 억지로 일하는 것도 싫어한다. 가끔 문화생활로 뇌에 자극을 줘야 좋아하며, 적절히 여행도 보내줘야 한다. 오래 한 곳에 머무는 것도 염증 내는 인간이니까.
하, 이 소 같은 새끼. 망할 우리집 소. 소야, 널 부양하기가 너무 힘이 드는구나.
나는 한탄했다. 우리집 소는 나약하고 까탈스러운 동물이라 관리하기가 퍽 난감하다. 뭐 하나라도 부족하면 후일 반드시 탈이 난다. 염병할 우리집 소. 망할 소 새끼. 아무 여물이나 처먹고 알아서 튼튼하면 좀 좋아.
하지만 그 소가 행복하기를 바라기에, 그리고 그 소 자식이 짜증나면서도 사랑하니까 결국 나는 그녀를 기꺼이 보살피고 부양한다. 우리집 소, 소 새끼, 투덜거리면서.
이상해 보일지 모르지만 나 자신을 이리 분리해 생각하면 조금 더 능동성이 올라간다. 나한테 더 잘해주게 되고 나에 대한 애정도 더 생긴다. 일종의, 타인에 대한 책임감 같은 효과라고나 할까. 그래서 나는 친구들에게 나를 ‘우리집 소’로 소개한다. 이 농담이 퍽 마음에 든다. 웃프지만 뭔가를 짊어지는 게 삶이 아닐까.
난 모자라서 나 하나 잘 관리하고 돌보기도 힘이 든다. 어쩌면 이것은 내 게으름과 체력의 부족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젊음과 체력은 휘발성이 강해서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흔한 예로 운동이 있는데, 이건 정말이지 필수다. 좀 더 빠르게 시작할수록 좋다. 재미있고 내 적성과도 맞아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꾸준하게 평생 할 만한 거라면 더 좋지 않을까. 나는 이 필요성을 약 4년 전부터 실감하고 나에게 맞은 운동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한강 변을 매일 뛰어보기도 했고 요가와 필라테스를 각각 1년씩은 한 것 같다.
효과는 있었다. 좀 더 체력이 늘고 몸이 탄탄해지는 게 느껴졌다. 힘들더라도 상쾌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게 다다.
말하지 않았는가. 귀찮으면 정말 답도 없다. 매일 억지로 몸을 일으켜야 하는 게 성가시고 지겨웠다. 꼭 해야 되는 숙제처럼.
그냥 습관처럼 할 수 있고 재미있는 게 뭐 없을까. 내가 정말 사랑하고 존중하는 한 언니는 스윙이라는 댄스를 즐긴다. 그녀는 그것이 숙제가 아닌 삶의 중요한 요소다. 스윙을 말할 때 그녀의 목소리에서 삶의 원동력과 충만한 행복감이 느껴진다. 나는 그게 너무 부러웠다. 그녀가 찾은 스윙이라는 것은 그녀와 정말 어울렸고 한몸이 된 것 같았다.
나도 그런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단순히 육체를 유지하기 위한 무의미한 동작이 아니라 내가 몰입하고 그 순간을 확실하게 즐길 수 있을 만한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일단 그것과 거의 흡사한 건 산책 정도일까. 내가 근 2년 홀딱 빠져 있는 집 근처의 크고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데 그곳을 산책하는 것이 내게 숨을 불어넣는 시간이었다. 이조차 나의 고질적인 방랑벽으로 약발이 조금씩 떨어지고는 있지만, 어쨌든 현재로선 그렇다. 차츰 다른 것들도 찾아보려 한다(복싱이라던가 등산, 합기도라든지).
그럼 규칙적인 식사는? 이것은 매우 어려운 항목이다. 나는 요리하는 게 좋다. 하지만 뒤처리하고 냉장고 관리하는 게 너무 귀찮다. 집안일 하는 인공지능은 언제 나오는 건지? 우선 더 큰 집으로 이사해서 더 큰 냉장고와 식기 세척기를 들이게 된다면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한다(결국 문명 속 인간은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물건을 더 들이는 게 과연 100% 문제 해결을 해낼까. 오히려 그 물건들 관리 때문에 더 삶이 복잡해지지는 않을까? 빵 굽기 귀찮아 들였던 너의 토스트기를 생각해보라. 과연 몇 번이나 그 물건을 작동시키는지? 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그래서 한때 배달 음식을 질색하고 유기농 식자재로 요리를 해먹던 나는 요즘은 적절한 초간단 요리(케일주스, 찐 고구마와 치즈를 얹은 구운 감자, 들기름을 친 누룽지, 고등어 등 생선구이, 파래를 넣은 계란말이, 방울 토마토와 버섯구이를 곁들인 안심구이 등)와 매일 먹는 요거트, 위에 부담이 안 될 법한 메뉴를 선정해 배달로 배를 채운다. 아니면 영양가를 맞춘 도시락을 쌓아뒀다가 돌려 먹는다든지. 어쩔 수 없다. 나는 집안일을 습관처럼 해내는 인간이 못 된다. 머릿속을 정리하거나 무의미하게 몸을 움직이고 싶어 빨래를 돌리고 바닥 청소를 하는 것 외에 나머지 자질구레한 집안일은 내킬 때 몰아서 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나 하고 싶을 뿐이다. 결국 나는 집안일도 결국 적성이구나, 깨달았다.
그리고 다음, 방랑벽. 코로나 이전의 나는 몇 달에 한 번 충동적인 여행을 떠나 나 자신을 해방시키고 그 자유로움 속에서 스트레스를 날려보내며 행복을 만끽하고는 했다. 스스로를 부양하는 어른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세상이 되었으니. 나는 집순이+프리랜서 다운 생각으로 그럼 다른 타지역으로 이사를 해야겠다, 마음먹는다. 몸을 못 옮긴다면 집을 옮기면 되지 않은가! 그래서 현재 이사 갈 도시를 정하고 집을 어플로 구경하고는 있는데 실행할지는 미래의 나만 알고 있다.
다음은 성실함. 이건 직업적인 건데, 많은 훌륭한 작가들이 자기만의 루틴이 있다고 한다.
스티븐 킹은 매일 아침 영감이 자신을 찾아오게 만든다고 했다. 이걸 꽤 오래전에 본 것 같은데 전업 글쟁이 4, 5년 차에 접어들었는데도 이게 뭔 말인지 쥐뿔도 모르겠다. 아니 영감이란 애가 내가 오란다고 오고 가란다고 가는 애던가?
나는 내가 내킬 때만 글을 쓰는 방구석 쾌락주의자에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안 하는 사람이다. 이건 나의 오랜 콤플렉스였다. 작가는 엉덩이 힘이라는데 싫증을 잘 내고 물리면 하기 싫어 내던져 버리고 다른 걸 한다. 이런 게으르기 짝이 없는 변덕쟁이가 어떻게 그럭저럭 먹고 살고 있는지 가끔 스스로 혀를 끌끌 차며 감탄한다. 물론 마감이 걸려 있으면 어떻게든 일을 해내기는 한다. 그냥 짜증이 날 뿐이다…. 뭐 이건 직딩이라면 누구나 같은 거겠지. 다른 건 좀 더 적극적으로 도망을 잘 친다는 정도일까.
나는 조금 끈덕지고 집요하게 한우물만 파는 버릇을 들일 필요가 있다. 지루하다고 내던지고 딴 걸 할 게 아니라 좀 더 지긋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고뇌하고 고민하며 그 자리에서 정면돌파하는 용감함과 성실함 말이다. 성실함이라는 재능이 있었다면 벌써 더 좋은 글을 많이 써내고 실력이 더 늘었을지도 모르는데. 아쉽고 안타깝다가도 내 안의 초긍정이 귀를 후비며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게 다행이면서 가장 큰 문제다.
하, 그래. 우리집 소가 행복하다면 되었지 뭐. 허허허. 네가 기죽는 짐승이 아니라서 참 다행이다.
자, 남은 건 경제 관리 능력. 난 필요한 건 주저 없이 지불하는 편이다. 마사지와 운동, 화장품, 건강기능 식품 등 나에게 투자하는 거라면 더 주저가 없다. 가장 큰 지출이 식비와 이와 같은 것들이다. 음, 이번 달 많이 썼는데? 싶으면서도 찬찬히 항목을 훑고는 뭐 오메가3 좋은 거 먹고 질 좋은 화장품에 가끔 근육 풀어줄 마사지에 엄마 건강 즙이랑, 아가 조카 선물 등등…. 뭐야 다 필요한 건데, 가 결론이 되곤한다. 물론 개중 지나고 나서야 괜한 지출이었다 깨닫는 경우도 퍽 많다. 맞고 나서야 깨닫는 사람이 있는데 지출 면에서 내가 그렇다.
해서 20대부터 지금까지의 꾸준한 어리석은 지출과 낭비로 이제는 예전보다는 쓸모의 유무를 구별하는 눈이 조금 더 생기긴 했다. 이제는 어지간하지 않으면 지갑을 열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먼 것은 사실이다. 다른 현명한 또래 친구들은 미니멀 라이프라던가, 딱 자기에게 맞는 작은 지출만으로 삶을 꾸려가던데 나는 그런 현명함은 모자란 모양이다. 워낙 관심 분야가 많고 좋아하는 것도 많으며 하고 싶은 것도 많아서 그런가. 여기까지 겨우 갖춘 것조차 무식하게 돈으로 때려서 배운 소비 관념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가성비 있게 가계를 꾸릴 방법도 많을 것이다.
예컨대 몸이 굳지 않기 위해 하는 요가도 유튜브로 아침마다 하는 걸로 대체하거나 내가 환장하는 빈티지 쇼핑도 정말 나와 찰떡이고 해마다 입을 게 아니라면 굳이 살 필요가 없다. 과소비를 막기 위해서 나는 좀 더 똑똑해지고 더 성실해져야 한다.
무엇보다, 더 비워야 삶이 단정해질 것이다. 아마 이 것은 내가 아직 더 선명해지지 못해서이겠지. 내 영혼은 언제가 되어야 더 가벼워질까.
정리하자면, 과소비를 줄이고 나에게 맞는 운동을 하며 삼시세끼 식사를 잘 챙겨 먹어야 하고 귀찮음을 줄이며 더 성실한 루틴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사는….. 뭐 덤이라고 해둘까.
글쎄, 솔직히 나도 아직은 완벽하게 현명한 삶을 사는 방법은 아직 모르겠다. 아직도 알아가는 중이고 여전히 헤매는 중이다. 요즘처럼 인생의 지혜, 자기개발서가 넘치는 세상에서 훌륭한 이론들은 이미 넘친다. 다만 나에게 맞는 방법, 딱 나와 맞춤인 그 루틴을 못 찾았다. 나의 삶은 어중간하게 어지러운 청소 전의 방과 같다. 주절주절 늘어놓고 나니 나라는 인간의 모자람이 적나라하여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런 혼란스러운 삶이 어디 있을까.
그저 앞으로도 우리집 소와 나의 동거 생활이 좀 더 능숙해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