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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고운 Jul 23. 2021

실패 없는 집밥 메뉴, 함박스테이크

설거지 폭탄도 충분히 감내할만한 특별 메뉴

"아침은 간단히!" 늘 외치는 구호이다. 물론 지킬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지만. 빵 한쪽, 소세지, 스크램블, 그래 이렇게 간소하게 먹으면 되겠다 싶어서 부지런히 준비 중이었는데 이를 어쩐담, 아이들용 쌀식빵이 없다. 의기양양한 표정에서 갑자기 허무한 표정으로 바뀌는 순간. 머리를 굴려보다가 아참! 글루텐프리 쌀가루 팬케이크가 있음을 떠올린다.


계란과 두유, 그리고 팬케이크믹스를 섞어서 프라이팬 약불에 올려준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센 불에 구우면 태우기 십상이다. 무조건 약불에 천천히 구워줘야 한다. 그리고 자주 보살피며 뒤집어줘야 한다. (실제로 많이 태워봤음). 이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에 좀 더 일찍 일어나는 거였는데. 아이들 온라인 수업에 늦을까 봐 마음이 조여 온다.


며칠 전에 만든 복숭아잼도 발라주니 아이들은 좋다고 난리 난리. 좋아하는 메뉴들로 가득 채우니 다행히도 평소보다 10분이나 늦게 아침을 차려줬는데도 후다닥~ 금방 그릇을 비운다. 여러모로 위기와 안도가 오가는 아침이었다. 어쨌거나 무사히 넘긴 아침!

조식나왔습니다~ 다음에는 쌀식빵을 꼭 여유 있게 쟁여놓으리 다짐하며!



아이들 온라인 수업에, 남편의 재택근무에, 나는 괜히 덩달아 정신이 없다. 두 녀석이 같은 시간표로 움직이면 좋으련만, 한 녀석이 수업 중이면 한 녀석은 쉬는 시간이다. 특히 둘째가 첫째를 방해하는데 선수인지라, 온몸으로 막아대느라 진땀이 빠진다. 둘째가 수업을 시작하면 첫째가 또 나를 부른다. 같이 쉬자며! 학교가 이렇게도 소중한 거였다니...


그래도 다행히 남편은 방에 들어가면 점심 먹을 때까지 꼼짝을 안 하고 일을 한다. 우직한 건지, 융통성이 없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대한민국에서 재택근무 성실도로 치면 1등을 하고도 남을 사람. (엉덩이 떼는 시간이 점심시간 외에 통 들어 5분도 안됨)


여러모로 스트레스인 상황에서는, 나의 최애 메뉴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바로 떡볶이! 오늘은 평소 떡볶이랑 좀 다르게 먹어야겠다 싶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이런 상황에서 먹는 거라도 내 구미에 맞게 먹어야겠다 싶은 내부적 일탈이랄까. 건전해도 너무 건전한 일탈이지만 말이다.  

어른들은 기름 떡볶이, 아이들은 짜장 떡볶이!


평소에 당면을 곁들인 국물이 자작한 스타일의 떡볶이를 선호하지만, 오늘은 기름떡볶이로 결정! 고춧가루, 간장, 설탕, 참기름, 참깨, 마늘을 적당한 비율로 섞고 소스를 떡에 넣고 버무려준 후 기름에 볶아주면 완성. 더 맛있게 먹으려면 떡집에서 갓 나온 뜨끈뜨끈한 떡볶이 떡으로 만들면 맛의 감동이 10배는 되는데, 형편상 그럴 수 없는 게 아쉬울 뿐이다. 냉장고에 있는 딱딱한 떡을 끓는 물에 데쳐 말랑말랑하게 한 후 만들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란.


통인시장에서 파는 기름떡볶이보다 내가 만든 게 더 맛있었다면 너무 자화자찬 일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날은 그랬다. 역시 떡볶이는 나의 소울푸드다. 잠시라도 골치 아픈 현실을 벗어나는 가장 쉬운 방법, 바로 맛있는 걸 먹는 거 아니겠냐며!


아이들은 콕 집어 짜장 떡볶이를 해달랜다. 게다가 떡도 정해준다. 조랭이떡(아이들의 별칭, 눈사람떡)으로 무조건 해야 한단다. 너희들도 이런 단호하고 열정 넘치는 태도로 공부를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짜장도 의외로 밀가루가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쌀춘장을 사서 기름에 볶아 짜장소스도 만드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당해야만 한다. 다행히도 얼마 전에 대량으로 춘장을 만들어 놓은 관계로 오늘은 그래도 편하다. 아무튼 고객님께서 까다롭게 원하는 사양대로 충분히 맞춰 준비한 바로 그 메뉴, "손님, 주문하신 짜장 떡볶이 나왔습니다."

각자의 취향대로 즐기는 두 가지 스타일의 떡볶이


역시 떡볶이의 단짝 친구는 튀김이다. 만두와 김말이가 빠지면 섭섭하지! 아이들은 쌀물만두를 준비했지만 김말이까지는 어떻게 해결이 안 돼서 그냥 소량의 밀가루는 특별히 허용하기로 한다. (알레르기 비염으로 고생하는 아이들.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튀김도 곁들여야 제 맛!


한바탕 점심밥을 만들고, 먹고, 치우고, 설거지하고 돌아서니 벌써 지치는 건 뭐지? 아이들은 만화 찬스를 틈타 뒤에서 몰래 크루아상을 하나 야금야금 먹는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아까 떡볶이를 좀 더 넉넉하게 만들걸 싶다. 밥 먹고 몇 분 후에 후식이라니, 다이어트는 언제쯤?

에어프라이어에 돌린 갓 구운 바삭바삭한 크루아상은 꿀맛



저녁에는 비장의 메뉴가 대기 중이다. 바로 함박스테이크. 손이 좀 많이 가고, 뒷정리도 만만치 않지만 아이들이 잘 먹는 모습을 보는 순간 그 고생이 다 잊혀지고 만다. 넉넉하게 만들어서 두어 번 먹을 분량을 냉동해두면 당분간은 메뉴 걱정도 덜 수 있어서 나도 좋다.


고기를 치대는 것은 기본, 소스까지 만들어야 하기에 나름 비장한 마음으로 작업(?)에 임한다. 먼저 빵가루부터 준비한다. 전에 만든 실패작 쌀 모닝빵이 이 날을 위해 빵가루로 다시 태어났다. 자투리 빵은 냉동해서 믹서기에 갈면 손쉽게 빵가루가 된다는 사실. 그다음으로 중요한 작업이 있으니, 바로 양파 볶기이다. 최대한 양파를 잘게 잘라 현미유에 볶아준다. 넉넉하게 양파가 들어가야 맛이 좋다. 고기는 소고기와 돼지고기 다짐육을 반반 섞어서 사용한다.


마지막으로 계란도 하나 톡 터트려 넣어주고 골고루 섞어준다. 열심히 치대다 보면 끈기도 생기고 고기가 덩어리로 잘 뭉쳐진다. 이렇게 밑 작업을 다 끝내 놓고서야 꼬마 요리사들을 소환시킨다. 신나게 어린이 장갑을 끼고 출동한 아이들. 동그랗게 모양을 만들었을 뿐인데 아이들은 의기양양하다. 자신들이 만든 요리라며 어찌나 어깨를 으쓱대는지. 함박스케이크를 만드는 과정의 80%는 내가 하는데 말이다.


비록 시간은 훨씬 오래 걸리고, 모양도 엉망진창이지만, 아이들의 성취욕을 위해서 그리고 본인들이 만든 요리는 평소보다 더 잘 먹으니 이걸로 충분하다. 조잘거리며 둘이 사이좋게 하나둘씩 완성해가고 있다.

요리과정에 당당히 참여한 초딩들


그 사이 나는 후다닥 소스를 만든다. 소스에는 버터가 들어가야 제 맛. 양송이와 양파를 넉넉하게 자르고 열심히 볶아주다가 돈까스소스, 케첩, 설탕, 후추를 넣고 맛을 조절하면 된다. 아뿔싸! 그런데 돈까스 소스가 현저히 부족하다. 이럴 때는 코 앞에 마트가 있는 집이 그렇게도 부러울 수가 없다(우리 집은 마트와 최소 10분 거리인 언덕배기에 산다. 갈 때는 그렇다 치고, 돌아올 때 등산하는 그 기분이란). 우스터소스도 없고, 케첩도 간당간당하고, 하필 이 날 따라 토마토도 방울토마토 몇 개가 전부였으니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된 듯했다.


침착하고 곰곰 생각해보니, 아! 냉동실에 돈까스를 먹고 남은 소스가 몇 개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뒤져보니 다행히 소스 4개가 나온다. 뭐든 버리기 좋아하는 나도, 이렇게 소스를 그대로 방치해 둔 것에 대해 셀프 폭풍 칭찬해준다. 이때를 위함이었구나. 역시 정상적으로 모든 재료를 갖추고 하는 요리는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나 보다. 결국은 또 한 번 야매요리임이 들통나는 순간.

냉동실 구석에서 굴러다니던 돈까스소스가 살려줬음!


또 한 번 야매요리 실력 발동! 유부초밥에 든 건조야채가 하나 더 들어있길래 남겨두었는데 이 때다 싶었다. 밥 위에 얹어주면 맛도 비주얼도 살릴 테니. 바로 이렇게 말이다.


여러 사연 끝에 완성된 함박스테이크! 사이드 메뉴로는 웻지 감자와 콩, 샐러드, 방울토마토를 곁들이니 훨씬 근사하다. 여기에 반숙란은 당연히 필수 품목. 요새 한참 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는 남편을 위해, 어른들은 샐러드 식단으로 준비한다. 아까 낮에 먹은 고칼로리 크루아상이 찔리기도 했고 나도 겸사겸사 샐러드로.

점심에 이어 저녁에도 아이와 어른이 각각인 밥상


이래 봬도 샐러드도 나름 고급지다. 닭가슴살, 콩, 호박고구마, 오이, 토마토, 그리고 당근라페(남편 왈, 너무 대량으로 좀 만들지 말라며). 고기 부럽지 않다고!라고 외쳤지만, 맛이 너무 궁금해서 함박스테이크는 한 입 얻어먹었다는 후문.

고기 부럽지 않은(그렇다고 자기 최면중) 알록달록 샐러드


아이들은 춤을 추며 콧노래를 부르며 먹는다. 꿀맛이라고, 최고라고 별별 폭풍 칭찬을 쏟아낸다. 아니 이게 뭐라고 그렇게도 격하게 좋아하며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내내 가시질 않는 걸까. 이 맛에 요리를 하는 거겠지 싶다. 잘 먹어주는 아이들이 참 고맙다. 둘째는 "엄마 일주일에 3번 정도 맨날 함박스테이크이면 좋겠어"라며 희망사항을 이야기한다.


2구 인덕션과 전자레인지, 그리고 에어프라이어까지 총동원된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던 치열한 요리의 현장. 준비하는 시간에 비해 먹는 시간은 왜 이렇게 짧은 건지. 여기도 저기도 온통 설거지가 한가득이다. 창 밖으로 보이는 노을이 너무 예뻐서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이렇게 대충 정리만 해 놓고 밖으로 튀어 나간다.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야경. 마음 같아서는 8시 전부터 나와서 핑크빛 하늘의 일몰부터 온전히 감상하고 싶었는데 그래도 이런 야경이라도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주방에서의 노고가 잊혀지게 만드는 순간이다. 아이들과 남편은 놀이터로 보내고 나 혼자 나와서 더 감격이 컸겠지만. 아무튼 오늘 하루도 애쓴 나에게 박수를! 내일도 힘내서 집밥을 열심히 만들어야겠다.



*본 글은 Daum 홈&쿠킹 섹션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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