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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동 Oct 27. 2022

엄마가 추락하던 날

지금 살던 집보다 더,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살았던 집은 오래된 다세대주택 3층이었다. 화장실이 굉장히 비좁았지만, 거실 3면이 모두 유리여서 해가 충분히 들었다. 볕이 얼마나 강한지 거실 책꽂이에 꽂아둔 책 표지가 다 바랠 정도였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거실 바닥에 오렌지빛 햇살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런 고즈넉함이 좋았다.


문제는 보일러였다. 보일러가 너무 자주 고장 나 종종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로 목욕을 했다. 샤워기에서 찬물이 쏟아져 나오면 나는 꽥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부모님이 큰 냄비에 수돗물을 팔팔 끓여 냄비째로 갖다 주었다. 여름엔 어느 정도 견딜 만했다. 겨울이 문제였다. 집 전체가 냉골이 되어 버리니.


보일러실은 집 밖에 있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공중에 떠있는 형태라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위태롭게 옆집 담벼락에 올라서야 겨우 보일러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너무 위험하다 보니 부모님은 우리 남매가 보일러실 가는 것을 막았다. 대신 본인들이 담장에 올랐다. 보일러실을 향한 아슬아슬한 곡예는 겨울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사달이 났다. 아마 2학기 중간고사가 막 끝났던 시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일러실에서 보일러를 체크하고 오겠다던 엄마가 돌아오지 않았다.


쾅쾅. 누군가 유리문을 두드렸고, 현관문을 열어보니 지층에 살고 있던 중국인 아저씨였다. 당황한 낯빛의 그는 자기를 뒤따라오라며 손짓했다."1층에, 누워 있어요." 영문도 모른 채 아저씨를 따라간 나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한다. 한 여자가 흰자를 보인 채 바닥에 쓰러져 있다. 자세히 보니 그 여자는 우리 엄마였다. 엄마는 보일러실에 가려다 발을 헛디딘 것 같았다. 정신을 반쯤 잃고 자꾸 춥다며 이불을 가져다 달라는 엄마. 당황한 나는 돌계단을 한 번에 두 칸씩 올라 집 안으로 올라갔다. 그리곤 장롱에서 얇은 여름 이불을 꺼내와 엄마에게 덮어 주었다. 중국인 아저씨는 119를 불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대원들이 도착했다. 대원들은 파란색 철제 대문을 훌쩍 뛰어넘더니 마당에 들어왔다. 엄마는 들것에 실려 집을 떠났고, 내가 가져온 여름 이불이 바닥 한 구석에 널브러져 있었다. 끔찍한 오후였다.




엄마는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다. 허리는 삐끗했지만 장기나 뇌는 모두 무사했다. 사고 전후의 기억을 조금 잃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런 일을 겪은 사람에게 단기 기억상실은 무척 흔한 증상이라고 했다. 엄마는 병원에서 정신을 차리자마자 아빠에게 물었다. "00이는 시험 잘 봤대?" 시험은 이미 며칠 전에 끝났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지. 믿을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난 직후에도 엄마의 관심사는 여전히 나였다. 참 서글프면서도 대단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물리치료를 받으며 기력을 점차 회복했다. 문제는 치료를 받는 동안 경제활동을 전혀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맞벌이 가정은 금세 홑벌이 가정이 되었다. 안 그래도 다세대 구옥에 얹혀살던 우리 가족의 형편은 조금씩 나빠지기 시작했다. 3층 집의 전세계약 만료일이 도래했을 무렵 우리는 완전한 무방비 상태였다. 집주인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전세금을 요구했다. 뾰족한 수가 없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더,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수밖에. 이를테면 우리는 반지하로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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