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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동 Oct 29. 2022

겨우 한 계단 내려왔을 뿐인데

주변 풍경이 몽땅 바뀌었다

여기, 친구를 쉽사리 초대하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있다. 아이는 남들에게 집을 보여주기가 너무 부끄럽다. 그래서 갖은 핑계를 대고 집에 놀러 오겠다는 친구를 멈춰 세운다. 아이는 마음은 편치 않다. 입술을 잘근잘근 물어뜯는다. 방금 이 아이는 어린이라면 반드시 누려야 마땅한 행복 중 하나를 빼앗겼다. 친구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보는 행복 말이다.


중학교를 졸업하며 반지하로 이사를 왔다. 지상에서 겨우 한 계단 내려왔을 뿐인데 주변 풍경이 몽땅 바뀌었다. 창문 사이 비치던 은은한 햇살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유리창 너머로 보이던 회색빛 풍경 같은 것들은 모두 사라졌다. 밤새 뒤척이다 잠에서 깼는데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햇빛이 들이치지 않아 한낮에도 깜깜한 방.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우리 집이었다. 가끔 늦잠을 자게 되면 제 역할 하나 못하는 창문을 탓했다. 작은 방에선 공기청정기를 틀어놔도 지하실 특유의 냄새가 났다. 벽지에 손을 대면 물기가 묻어 나왔다. 언젠가 한 번은 친구로부터 엘리베이터에서 전화 중이냐는 소릴 들어봤다. 집 안에 있는데도 통화 신호가 뚝뚝 끊겼다. 증폭기를 설치하면 좀 나아질까 했지만 소용없었다. 신호가 땅 속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후부터 전화가 오면 잽싸게 집 밖으로 나갔다. 괜한 의심을 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상 통화는 꿈도 못 꿨다. 집안의 이곳저곳 반지하 냄새를 풍기지 않는 구석이 없었다.


아빠는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매일 같이 청소를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러한 아빠마저도 반지하의 흔적을 지우지는 못했다. 사방에 가난의 표식이 널려 있었다. 심각하게 녹슨 창문, 누런 곰팡이가 핀 벽지, 침침한 조명, 기울기가 맞지 않는 천장까지. 이것들은 단순한 정리로 해결되는 것들이 아니었다. 엄마가 새벽녘에 몰래 우는 걸 봤다.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져도 반지하에 오리라곤 생각을 못 했던 것 같다. 최후의 보루를 지켜내지 못한 자의 닭똥 같은 눈물이 흘렀다. 나는 그 모습을 몰래 훔쳐보며 착잡해했다.




놀라운 일은 언제나 순식간에 일어난다. 나는 그 해 겨울, 재학생에게 기숙사를 제공해주는 고등학교에 합격했다. 주말에는 본가인 반지하 있다가평일이 되면 학교 2 1 기숙사로 거처를 옮겼다.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새로운 학교에서 외국 생활을 오래  친구들과 어울려 놀며 브로드웨이 뮤지컬  편과 스시 오마카세  끼가 선사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비밀스러운 이중생활의 시작이었다.


어느 날은 교내 동아리 지원서를 쓰는데 상세 주소란에 ‘지하 1층’ 네 글자 쓰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그렇다고 지번만 적자니 다른 사람들의 눈치가 보였다. '몇 동 몇 호인지는 안 써?' 아파트가 세상의 디폴트인 사람들에게 짤따란 우리 집 주소는 조금 이상해 보였다. 다세대 주택에 산다는 사실은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닌데... '튀는 아이'가 되고 싶지 않아 나는 자꾸만 어물쩍댔다.


가끔은 위선적인  모습에 역겨울 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나의 가난을 보란 듯이 전시할  없었다. 누구에게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가 하나씩 있기 마련이니까. 대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기울여 들으려 노력했다. 자신이 가진 소수자성을 공개적으로 밝힌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기숙사에 사니 꼭 지켜야 하는 규칙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늦은 밤 방에서 컵라면을 먹는 행동 같은 건 삼가야 했다. 룸메이트에게 실례가 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성장기를 온몸으로 통과하고 있던 나에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나는 늘 허기가 졌다. 오후 다섯 시에 먹는 급식으로는 6시간이 넘는 야자를 버티기에 역부족이었다. 복도의 사각지대에서 뜨거운 물을 받았고 방으로 돌아와 컵라면 면발을 흡입했다. 2학년 1학기 때 룸메이트는 이런 내 식성을 탐탁치 않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친구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나는 먹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 옆 침대에서 룸메이트가 시도때도 없이 라면 냄새를 풍긴다면 짜증이 날 것이다.


사적 공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설계된 기숙사 방 구조도 문제였지만, 공동생활에 익숙지 않아 타인의 대한 배려가 서툴렀던 과거의 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은 나는 과연 그때로부터 얼마나 성장했을까?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며 난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천천히 깨달아갔다. 너와 나 사이의 암묵적인 규칙을 정하고, 그것을 착실히 이행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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