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불타는 열정을 사랑한다.

by 루안 RUAN

"오늘 하루도 불태웠다. 나 오늘 진짜 열심히 일했다.. 드디어 새벽 1시야. 나 자신, 오늘도 정말 고생했어." "불타는 토요일 밤 즐겨라!! 정말 신나는 하루였어. 근데 더 놀아볼까?" "클라이언트가 내일아침까지 필요하다네. 아오 열받지만 당연히 되지! (밤새야지) 그냥 이렇게 살고 이틀에 한 번만 자도 될 것 같은데. 하루는 자고 하루는 그냥 밤새고 말이야. 놀 시간도 늘리고 일할 시간도 늘리고, 매우 효율적인걸"


이상하리만큼 쓸데없이 긍정적이고 24시간 내내 에너지로 가득 차있었다. 내 삶은 꿈에서조차 긴박했다. 쓰러져 잠들어서 화장을 지우지 못한 채로 잠이 들어버린 적도 많았다. 긴장을 놓지를 않았다. 나는 이런 내가 참 좋았었다. 젊은 날의 나는 이렇게 스스로를 격려하거나, 혹은 어쩔 수 없이 떠밀려 살아가곤 했다. 도시의 빛나는 야경에 흠뻑 빠져, 터질듯한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열정적으로 몸을 맡겼다. 친구들과 밤새 떠들고 춤을 추며 자유를 만끽한 뒤, 쓰러지듯 잠들 때쯤이면 어느새 아침이 밝아왔다. "벌써 아침이라고?" "와우~~~ 다시 시작해 볼까" 이렇게 스피디하게 달려야 하는 일상 속으로 다시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 숨 가쁜 반복 속에서 나는 매일 성취 도파민과 재미 도파민에 흠뻑 젖어 있었다. 회의실이나 힙한 카페에서 클라이언트들을 사로잡으며 설득하면서 해결방안을 함께 만들어가면서 느낀 뿌듯함, 친구들과의 밤샘 수다에서 빵 터지는 웃음, 그리고 매 순간 끊임없는 목표를 달성하며 쏟아지는 작은 승리들, 무거운 다이어리, 책, 노트북을 짊어지고 다니면서 지하철과 택시를 타며 서울의 도심을 누비는 나의 모습들, 이 모든 것이 도시가 주는 활력과 열정의 에너지였다. 나는 이런 숨 가쁘고 치열한 삶이 내 인생의 정답이라고 여겼다. 이런 삶, 나쁘지 않았다. 너무 행복했다.


"이런 나란 여자, 너무 멋진걸?"


어쩌면 이런 내 모습에 나 스스로 취해있었을지도 모른다. 중간이란 없었다. 무조건 'Strong' 하게, 제대로 놀고 제대로 일하자는 마인드였다. 그러나 이런 삶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대가도 있었을 것이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스케줄에 쫓기며 살아가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이러다 숨통 넘어가는 거 아냐?" 건강이 나빠지고 있었다. 욕을 잘 못하던 내가 내 입에서 나쁜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 자체가 (나 자신이) 점점 거칠어졌다. 진짜 숨통이 터질 것 같았다.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렬하게 불타는 에너지가 내 아이콘이 되어버린 냥 난 원래 이런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그저 그렇게 살았다. 내 안의 불안이 있을 때마다 또다시 열정으로 뒤덮으며 살았다. 인간은 언제나 양 극단의 삶을 경험하곤 한다. 이때 최고조의 극단적인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진 않았다. '불안'했을 뿐.


2025년 1월 초, 태국 라이브바에서 찍은 사진

"내 인생, 매일이 무대 위였다"

무대 위에 선 사람들을 본 적 있는가? 서커스단의 곡예사는 허공에서 균형을 잡으며 줄 위를 걷거나 날아다니고, 화려한 옷을 입고 조명 아래에서 준비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다. 재즈바의 연주자와 라이브를 하는 가수는 관객들의 숨소리까지 느끼며 즉흥적으로 음을 켜켜이 쌓아간다. 그들은 늘 최고의 긴장감과 즐거움 속에서 무대에 오른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저게 바로 인생 최고의 열정이 아닐까? 저 사람들 진심 행복해 보이는데, 진짜 행복한 거 맞아?"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무대 뒤에서조차 치열한 일상의 연속이었을 테니까.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들의 무대와 내 인생이 크게 다르지 않더라. 내 인생도 그렇더라.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멋드러진 삶을 살고싶었던 나였다.



2018년 여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찍은 서커스단 사진

이때 쯔음, 머리를 '쾅' 맞은듯한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이 일어났었다. 그리고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이제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볼 거야. 진짜 다 죽었어' 분노와 슬픔이 오가는 내 눈빛에는 이글이글 또다시 불타올랐고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있었다. 하지만 내 안의 목소리가 또다시 외쳤다. "너의 상황을 직시해 봐. 다른 방법은 없니?" 그때부터 자기 계발이나 경제경영이 아닌 인문학적인 책들을 찾아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책의 저자들이 하는 말들의 공통점을 찾게 되었다.

"현재를 살아라"


이때 내가 느낀 바로는 그저 인생을 즐기라는 말이나 흥청망청 살라는 말로 들리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을 한 땀 한 땀 촘촘하게 음미하라는 말 같았다. 이때부터 삶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루가 시작한지도 모르게 여러 일들로 하루를 짜릿하게 콜라 원샷하듯이 호로록 삼켜버리고 오늘 하루를 돌아보기도 전에 쓰러져 잠들 만큼 숨이 멎을듯한 삶을 살았었다. 하지만 이제 곰곰이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다양한 삶의 방식을 책과 경험으로, 그리고 사람을 통해 배우며 점점 새로운 챕터로 넘어가는 내 인생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최근 여행 중인 치앙마이에서 참가한 명상 & 요가 리트릿에서 명상이 끝난 후 매일 3분 이상 3달간 지속하라고 일러주시면서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셨다. "행복은 쫓아가는 것이 아니에요. 행복도, 고통도 영원하지 않아요. 인간은 태어나서 나이가 들고 필연적으로 죽음에 이르죠. 행복과 고통.. 그것들은 마치 구름처럼 왔다가 흘러가는 것일 뿐이죠.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의 내 감정과 모습을 그대로 알아차리는 거예요. 그것만 하면 돼요. 화가 나거나 고통스럽거나 너무 과도한 감정을 느낄 때, 숨을 멈추세요. 숨을 잠시 '멈춤' 하면 지금 이 순간으로 즉시 집중할 수 있어요." 대략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날, 걷기 명상과 집중명상, 요가명상을 하면서 또다시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었다.

개미 똥만큼 앞으로 나아가며 걷는 거라고도 볼 수 없는 '걷기 명상'은 매일 뛰다시피 걸어 다니고 뛰는 것도 아까워서 전기 자전거를 타는 내 모습과는 정 반대의 행태이다. 3초 동안 1센티 움직이고 또 3초 멈췄다가 또다시 3초간 1센티 움직이는 이 프로그램을 내돈내산으로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직접 참가했다. 난생처음 경험해 보는 답답함이었다.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매일매일을 고속도로 위의 막힘없는 고속버스처럼 속도감 있게 살아가는 나에게 이런 프로그램은 참으로 가혹했다. 하지만 10분 15분이 지나자 그냥 나의 발바닥이 땅에 닿는 것과 개미똥만큼 움직이는 나 자신에게 서서히 집중을 할 수 있었다. 답답함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마음이 아무리 바빠도 단 3초라도 '걸음 멈춤' 또는 '숨 쉬기 멈춤'을 하면 내가 여기 있고 어떤 감정이고 몸 상태가 어떤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을 또다시 알아차렸다. 고속도로에서도 사고가 나지 않기 위해서는 앞을 보고 뒤를 보고 옆을 보면서 교통법규를 지키고 중간중간 휴게소에서도 머물면서 차분히 나아가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달리다간 사고로 다 죽는 수가 있다. 인생 전체가 패닉상태에 빠져 멈춰버리는 것이 두렵다면 하루 3초라도 멈춰 서서 나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려보자.


살짝 코로 숨을 들이마신 후,
지금 바로 3초 숨을 참아보시겠어요?
"하나, 둘,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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