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연경 Mar 10. 2024

34세 미혼 여성에게 1년이란 - 긴자

혼자지만 도쿄 여행합니다 16,

 

-차 례-

01.1년이라는 시간

02.혼자지만 도쿄 여행합니다

 


긴자 세이코 시계탑.

1. 1년이라는 시간

1년에 몇 번 올지 모르는 도쿄에서 마지막 행선지를 ‘긴자’로 정했다. 희한하게도 긴자는 자주 생각났다. 스무 살의 긴자는 반짝이는 명품 거리가 줄지어 이어지는 곳, 스물아홉 살의 긴자는 백화점에서 가족들의 선물을 산 곳이었다. 쇼핑만 했을 뿐 사실상 미지의 동네였다.


1년에 몇 번 올지 모르는 도쿄’라고 하면 1년이 꽤 길게 느껴진다. 그러나 대상에 따라 와닿는 1년의 무게는 사뭇 다르다.






잠시 일본 여행에서 돌아온 후의 이야기를 해보겠다.


얼마 전 아침. 지금은 춥지만 금세 따뜻해져 봄이 성큼 다가오고, 또 순식간에 덥다고 손부채를 부치는 여름이 올 거라며 지인들과 떠들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다섯 시경, 한국 부산. 남자친구는 부모님께 1년이 지나고 나서 서로를 소개해주자고 말했다. 세 번의 도전 만에 입장에 성공한 만두전골집에서 직접 빚은 커다란 만두를 호호 불며 먹고 있을 때였다. 그는 부모님께 서로를 언제 소개해주면 좋을지 물었고, 나는 ‘우리가 소개해주고 싶을 때’라고 답했다. 부모님의 압박과 상관없이 우리가 내킬 때 소개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1년 뒤에 소개해주자는 그의 말에 서운함이 피어올랐다. 이제 겨우 두 달 정도 만난 우리지만, 1년은 너무 길다 싶었다. 1년이 길다? 자신이 생각하고도 나중에 곱씹어보니 다소 어이가 없었다. 그와 사귀기 전에는 한 사람을 알고 친해지려면 2, 3년은 지나야 한다고, 결혼은 3년 정도는 지나야 생각할 수 있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가 제시한 1년이라는 기간을 길게 느끼고 있었다. 3개월 정도 지나면 소개를 고 결혼도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었던 건가??


아침에는 지인들과 날씨 이야기를 하며 1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면서 푸념을 해놓고, 그가 제시한 1년은 길다고 느꼈다. 시간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나눈 것이고 나눈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흘러가지만 애정을 담는 정도에 따라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흐르는지는 달라졌다.

긴자역.

처음에는 그를 너무 사랑하니까 한시라도 빨리 함께 있고 싶어서 1년이 길다고 생각했나 싶었다(드디어 사랑 때문에 미쳤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가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면 굳이 결혼이라는 체제를 선택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랑을 안겨줄 수 있다. 또한 결혼이라는 커다란 행사가 초래할 수 있는 고부 관계, 집안일 분담과 같은 예민한 문제는 생각만 해도 피곤이 밀려왔다.


아니면 서른넷 여성이라는 나이 때문에 나도 모르게 결혼의 압박을 느끼고 있는 걸까? 이전 연애에서 7년간 사귄 남자친구와 결국 결혼하지 못했으니 이번에는 얼른 성공시키고 싶은 마음. 그러나 나이에 밀려 결혼한다고 과연 행복할까 싶다. 그리고, 분명 나와 달리 나이에 크게 구애받지 않은 여성도 있다.


그렇다면 본질을 더 파고들어 보자. 나는 왜 나이가 들었으니 얼른 결혼해야 한다고, 결혼하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을까. 머리로는 결혼이라는 체제가 무조건적인 행복이 아니라고 인식했지만, 마치 DNA처럼 '결혼해야 한다'는 확고하지만 고루한 생각이 내 핏속에 알알이 맺혀 있었다. 도대체 왜?


나는 객관적인 척(사실은 주관적)하면서 생각을 해보았고, 결혼이라는 고정관념의 근저에 부모님이 있다고 판단했다.





저녁의 긴자.

신주쿠에서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긴자로 향했다. 긴자에서 잡화점인 돈키호테와 유명한 닭가슴살 카츠 가게가 있다기에 가볼 생각이었지만, 이것이 주목적은 아니었다. 그냥, 긴자가 보고 싶어서 오랜만에 갔다. 우리 부모님을 보러 갈 때처럼 말이다.


평소에 부모님 생각을 자주 한다.

하지만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본가가 차를 타고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음에도 빈번하게 가지는 않는다. 생각만 하고 자주 발걸음하지 못한 도쿄 긴자처럼 말이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생각한다. 엄마의 아픈 무릎이 쑤시지는 않겠지, 항상 강건한 아빠지만 어디 불편하시지는 않겠지. 그러나 부모님의 건강을 걱정하면서도 일정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니는 엄마, 아빠 말은 잘 안 들으니까…”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 부모님이 구수한 부산 사투리로 항상 빼놓지 않고 하시는 말씀이다. 말을 잘 안 듣는다고 직접적으로 들으니 왠지 울컥했다. 마음대로 행동한 듯 보일지라도 나는 어떠한 결정을 할 때 엄마, 아빠를 항상 생각했는데. 부모님의 말씀은 잘 안 듣지만 그럼에도 결혼해서 부모님께 효도하는 삶을 살고 싶었던 것처럼 말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반 친구들의 이름 옆에 부모님의 학력과 직업이 적힌 종이를 친구와 본 적이 있는데, 엄마와 아빠의 학력, 직업을 보고 어린 나이에도 친구가 까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에게 진짜인지 되물은 적이 있다. 서른이 넘은 지금은 그 종이를 아이들에게 생각 없이 보여준 선생님이 너무했다고 느낀다.


최근 남자친구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아빠가 쌓아온 커리어를 내가 물었을 때 엄마는 말했다.

“니는 남자 앞에 있어도 굳이 부모님이 어떻고 설명할 필요도 없데이. 아-무말 없이 가마이 있으면 된다. 이미 어느 집안에 내놓아도 절대 뒤지지 않으니까.”

부모님은 누군가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따라올 수 없는 학력, 커리어를 지닌 ‘클라쓰’가 다르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계신다.

글쎄다. 자부심 넘치는 부모님 아래에서 나는 자주 방황하고 배회했다. 뼈대 있는 학자 집안에 어울리는 똑 부러지는 자식. 확률적으로 그리되어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아니, 그렇지 못했다. 어디서나 존경받는 부모님인데 딸은 사회에서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집안에서는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다가 사회라는 차갑디차가운 물을 뒤집어쓰고 정신을 번쩍 차리니, 사회초년생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여리고, 자주 울고, 자존심만 세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부류였다.


자신과 먼 사람에게는 좋은 말만 해주고 가까운 사람에게는 진실을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부모님이 앞에서 가족을 칭찬해 주시는 일은 드물었다. 비록 꿈같을지라도 힘이 되는 이상적인 말과 위로를 해주신 적이 없다. 칭찬 한마디가 듣고 싶었는데 나는 부모님의 성에 차지 않았나 보다. 아니, 불완전해도 칭찬하려면 할 수 있었을 텐데.


학교에 다니면서, 심지어 나이 지긋한 인사 담당자가 면접에서 부모님의 직업을 보고 ‘존경할만한 분들이시네요’라고 칭찬해 줄 정도였지만 정작 딸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가 사회에 그나마 떳떳하게 발 디딜 수 있도록 무조건적으로 베풀어주신 사랑을 알기에 부모님을 아주 사랑하지만, 엄격함에서 우러나오는 팩트 폭력과 가끔 지나친 자부심 때문에 나오는 타인을 향한 무시 때문인지 너무나 죄송하게도 존경하는 마음이 좀처럼 들지 않았다. 머릿속에 박혀 있던 이러한 생각을 지금 글로 쓰면서도 죄송스러워서 미칠 것 같다. 부모님을 존경하지 않는다니 나는 불효녀야. 부모님을 아주 사랑한다. 하지만 존경과 사랑은 다르다.


웃기게도 나는 존경하지 않는다면서 가끔 필요할 때 주변 사람에게 부모님을 언급했다. ‘우리 엄마, 아빠 이런 사람이야.’ 본능적으로 초라한 나를 보이기 싫어서 부모님의 힘을 이용한다. 너무나 치사한 딸이다. 부모님을 이용한 후에는 항상 뒷맛이 안 좋은 디저트라도 먹은 것처럼 속이 메스꺼웠다.



부모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로를 정해준 언니 덕분에 상대적으로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 집안과 눈곱만큼의 관련도 없는 일본어 프리랜서로 살면서 엄마에게 대단하다는 칭찬을 듣고, 아빠가 주변 사람에게 나를 칭찬하시기까지 꼬박 5년의 시간이 걸렸다.


사실 평생 칭찬받지 못할 줄 알았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부터 대단한 부모님께 인정받기를 포기했었다. 열심히 번역하면 인정해 주시겠지, 책을 내면 인정해 주시겠지… 모두 정답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포기한 후에야 자신이 원하고, 행복해하고, 가고 싶은 길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02.혼자지만 도쿄 여행합니다


하늘로 우뚝 솟은 긴자 세이코 시계탑이 조명을 받아 더욱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긴자에 밤에 오기를 잘하였다. 긴자를 수놓는 화려한 건물들은 밤을 밝히는 조명과 너무나 잘 어우러졌다.


미쓰코시, 마쓰야 백화점 등을 지나쳐 다소 후미진 곳에 있는 돈키호테에 들렀다가, 드넓은 사거리를 건너 히가시긴자역 근처에 있는 ‘이마카츠 긴자점’으로 향했다. 저녁 아홉 시에 가까운 시간에도 지하에 있는 가게 앞으로 줄 서 있는 손님을 보고 포기할까 하다가 명물 닭가슴살 카츠(ささみカツ)가 궁금해 조용히 줄을 섰다. 한국인만 많은가 했더니 양복을 입은 일본인들도 줄을 섰다.

긴자 이마카츠.

평균 대기 시간보다는 짧게 이십 분을 기다리고 지하의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아기자기한 내부가 펼쳐졌다. 추울 수 있는 지하를 따뜻한 카츠와 사람들의 온기로 데우고 있었고, 원래 홀로 식사하는 사람이 많은 일본임에도 두 명 이상의 손님이 많은 이곳에서 혼자 자리에 앉았다.


안심, 등심 카츠를 주문하는 옆 테이블의 소리가 들렸지만 대표 메뉴인 닭가슴살 카츠를 주문했다. 저녁 아홉 시 긴자에서 맞이한 나 홀로 식사에는 맛이 깔끔한 닭가슴살이 어울렸다. 주문하니 잠시 후 양배추가 리필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수북하게 나왔다. 옆에 놓인 참깨 소스를 뿌려 먹으니 아삭하고 깔끔해 카츠와 잘 어울릴 듯했다.

닭가슴살 카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나온 길쭉한 닭가슴살 카츠를 한 입 베어 물자 보슬보슬한 가루가 먼저 느껴지고 닭가슴살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우면서 고소한 살코기가 입안을 채웠다. ‘익히 알던 닭가슴살의 개념을 뒤집을 정도로 육즙이 가득하고 부드럽다’라는 가게의 설명에 걸맞은 훌륭한 일품요리였다. 이번 도쿄 여행에서 먹은 음식 중 단연 1위였다.


화려하지만 쉽게 오지 못했던, 부모님과 같은 긴자에서 나 홀로 따뜻한 음식을 먹고 있었다. 가족, 남자친구… 다음에 함께 오고 싶은 사람이 떠올랐지만 지금 이 맛과 분위기를 오롯이 즐기는 건 나다. 혼자 도쿄에 온 지금, 퍽이나 부드러운 닭가슴살을 자신에게 포상을 주듯 먹기 시작했다.



혼자 앉아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생각해 보니 긴자 이마카츠의 닭가슴살 카츠가 이번 일본 여행의 마지막 만찬이다.


작년 9월 무더운 여름, 실로 오랜만에 도쿄에 여행을 온 후 올해 1월 다시 도쿄를 찾았다. 여행의 시작점인 아사쿠사를 거쳐 우에노, 도요스, 근교인 가마쿠라, 시부야, 오모테산도, 하코네, 신주쿠, 긴자… 띄엄띄엄하지만 선명하게 남은 순간이 언뜻언뜻 빨리 지나갔다. 우에노 공원에서 본 푸른빛으로 엉킨 잎이라든지, 가마쿠라의 빛나던 해변이라든지, 하코네의 경이로운 후지산이라든지.

카츠와 함께한 우롱차.

테이블에 앉아 우롱차가 담긴 잔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마치 여느 창문에 비친 나를 보는 듯했다. 전철 안에서, KTX 안에서, 퇴근 후 집에 오면서, 집 베란다 창문으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창문에 나를 비추어 보았는가. 다행히 이번에는 여행을 오기 전 말도 못 하게 엉망이던 얼굴이 많이 좋아졌다. 과거에는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이 보기 싫게 초라할 때가 많았는데 지금은 나쁘지 않았다.


삼십 대 여자, 미혼, 프리랜서로 불완전하다는 생각, 여기에 번아웃까지 안고서 온 도쿄 여행. 과연 천사백만 명이 숨 쉬는 도쿄에 혼자 와서 내 물음표의 답을 찾았을까?



'지금까지 너무 수고 많았네…

이대로도 충분하고, 불완전해도 충분하고 멋있구나.'



확실한 건, 나는 수고했다면서 자신을 인정하며 위로하고 있었다. 나 홀로 여행의 끝에는 항상 지금까지 잘해왔다며 토닥이는 시간이 있었다. 자신을 위로하고 따뜻한 말을 건네는 몇 안 되는 시간이었다.




혼자지만 도쿄를 여행하면서,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문구를 말하고 싶다.

평생 사회적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데 급급했던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의 여주인공 칠월. 어느 날 좁은 자신의 동네에서 벗어나 큰 세상을 보러 가겠다고 각성한 후 자신에게 붙어 있던 많은 수식어를 과감하게 버리고 먼 길을 떠나려 할 때, 그녀의 엄마는 말한다.



조금 굴곡진 삶을 산다고 해서

불행해지는 건 아냐.

좀 많이 힘들 뿐이지.

 

어차피 여자는

어떤 선택을 해도 힘들어.

내 딸만은

예외이길 바라는 거지…”



나도 칠월처럼 머릿속에 되뇌어본다.

엄마, 아빠. 앞으로도 조금만 더 제 행복을 찾아 나가 볼게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볼게요.


일도, 결혼도, 출산도,

사랑도, 남자도,


실패해도, 성공해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선택하고 경험해 볼게요. 진심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땐 도전해 볼게요. 포기하고 싶을 때도 직접 결정해 볼게요. 꺾이지 않고 최선을 다할게요.

그러니 응원해주세요, 저도 영원히 사랑해요...



눈앞에 있는 닭가슴살 카츠를 다시 베어 물었다.

나름대로 행복하고 고소했다.

 


도쿄 긴자에서 혼자 1월을 겪은 서른네 살 여성의 1년은 빠른 듯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자신조차 모르지만, 그래도 꿋꿋이 더 넓은 세계를 밟고 나아가리라 다짐하며…


-프리랜서 김연경



긴자 이마카츠

블로그도 있어요: https://blog.naver.com/inpikaaa

인스타그램도 있어요: https://www.instagram.com/translator_yeonkyoung_8000/


긴자 '이마카츠'

https://maps.app.goo.gl/1aMJ1VPg7VnGhZxX8

#도쿄여행 #도쿄 #일본여행 #도쿄2박3일 #30대여성 #미혼 #자유 #번아웃 #혼자지만도쿄여행합니다 #여자 #멋진여자들 #프리랜서번역가 #프리랜서 #긴자 #긴자맛집 #긴자이마카츠 #도쿄맛집 #도쿄긴자 #여자혼자도쿄여행

이전 16화 해피 엔딩 장례식 - 나카메구로, 몬자야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