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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차 일기장, 시간표식 일기

하편에서는 현재 제가 일기장을 쓰고 보관하는 방법을 조목조목 살펴보려 합니다. 사실 비밀일기를 쓰는데는 어떤 양식도 필요 없습니다. 솔직하게 쓰고 보안만 철저히 해두면 됩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당장에 내 주의를 끄는 일에 대해서만 쓰다보면 삶의 다른 면들에 대해서는 놓치게 됩니다. 3장에서 이야기한 전인적 자기돌봄의 일기를 쓰기 위해서는 하루를 시간대별로 살피는 비공개 일기가 유용합니다. 전체 줄거리를 가진 빈틈없는 나만의 역사책을 얻기 위해서도 그러하구요. 삶의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 등 희노애락 중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담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별 일 없이 평범한 일상’의 시기에도 매일 쓸 거리가 가득합니다. 고민할 필요없이 간단히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기 때문에 부담도 덜 하고 매일 할 수 있기 때문에 습관잡기에도 좋습니다. 


시간표식 일기 쓰기

지금 제가 일기를 쓰는 방식에 이름을 붙인다면 '시간표식 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장이나 학교 수련회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일정 시간표'를 떠올려보시면 이해가 쉬우실 겁니다.


예시로 써본 일기입니다.

현재 저는 일정과 할 일 그리고 일기를 모두 '구글캘린더'란 앱 하나로 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계획과 결과를 나란히 볼 수 있다는 점, 일기를 쓰다가 할 일이나 일정이 떠오르는 경우 앱전환을 할 필요 없다는 점 등 여러 장점이 있어 이렇게 통합관리하고 있습니다.


갈색이 일기이고 그 외 색은 일정 아니면 할 일들입니다. 모두 별도의 캘린더를 두고 필요할 때 일기만 또는 일정만 인쇄하거나 볼 수 있도록 해뒀습니다.


시간설정을 터치와 드래그만으로 할 수 있어 매우 편리하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시간별로 한눈에 들어와 파악도 쉽습니다. 시간관리에 특히 유용합니다.


구글캘린더는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및 데스크톱에서 모두 동기화가 되다 보니 언제 어디서든, 어느 기기로든 일기를 쓸 수 있다는 점도 만족스러웠습니다.


기록은 저녁에 자기 전에 몰아서 하기보다는 한 가지 활동이 마무리될 때마다, 그때그때 쓰는 편입니다. 좀 더 길게 메모를 추가하고 싶은 활동에 대해서는 저녁에 시간이 있을 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일기 캘린더를 PDF로 인쇄해서 보관합니다. 매일 하는 것은 아니고 한 달에 한번 정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장에서 좀 더 자세히 해보겠습니다.


지난 22년 간 아날로그와 디지털 기록도구를 자주 왔다 갔다 했는데 최근 3년 정도 이 방식을 고수하는 중입니다.

일기, 플래너 및 다양한 용도의 캘린더를 가지고 있습니다.


꼭 다 채워쓸 필요는 없지만

시간관리도 할 겸 저는 웬만하면 시간마다 다 채워서 쓰려고 합니다. 하지만 의무적인 것은 아닙니다. 바쁘거나 피곤한 날은 듬성듬성 비워놓기도 하고 반복되는 일상은 굳이 매번 기록하지 않습니다. 위 예시 일기장의 아침 시간대도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각 시간대별 활동을 기록할 때도 최대한 요약해서 쓰고 언급할 내용을 선별하기도 합니다.


1시간 정도마다 노트를 펴서 뭘 했는지 한 줄로 간단하게 기록해 보세요. 그것이 일상기록입니다. 바쁜데 어떻게 그렇게 하냐고 물으시는 분이 계신데, 시간도 얼마 안 걸리는 이 일을 한 달만 딱 꾸준히 해도 머리 구조가 바뀌는데 안 하시겠습니까?

김익환, [거인의 노트] 저자


*출처 : [쓸데없는 메모 3위 '많이 쓴 메모' 2위 '보고 쓴 메모' 1위는..." 25년 기록학 전문가가 말하는 메모 '제대로' 하는 법] 콘텐츠 내 일부언급 요약정리


시간표식 일기의 이점들

앞선 글 군데군데 언급된 장점들을 모아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삶의 다양한 측면을 접할 수 있다

앞서 '스스로 돌보다' 장에서 언급했던 이점입니다. 특정 주제에 해당하는 사건만 쓰지 않고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시간별로 요약정리하기 때문에 다양한 삶의 면면들을 살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2) 무엇을 기록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덜 수 있다

일기를 쓰고 싶긴 한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끼시는 분들에게 특히 유용합니다. 뭘 쓸지 고민할 필요 없이 오늘 있었던 일을 시간별로 쭉 써 내려가면 되니까요. 기억력만 활용하시면 됩니다.


3) 중요한 사건의 맥락을 얻을 수 있다.

평소 꾸준히 써둔 시간표식 일기는 중요한 사건의 맥락을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특히 일상의 누적으로 발생한 사건들이 그렇습니다. 단순한 예로 누군가와 다퉜는데 일기를 보니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3일 동안 잠을 별로 못 잤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수면부족으로 신경이 예민해진 점도 다툼의 원인 중 하나로 고민해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4) 중요한 사건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게 해 준다

오늘 있었던 일을 시간순서대로 쓰다 보면 놓칠뻔한 중요한 기록거리를 발견할 때도 꽤 있습니다. 뭔가 잘 기억나지 않을 때 겪었던 일들을 시간순서대로 차례로 되짚어보며 기억해 낼 가능성을 높이듯이 말입니다.


5) 시간관리에 용이하다

오늘 하루 시간을 어떻게 썼는지 한눈에 보이기 때문에 시간관리에 좋습니다.


6) 플래너와 일기를 통합관리하기 편하다

동일한 양식을 공유하기 때문에 나란히 두고 읽어볼 수 있습니다. 계획과 결과를 함께 고려할 수 있고 또 앱 전환 또는 노트 변경할 필요 없이 곧바로 작성할 수 있습니다. 일정을 쓰다가 이전 일정에 대한 일기를 곧바로 남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일기를 쓰다가 일정을 남길 수도 있고요. 둘 중 하나만 써도 다른 하나를 기록하도록 자극할 수 있습니다.


7) 소중한 일상기록 놓치지 않기

시간표식 일기의 비어있는 시간은 쉽게 눈에 띕니다. 애초에 반복적이고 사소한 장면이기 때문에 쓰지 않았겠지만 저는 때로 이 공간을 세세하게 채우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당연해서 인식하지 못하는 소중한 장면을 발견하고 또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일상은 어느샌가 변해버리기 때문에 지나가면 다시 떠올리기 힘들기도 합니다.


매일 저녁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10살, 7살 두 아들은 보통은 환호를 지르고 방방 뛰며 엄마와 아빠를 맞아준다. 이리도 반가울까. 덩달아 나도 더 반갑다. 그리고 우리가 오 전 각자 하던 놀이, 게임이나 영상에 나온 내용을 옷을 갈아입으려는 내 옆에 붙어서 조잘거리곤, 반응도 확인하지 않고 어느샌가 사라져 있다. '이것 보라'며 끌고 갈 때를 빼곤. 그리고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데 둘째는 자꾸만 돌아다니며 밥을 먹고 아내는 한숨을 쉬며 다시 앉힌다. 물론 나도 옆에서 그러지 말라고 거든다. 첫째는 요즘 밥투정이 조금 늘었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나면 꼭 얼린 우유를 갈아서 빙수를 해 먹는다. 마치 군생활 때 했던 포사격 사전경고처럼 '돌린다!'라고 외치면 둘 다 동시에 '응' 한다. 빙수 기계 소리가 커서 그렇다. 둘째와 나는 꼭 연유를 뿌려먹고 첫째는 안 그런다. 아내는 내 것을 꼭 두 세 숟가락만 뺏어먹어야 한다. 한사코 자신의 그릇 마련은 거부한다. 다이어트해야 하니까.

23년 어느 날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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