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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일

클라이언트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 대할 때 관계는 비로소 시작된다

by Eunhye Grace Lee

사회복지사로 일을 하다 보면 ‘클라이언트’라는 단어를 자주 쓰게 됩니다. 실무에서는 꼭 필요한 명칭이고, 행정과 기록에서는 빠질 수 없는 표현이지요. 하지만 저에게 그 단어는 어느 순간부터 조금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이 누군가를 특정한 틀에 넣고 바라보게 만들고, 그 안에 ‘제공자’와 ‘수혜자’라는 구분이 뚜렷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기억합니다. 기록지에 ‘클라이언트’라고 적은 바로 그날, 실제로 그분을 마주 앉았을 때의 순간을요. 서류 속의 대상자가 아니라, 이름이 있고, 지난 시간이 있고, 설명되지 않는 침묵과 감정을 가진 한 사람이 제 앞에 있었습니다. 그 앞에서 다시 그분을 ‘클라이언트’라고 부르려니, 왠지 제 마음이 무례하게 느껴졌습니다.


마르틴 부버는 인간의 관계를 ‘나와 그것’과 ‘나와 너’로 구분했습니다. 사회복지의 실천이 진정한 만남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나와 너’의 관계 속에 서 있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상대를 문제의 집합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삶으로 바라보는 태도. 그것이 관계를 지탱하는 출발점입니다.


어느 치매 초기 어르신이 떠오릅니다. 기록지에는 ‘사회적 고립’이라는 문장 하나가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 그분이 들려주신 삶의 이야기는 그 짧은 문장으로는 담을 수 없었습니다. 전쟁을 겪고, 가족을 떠나보내고, 홀로 살아온 긴 시간…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업무 기록보다 그분의 말 하나하나를 조용히 받아 적고 싶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대상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사람’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대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상태보다 사연을, 필요보다 감정을 먼저 듣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무엇이 필요하십니까?’를 묻기 전에, ‘지금 어떤 마음이십니까?’를 묻는 일. 그렇게 시작된 관계는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문제 해결이 아니라 존중이 중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기록지를 작성할 때마다 그 사람의 이름을 더 오래 바라봅니다. 단순한 한 명의 ‘클라이언트’가 아니라, 하나의 고유한 존재로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부디 당신도 기억해 주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사람은 숫자도, 진단도 아닌 이름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요.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것, 그것은 사회복지의 시작이자 끝까지 지켜야 할 태도라는 것을요.

당신의 길 위에 늘 이 다짐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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