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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도움은 시혜가 아니라 만남이다

도움은 위에서 아래로 주는 것이 아니라, 옆에 함께 서는 일이다

by Eunhye Grace Lee

처음 사회복지사로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돕는다’는 말에 늘 조심스러웠습니다. 그 말 속에는 어쩐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뉘앙스가 스며 있었으니까요. 물론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길을 걸어왔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순간들은 내 생각을 조금씩 바꾸어 놓았습니다.


한 아이가 제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 저는 도와달라고 한 적 없어요. 그냥 제 얘기 좀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그 말은 제 안에 있던 많은 확신들을 흔들었습니다. 내가 ‘돕는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사실은 상대에게는 ‘판단받는다’는 감각일 수도 있겠구나. 도움은 언제든 권력이 될 수 있고, 때로는 상처가 될 수도 있음을 그 아이의 목소리에서 배웠습니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인간은 ‘나와 그것’이 아니라 ‘나와 너’의 관계 속에서 진정으로 만난다고 했습니다. 내가 도와주는 사람이고, 당신이 도움을 받는 사람이라는 구조 안에서는 결코 평등한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진짜 도움은 동등한 자리에서 서로를 바라볼 때 시작됩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도움’이라는 말보다 ‘함께함’이라는 말을 더 소중히 여기려 합니다. 함께 걷고, 함께 듣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머무는 시간. 그 안에서 “누가 누구를 도왔는가”라는 질문은 자연스레 사라집니다. 남는 건, 우리가 서로의 삶에 잠시 머물렀다는 흔적뿐이지요.


어느 날 한 분이 제게 이런 말을 해주셨습니다.
“선생님은 뭘 도와주진 않아도, 옆에 있어서 좋아요.”

그 말이 제 마음을 오래도록 따뜻하게 밝혔습니다. 무언가를 주지 않아도,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회복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저는 그 진실 때문에 여전히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기억해 주었으면 합니다. 도움은 기술이나 자원이 아니라, 만남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사실을요. 그리고 우리는 위에서 손을 내미는 사람이 아니라, 옆에 앉아 있는 사람,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 때, 진짜 도움을 건넬 수 있다는 것을요.

그 다짐을 오늘도, 조용히 당신에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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