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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사랑 없는 돌봄은 차갑다

일에는 절차가 있지만, 사람에게는 온기가 필요하다

by Eunhye Grace Lee

돌봄은 때로 너무 익숙해서 감정 없이 수행되기 쉽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방문하고, 필요한 절차를 안내하고, 계획을 세우고, 서류를 정리하고… 모든 것이 매끄럽게 끝난 뒤에도 어쩐지 마음이 무겁고 공허한 날이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제 자신에게 묻곤 합니다.
“나는 지금 사람을 돌본 걸까, 아니면 일만 처리한 걸까?”


돌봄은 기능이 아닙니다. 어떤 자원을 연결했는지보다 중요한 건, 그 순간 내가 그 사람의 마음 가까이에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 없는 돌봄은 차갑지 않지만, 따뜻하지도 않습니다. 예의는 남았지만 정서는 남지 않는 돌봄, 그것은 일로서는 완벽했지만 사람으로서는 부재한 시간이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 가운데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행위’가 가장 인간다운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돌봄이 단순히 노동과 작업으로만 남을 때, 우리는 효율적인 기능인으로만 존재합니다. 그러나 돌봄이 ‘행위’가 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사람으로 살아 있습니다. 그 핵심에는 언제나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습니다.


돌봄이 점점 제도와 계약의 언어로 번역되는 시대에, 우리에게 더 필요한 건 바로 이 감정입니다. 사랑 없는 돌봄은 결국 돌보는 사람도, 돌봄을 받는 사람도 고립시키기 때문입니다. 마사 누스바움이 말했듯 인간의 존엄은 정서적 교류 속에서만 실현됩니다.


어느 날 한 어르신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참 잘 챙겨주는데, 가끔 너무 조용해서 조금 서운해요.”
그 말씀은 제게 돌봄의 온도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저는 성실했지만, 정작 ‘사람과 사람 사이의 체온’을 놓치고 있었던 겁니다. 그날 이후 저는 조금 더 길게 대화를 이어가 보았습니다. 절차나 서류 이야기가 아니라, 계절 이야기를 하고, 창밖의 꽃을 함께 보며 웃었습니다. 그렇게 돌봄의 결이 달라졌습니다. 관계가 따뜻해지자 제 마음도 덜 피로했고, 그분의 눈빛에도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은 특별한 행동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작은 말 한마디에도 진심을 담는 태도. 그 작은 태도가 돌봄을 따뜻하게 만들고, 돌보는 사람 자신도 지치지 않도록 붙잡아줍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잘 돌보는 사람’이 되려 애쓰지 않습니다. 대신, ‘따뜻하게 함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돌봄이며, 그 안에서만 서로가 사람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 또한 이 다짐을 기억하며 걸어가길 바랍니다.
돌봄이 일이 아니라 관계가 될 때, 우리는 더 오래, 더 깊이 살아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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