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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킥더드림 Oct 13. 2023

한 밤에 놀이터에서 9

2주 후. 소희는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먹고 아파트 산책로를 걷고 있다. 해는 완전히 져서 날이 어두워졌다. 띄엄띄엄 서있는 가로등이 산책로를 어슴푸레 비추고 있다. 양방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다. 가로등 밑으로 지나갈 때 사람들의 얼굴은 환하고, 빛이 희미한 가로등 사이를 지날 때는 사람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진다.
 2주 동안 솜이를 보지 못했다. 깊은 대화를 나눈 그 날 이후로 솜이가 놀이터에 나타나지 않았다. 솜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제 4학년인데 졸업하면 뭐할지 생각하고 있어?” 어머니가 물었다.
 “취업, 대학원, 유학 이 세 가지 중에 하나 아니겠어?”
 “잘 고민하고 결정해. 어떤 결정을 하던지 엄마는 네 의사를 존중할 거니까. 이제부터 네가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온전히 네 책임이야.”
 소희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산책로 한 쪽 구석에 몇몇 사람들이 모여 웅성웅성한다.
 모여 있는 사람 중 누군가가 화를 내며 말한다. “에고, 얼굴에 상처가 났네. 도대체 어떤 나쁜 놈이 이런 거야?” 
 “그러니까 말이에요. 이렇게 착하고 순한 고양이를 말이지. 얼마나 아팠을까?” 또 다른 사람이 걱정스러운 투로 말했다. 
 소희와 어머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을 지나면서 산책로 고양이를 봤다. 정말로 얼굴 여기저기에 상처가 많이 보였다. 그 놈은 순진한 표정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위로를 받고 있었다.
 “진짜 저 고양이 얼굴이 왜 저래? 성격이 아주 순하던데.” 어머니가 말했다.
 “엄마, 겉모습만 보고 알 수 없는 거야. 저 고양이 나쁜 놈일 수도 있어.”
 “무슨 소리야. 딱 보면 알지. 사람을 얼마나 잘 따르는데.”
 소희는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그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놈 얼굴의 상처를 보니 솜이가 더 걱정된다. 


 1년 후. 내일은 첫 출근하는 날이다. 
 늦은 밤, 집 앞 놀이터에 왔다. 1년 동안 솜이를 보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네에 앉아서 솜이를 기다린다. 오늘도 나타나지 않으면 더 이상 기다리지 않으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나지막한 소리로 솜이를 부른다.
 “솜이야, 솜이야, 솜이야.”
 여기저기 몸을 돌려가며 반복해서 부른다. “솜이야, 솜이야, 솜이야.”
 1년 동안 나타나지 않았는데 오늘 나타날 리가 있겠는가? 거처를 옮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솜이는 이 아파트 단지를 떠나기를 두려워했다. 솜이에게 무슨 큰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 1년 동안이나 나타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마지막으로 실낱 같은 희망을 안고 소희는 솜이를 부르고 또 부른다.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소희가 황급히 몸을 돌렸다.
 소미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소희를 보고 있다. “이 밤에 미친년 마냥 무슨 소리를 내는 거야?”
 “아.. 아니야. 그냥, 고양이 부른 거야.”
 “너 내일 첫 출근하는 날인데 일찍 안 자고 무슨 고양이를 부르고 있어.”
 “언니 어쩐 일이야?”
 “그냥 이 근처에서 술 먹다가 늦어서 여기서 자고 출근하려고. 얼른 들어가자.”
 소미와 소희는 집으로 향한다.
 “그때 네 친구라는, 놀이터에 산다는 그 고양이 찾고 있는 거야?”
 “응. 1년 전부터 안 보여서.”
 “1년 전부터 안 보였으면 다른 곳으로 갔거나 죽었겠지. 뭐하러 찾아. 그런데 조금 전에 산책로 지나왔는데 예전에 살던 그 유명한 산책로 고양이가 없고 다른 고양이가 거기에 있더라. 사람들이 모여서 다른 고양이를 예뻐하고 있던데.”
 “다른 고양이가 있다고?”
 “응. 예전에 살던 고양이는 토실토실하고 귀여웠는데 좀 전에 본 고양이는 날렵하고 카리스마 있게 생겼어. 전에 살던 고양이랑 생김새는 다른데 무늬는 비슷했어.” 소미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내가 잘못 본 건가? 같은 고양이인데, 살이 빠져서 다르게 보였던 건가? 음.. 내가 이사 가기 전에 산책로 고양이 여러 번 봤는데 확실히 다른 고양이가 맞는 것 같아.”
 설마 지금 말한 고양이가 솜이일까? 소희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솜이가 이 생태계의 폭압적인 일인자 자리에 갔을 리가 없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 당장 달려가서 확인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가 두렵다.
 “그나저나 내일 첫 출근인데 긴장되지 않아?” 소미가 물었다.
 “당연히 긴장되지.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고 막연한 불안감 같은 것도 있고 그래.”
 “그러게 걱정이다. 너같이 엉뚱하고 공상에 빠져 사는 애가 진짜 현실에서, 어른의 세상에서 어떻게 견딜지. 세상은 때때로 괴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해.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이 말이야. 괴로움이 없으면 즐거움에 내성이 생기거든. 좋은 일만 반복되면 아무리 좋은 일이 생겨도 어느 순간부터 즐거움을 느끼지 못해. 신은 세상을 왜 이따위로 만들어 놓았는지 모르겠어. 그런데 뭐.. 어쩌겠어 세상이 이렇게 생겨 먹었으면 생겨 먹은 대로 맞춰서 살아야지. 안 그래? 언니 말 잘 새겨듣고 열심히 해.” 
 소희는 의아한 표정으로 소미를 쳤다 봤고, 소미는 소희의 어깨를 토닥였다. 
 “아니다. 어쩌면 괜한 걱정일 수 있겠다. 오히려 네가 누구보다 잘 할 수도 있어.” 
 “어째서?”
 “판타지 없이 견디기에는 현실이 너무 버거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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