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2021년 4월 3일 – 선아 2
오늘은 고등학교 동창인 진서와 미지를 만나는 날이다. 우리는 어릴 때 반포에서 자랐고, OO여자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다. 미지와는 중학교도 같이 다녔던 반면, 진서는 고등학교에 와서 알게 되었다. 진서와 나는 고등학교 때 전교 1, 2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고등학교 1학년 첫 번째 시험에서 진서가 전교 1등을 했고, 나는 2등을 했다. 하지만 두 번째 시험 결과는 달랐다. 내가 전교 1등이었고, 진서가 2등을 했다. 서로 번갈아 가면서 전교 1, 2등을 한 것을 계기로 우리는 친해졌다. 고등학교 내내 우리는 친하게 잘 지냈지만, 공부에서만큼은 서로 지고 싶어하지 않았다. 경쟁심에서 그랬는지 진서는 항상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척을 했다. 분명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을 많이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굳이 왜 그러는지 이해가 잘 안 됐다. 진서는 공부만 잘했다. 하지만 나는 공부만 잘 한 것이 아니라, 예쁘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고, 인근 고등학교 남학생들에게 인기도 엄청 많았다. 아마 그 학교 남학생들은 진서의 존재를 몰랐을 것이다. 진서는 큰 키에 살집이 약간 있어 덩치가 커 보였고, 근시가 심해 도수가 높은 안경을 쓰고 다녔다. 키가 큰 것을 빼면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외모여서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을 스타일이 아니었다. 진서가 공부를 약간 더 잘 한 것을 제외하면, 내가 진서보다 훨씬 더 뛰어난 면이 많았다. 아마 진서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척을 했던 건, 공부만큼은 확실하게 자신이 더 뛰어나 보이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진서와 나는 우리나라에서 수능점수가 가장 높은 △△대학교에 입학을 했다. 나는 경영학과에 그리고 진서는 의대에 갔다. 진서는 대학에 가서 살을 빼 날씬해졌고, 라섹 수술을 하여 눈이 핑핑 도는 알이 두꺼운 안경도 벗었다. 고등학교 때 보다 훨씬 예뻐졌고, 매력적으로 변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서를 자주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못 알아봤을 수도 있다. 나는 대학에 간 이후로 어렸을 때부터 꿈꿔온 이상형을 찾기 위해 되도록 많은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연애를 했다. 하지만 진서는 나와는 달랐다. 짧은 만남을 가지는 경우는 몇 번 봤지만, 진서가 진지한 태도로 누군가와 사귀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진서는 대학 이후의 삶이 평범하지 않았다.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레지던트를 거쳐 피부과 전문의가 되었다. 전문의가 되어 2년 정도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다, 돌연 병원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미국에서는 의학에 관련된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분야인 비즈니스 스쿨에 가서 MBA 학위를 취득하였다. 진서는 MBA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대기업에서 1년, 그리고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서 1년을 일한 후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법무법인에 다니는 변호사와 결혼했지만, 결혼생활을 6개월을 채 하지 않고 이혼했다. 진서는 결혼하기 전 그 남자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 같았고, 그냥 부모님이 원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진서는 내게 그 남자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부모님께서 돌아가실 때까지만 결혼 생활이 유지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그 말이 나는 너무 이상하게 들렸고, 문득 ‘진서는 누군가를 사랑해보기는 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감정 기복이 별로 없기는 했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정서적으로 메말라 보였다. 진서가 병원을 그만두고 유학을 갔다 오고, 또 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놀 수 있는 것은 진서 집에 돈이 많기 때문이다. 진서의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의사이고, 강남에서 큰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진서는 의사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부모님 병원에서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부모님 병원은 진서의 소유가 될 것이다.
오늘 만나는 또 다른 친구 미지는 학교 다닐 때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소위 말하는 날라리였다. 중고등학교 때 교복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지한테서는 누가 봐도 노는 아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분위기가 풍겼다. 담배도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아주 일찍부터 피웠다. 그렇다고 일진 같은 불량한 학생은 아니었고, 미지는 심성이 착했다. 미지는 활발한 성격에 사교성이 뛰어나 친구가 정말 많았다. 우리학교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도 잘 어울렸다. 그리고 미지는 노는 친구들뿐만 아니라, 진서나 나 같이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선아야, 너는 공부도 진짜 잘하는데 어떻게 얼굴까지 이렇게 예쁠 수가 있는 거야?”
“야, 뭐래? 지금 나 놀리는 거야?”
“놀리다니! 무슨 말이야. 너를 보면 신이 가장 이상적인 사람을 한 명 빚어서, 하늘에서 뚝 떨어뜨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 정말 이렇게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네가 내 친구라니.. 어떻게 너같이 완벽한 사람이랑 친구가 되고 싶지 않겠어.”
“하하하하하 나 놀리는 거 아는데, 그래도 기분은 좋네.”
어릴 때부터 미지는 이렇게 과장된 표현과 말투로 나에게 칭찬을 하고는 했다. 미지에게는 사람들의 성향과 장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그들이 원하는 칭찬을 구체적이고 과장된 언어로 표현해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그러고 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미지를 좋아하게 된다. 이것이 아마 미지가 친화력이 뛰어난 비결이 아닐까 싶다. 학교 다닐 때 나는 미지가 내 친구인 것이 좋았다. 어쩌면 미지가 내 친구라는 것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중학교 때부터 죽어라 공부를 했기 때문에, 주위 친구들로부터 공부만 하는 애라는 고루한 이미지로 비춰질까 늘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잘 노는 걸로 유명한 날라리 미지가 친구인 것은 이러한 이미지를 가려줄 수 있는 훌륭한 액세서리였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당연히 인간적으로 미지를 좋아하고 미지는 가장 소중한 친구 중 한 명이지만,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인 미지가 친한 친구인 것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 나에게 좋은 이미지를 더해주는 멋진 스펙과도 같다. 미지가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친구여서 좋겠다고 하기도 하고 언제 한번 자신도 같이 만날 수 있는지 물어보기도 한다. 미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패션디자인 공부를 하기 위해 뉴욕으로 유학을 갔다. 디자인 스쿨을 마치고 뉴욕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미지는 뉴욕에 진출한 한국 모델들을 하나 둘 알게 되었고 그들과 친해졌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그들의 지인의 지인 그리고 또 그 지인의 지인을 통해서 인맥을 넓혀갔다. 그렇게 인맥을 쌓아가면서 잘 나가는 연예인이나 패션산업의 주요 인사들과도 친분이 두터워질 수 있었다. 그리고 뉴욕에서 일을 하면서 만난 지금의 남편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의류 브랜드를 론칭 했다. 미지의 사교성과 인맥이 사업을 시작할 때 가장 큰 밑거름이 되었다. 미지와 친한 연예인들이 미지가 디자인한 옷을 많이 입었고, 미지는 이를 SNS 마케팅으로 적극 활용하면서 브랜드가 많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미지의 SNS를 보면 연예인이나 셀럽들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있다. 그리고 그 연예인들 중 일부가 해외에서 크게 인기를 얻으면서, 미지의 브랜드는 다른 나라에까지도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미지의 사업은 시작과 동시에 빠르게 성장하였고, 불과 몇 년 만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연예인과의 친분과 더불어 사업까지 성공하면서 미지와 미지 남편 또한 유명해졌다. 이런 단기간의 큰 성장과 성공 스토리는 미지 자체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4년 전 미지는 자신과 남편이 가지고 있는 회사 지분 90%를 대기업에 매각했다. 당시 매각 금액은 2,000억원 정도라고 들었고, 매각 시점을 기준으로 향후 10년간 미지와 미지 남편이 공동대표를 유지한다는 조건이었다. 30대 초반에 미지는 수천억 자산가가 되었다. 미지가 하루아침에 엄청나게 큰 돈을 버는 것을 보고, 나는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많이 허탈하기도 하고 시기하는 감정도 들었다. 급여 계좌에 찍히는 월급을 보면 한숨만 나왔다. 어릴 때부터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가기 위해 죽기살기로 공부한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인생은 운이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미지가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할 때는 마침 SNS라는 매체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다. 친한 연예인들이 미지의 옷을 입은 모습이 SNS에 자주 노출이 되면서 우연히 스타마케팅 효과를 가져왔다. 그야말로 저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이끌어낸 것이다. 유명인 인맥과 패션산업의 특수성이 SNS라는 새로운 매체를 만나면서, 미지에게 엄청난 행운을 가져다 줬다. 당시 미지를 보면 대기업에 다니는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운이라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받아들였다. 미지의 성공은 일반 사람들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인데, 그걸 나의 상황과 자꾸 비교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더군다나 성공한 미지가 친구여서 좋은 점이 많기 때문에, 요즘은 예전처럼 미지를 시기하지는 않는다.선아는 진서와 미지를 서래마을에서 6시 7분에 만나기로 했다. 장난기가 많은 미지는 약속시간을 정시 혹은 10분단위로 떨어지게 잡는 것이 아니라, 항상 1분, 3분, 7분과 같은 시간으로 정하기를 좋아한다. 선아는 샤워를 하고 꽤 많은 시간을 들여 화장을 했다. 한 달 전에도 만나기는 했지만 진서와 미지와 함께 맛있는 것도 먹고, 술도 마시고, 수다도 떨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다. 집을 나서면서 남편에게 별일 없는지 전화를 했다. <살인출산>을 읽으면서 떠오른 남편이 바람 피웠던 일은 어느새 머릿속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