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2021년 5월 14일- 선아
오후 8시 마포역과 공덕역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카페. 선아는 집 근처 카페에 있다. 회사 일이 남았지만, 7시 이후에는 사무실에 있을 수 없어 퇴근을 했다. 남은 일은 내일 오전까지 끝내야 한다. 집으로 일을 가져가고 싶지 않아서, 집 근처 카페에서 마무리하고 들어갈 생각이다. 아들 민호는 남편이 일찍 퇴근해서 돌보고 있다. 저녁으로는 카페에서 파는 바나나, 샌드위치, 그리고 아메리카노로 때우려 한다. 샌드위치를 한입 먹으려고 들었다가, 먹지 않고 그대로 테이블에 내려 놓는다. 바나나, 샌드위치, 아메리카노를 노트북 옆에 놓고 여러 각도에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배치를 조금 바꾸고 자신의 명품 가방의 로고가 프레임 끝에 살짝 보이게 사진을 여러 장 찍어본다. 가방 로고가 우연히 찍힌 것처럼 하는 게 쉽지가 않다. 찍은 사진들을 한참 동안 보다가, 그 중에 마음에 드는 사진 몇 장을 골라 자신의 SNS에 올린다.
『이 놈의 완벽주의, 적당히 하는 것은 성에 차지 않는 성격 때문에 금요일 저녁 이렇게 카페에서 일하는 내 자신이 안쓰럽다. 주위에서 나에게 열정이 넘친다고들 하지만, 솔직히 열정보다는 잘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크다. 그리고 주위에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현실에 안주하면 안 된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언제나 성취감이라는 보상을 안겨주는 내 일을 나는 사랑한다. 가끔 지치고 힘들 때도 있지만,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은 역시 가족이다. 언제나 나를 믿고 응원해주는 남편이 곁에 있어서 고맙다. 우리 아들은 집에서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텐데, 이제 다시 집중해서 얼른 일을 마무리 해야겠다.』 사진과 함께 허세와 겸손이 적당하게 버무려진 글도 같이 올렸다.
선아는 커피와 음식을 먹으면서 열심히 일을 한다. 카페는 공간이 꽤 넓고, 조명은 적당히 밝고, 인테리어는 모던하게 꾸며져 있다. 카페 한쪽 구석에 있는 커다란 커피 로스팅 기계가 눈에 띈다.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은 재즈 음악이 낮은 소리로 흘러 나오고 있다. 카페에는 선아처럼 일을 하는 사람도 있고,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고, 커피와 디저트를 먹으며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 잘 훈련된 카페 직원들은 밝고 청명한 목소리로 손님을 응대한다. 음악과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이야기 소리는 일에 집중하는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 1시간 30분 정도 시간이 흘렀고,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냈다. 노트북을 끄고 가방에 넣자마자, 선아는 스마트폰에서 SNS를 확인한다. 일을 하기 전 올린 사진에 여러 지인들이 댓글을 남겼다.
『오! 선아~ 언제나 열정이 넘치는 구나. 화이팅!!!』
『우아~ 멋져 멋져 ^^』
『팀장님, 퇴근 후에도 일하시는 거에요? ㅠㅠ 몰랐네요. 주말 잘 보내세용~~』
『선아야~~~ 뭐야? 가방 새로 산 거야??』
『열심히 사는 모습 보기 좋네~ 넘 무리하지는 말공』
『언니~ 좋은 직장에, 멋진 남편에, 예쁜 애기에, 너무너무 부러워용』
『회사에서 잘 나가는 이유가 다 있구나!!!!!』
『멋지다. 선아야~ 조만간 보자!! 남편이랑 애기도 잘 있지?』
『일도 좋지만, 금요일 저녁에는 즐겨!』
선아는 각각의 댓글에 대댓글을 쓴 후 자신이 팔로우한 사람들의 SNS를 본다. 여러 사람들의 SNS를 빠르게 훑어보고 몇몇 사진에는 댓글도 단다. 그러다 지금은 연락을 하지 않는 고등학교 친구 윤희의 SNS를 자세히 보기 시작한다. SNS에 올린 사진과 글을 보니, 지금 하와이 여행 중이다. 자신은 금요일 저녁에 쉬지도 못하고 일을 하고 있는데, 누구는 하와이에서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게 기분을 언짢게 한다. 슬슬 짜증이 밀려온다. 선아는 카페에서 나왔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이런 좋지 않은 기분으로 아들을 만나고 싶지 않아, 혼자서 좀 걷다가 집에 가기로 한다. 선아는 마포대교 방향으로 걸어간다. 윤희랑은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을 한 적은 있었지만, 친하지는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윤희를 본 건 친구들의 결혼식에서뿐이었다. 그때마다 형식적으로 인사를 하고, 근황 정도를 물어보는 게 전부였다. 윤희가 돈 많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했다는 정도의 소식만 친구들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윤희가 SNS에 팔로우 요청을 해서, 우리는 SNS 친구가 되었다. 윤희의 SNS는 가족, 좋은 집, 고급차, 쇼핑, 여행, 필라테스 등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는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있다. 선아가 기억하기로 고등학교 때 윤희는 공부를 반에서 5등 정도 했다. 자신보다 공부도 못했고, 예쁘지도 않았고, 인기도 없었던 윤희가 경제적으로 훨씬 부유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SNS에서 확인 할 때마다 기분이 안 좋았다. 하지만 가끔 윤희가 자신의 SNS에 댓글을 남기기에, 선아도 윤희가 올린 사진에 마음에도 없는 칭찬이나 좋은 말을 남겨주고는 했다. 윤희와는 현실에서는 어떠한 교류도 없는, 완전한 온라인 친구일 뿐이다. 걷다 보니 마포대교 북단까지 왔고, 선아는 마포대교를 건너기 시작한다. 윤희의 SNS에 올라 와있는 하와이 여행사진을 보니, 오늘따라 기분이 더 좋지 않다. 금요일 저녁에 일하는 자신의 현실뿐만 아니라, 갑자기 남편이 바람을 피웠던 것까지 생각이 난다. 바람을 피운 남편과 최근 둘째를 가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문득 ‘내가 왜 둘째를 낳으려고 하지?”라는 생각이 든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는데 헤어져야겠다는 생각 보다, 둘째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드는 자신이 이해가 안 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자괴감이 몰려온다.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남들보다 더 잘 살아야 하는데..’
날라리였던 미지는 운이 좋아서 엄청난 부자가 되었고, 존재감이 없던 진서는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 그리고 윤희는 돈 많은 남자 만나서 사랑 받으면서 하고 싶은 거 다하면서 사는 것 같다. 선아는 자신만 아등바등 살고 있는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제일 잘 살고 있어야 하는데, 세상이 불공평하고 비합리적이고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 부정적인 생각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어느새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까지 왔다. 선아는 방향을 돌려 왔던 길로 마포대교를 다시 건너간다. 마포대교에는 차만 다닐 뿐이지, 걸어서 건너는 사람은 선아 밖에 없다. 중간까지 걷다가 멈춰서 다리 아래를 내려다 본다. 어두운 한강 물은 조용하고 평온하게 흐르고 있다. 고개를 드니 밤섬과 서강대교가 보인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하나 이루어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삶이 잘 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이 더 크다. 어떠한 만족감도 없고, 공허하기만 하다. 그리고 고독하다. 다시 다리 아래를 내려다 본다. 어두운 한강은 여전히 고요하게 흐르고 있다. 이때 전화 벨이 울린다. 가방 안에서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하니, 미지이다.
“여보세요? 미지구나.” 선아는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선아야, 안녕. 별일 없이 잘 지내지?” 미지도 반갑게 말한다.
“그럼 별일 없지. 난 완전 잘 지내고 있어. 넌 어때?”
“나도 잘 지내.”
“너야 당연히 잘 지내겠지. 걱정이 있을게 없잖아.”
“야야, 무슨 소리야? 내가 얼마나 걱정이 많은데..”
“무슨 말씀이세요. 걱정이라뇨. 야, 세상 쓸데없는 걱정이 바로 네 걱정이거든.”
“아니라니까. 네가 몰라서 그래. 그나저나 통화 괜찮은 거지?
“응, 괜찮아.”
“뭐하고 있어?”
“나 저녁 먹고 운동하러 나왔어.”
“운동? 무슨 운동?”
“요즘 너무 앉아만 있는 것 같아서, 최근에 운동 시작했어. 조깅하려고 지금 마포대교 근처 한강공원에 막 왔어.”
“늦은 시간인데 대단해. 그리고 한강에서 조깅하면 좋겠다.”
“그럼 진짜 좋아. 여기 운동하는 사람들 엄청 많아. 경관도 괜찮고, 운동하기 딱 좋아.”
“선아야, 나랑 같이 필라테스 하지 않을래? 같이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그지?”
“너는 청담동에서 하잖아. 맞지?”
“응 청담동에서 하고 있어. 엄청나게 유명한 선생님이야. 연예인들도 많이 하고.”
“오, 진짜? 거기서 필라테스하면 연예인 볼 수 있나? 하하하 나도 같이 하고 싶긴 한데, 회사는 광화문이고 집은 마포다 보니까, 청담동까지 운동하러 가기는 좀 멀어.”
“그러게, 멀기는 하다. 그나저나 너 언제 시간돼? 우리 조만간 보자.”
“좋아. 당연히 봐야지. 잠시만.. 음.. 나 다음주에는 회사 일이 바빠서 힘들고, 다 다음주 어때?”
“그래 그럼 내 스케줄도 확인해 볼게. 잠시만.. 선아야, 그럼 26일 어때?”
“나는 그 주는 다 괜찮아. 26일로 하자. 진서한테는 내가 연락해 볼게.”
“선아야, 이번에는 우리 둘이 보자. 나 너한테 할 말이 있어.”
“무슨 말? 진서 있으면 안 되는 거야?”
“있어도 되기는 하는데, 너랑 둘이 의논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알았어.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진서랑은 다음에 같이 보면 되지. 이번에는 둘이만 보는 걸로 하자.”
“그래 고마워. 진짜 나한테는 너밖에 없다니까. 중학교 때부터 느꼈지만, 너는 정말 최고야. 내가 너 먹고 싶은 거 전부 다 사 줄게. 이해해줘서 고맙고, 그날은 내가 너희 사무실 쪽 광화문으로 갈게.”
“광화문으로 와준다면야 나야 땡큐지. 어쨌든 26일에 보는 걸로 하고, 그 전에 또 연락하자고.”
전화를 끊었다. 선아는 전화를 끊고 자신의 손에 있는 핸드폰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내가 왜 미지한테 한강공원에서 조깅을 하고 있다고 말한 거지?’ 자신에게 물었지만, 선아는 미지에게 거짓말을 한 자신이 이해가 안 된다.
‘무엇을 위해 거짓말을 한 거지? 내가 왜 이렇게 됐지?’
단순히 미지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다. 내 자신을 속이면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위해 나를 포장하고 있는가? 나는 세상에 없는 걸 있다고 믿으며,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선아는 다시 핸드폰을 쳐다본다. 때마침 검은 화면 위로 SNS에 새로운 댓글이 달렸다는 걸 알려주는 아이콘이 뜬다. 어떤 댓글이 달렸는지 궁금하지 않다. 댓글을 확인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내가 이것 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나를 죽여야 한다. 그것도 완전하게..’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선아는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한강을 향해 있는 힘껏 던졌다. 핸드폰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떨어지다, ‘첨벙’하는 소리와 함께 물속으로 사라졌다. 핸드폰이 빠지면서 일으킨 작은 물결을 잠시 바라본다. 선아는 집으로 가기 위해, 다시 마포대교를 건너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