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외롭지만 귀찮은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우고 난 뒤 복직한 친구가 있다. 친구는 직장에서 만난 어린 후배가 유독 자신을 잘 따른다고 이야기했다. 후배는 친구에게 편지를 건네주며 앞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다 말했다고 한다. 이야기 끝에 친구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새로운 인간관계 맞는 게 피곤해.
누구랑 깊게 알고 싶지가 않아."
아마도 친구는 워킹맘이라 한창 바빠서 새로운 사람과 친해질 여력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고 하면 그전에 '피곤함' 또는 '귀찮음'이 고개를 들었다. 심지어 여러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나눌 때에도 가끔 집중을 못하거나 딴생각을 한다. 집중력이 떨어지다보니 대화에 적당한 주제를 찾아 말을 이어가는 것도 쉽지 않다.
30대 초반까지는 여러 사람 앞에서 방긋방긋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과의 대화를 즐기고 좋아하는 편이었다. 직장에서도 동료들과 별다른 어려움 없이 어울리는 무난한 인간형이었다. 부장님의 다소 꼰대스러운 발언에도 너스레를 떨며 기분 나쁘지 않게 맞받아칠 자신이 있었다.
30대 후반의 나는 조금 달라져 있다.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헤어지면 한참 대화 내용을 곱씹어보며 '왜 그런 말을 했지, 나 정말 주책스럽다' 내지는 '오늘 내 말 때문에 혹시 언짢아한 사람이 있었으려나' 불안해 한다. 만남 후 머리 속에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이 들어 사람들과의 관계도 최소한으로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 그런데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으니 가끔 외로움의 감정이 극단으로 치솟는다.
어느 날 한국에 사는 친구에게 "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사람 만나는 게 어려워." 고백했다. 친구는 놀라며 자신도 마찬가지라 말한다. 마침 그날 친구는 도서관에서 <사회성이 고민입니다>라는 책을 빌린 참이었다. 늘 야무지고 주관이 뚜렷한 친구조차 사회성이 고민이라니 놀라웠다.
왜 나이 들수록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까? 인간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게 피곤하고 귀찮지만, 한편으로는 외로운 이 양가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언제부터 우리의 사회성 버튼이 고장 나기 시작한 걸까.
함께 있지만 외로운 그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에드워드 호퍼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다. 그의 작품들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허무하고 고독한 분위기를 탁월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듣는다.
호퍼의 그림들은 광고나 영화 등 영상매체에서 사랑받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공유와 공효진이 출연한 'SSG광고'에서는 호퍼의 그림 속 구도나 배경,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패러디했다. 오스트리아의 감독 구스타브 도이치는 호퍼의 작품 13편을 소재로 하여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이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호퍼의 그림이 21세기의 우리에게도 매력적인 이미지를 제공하는 작품들이라는 반증이다.
데이비드 호퍼의 <철길 옆 호텔(1952)>과 <브라운스톤의 햇빛(1956)>. SSG광고는 이 작품들의 구도와 색감을 차용하여 제작되었다.
아래의 그림이 그의 대표작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awke)>이다. 작품은 대도시의 밤 풍경을 그리고 있다. 어둠 속에서 불을 밝히고 영업하는 가게가 있다. 넓은 식당 안은 한산 해 보인다. 통유리로 보이는 것은 손님이 세 명과 종업원 한 명뿐이다. 손님 중 한 명인 남자는 등을 웅크린 채 홀로 술을 마시고 있다. 그의 맞은편에는 두 남녀가 있다. 남녀는 서로를 바라보지 않은 채 무표정한 모습으로 술을 마시는 중이다. 그중 남자 손님은 종업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나 그다지 깊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1942)>. 대도시 속 심야식당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당연하게도 그림은 음성이나 효과음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작품 속에서 고요함을 느낀다. 술잔을 움직이는 소리, 종업원과 남성 손님 사이에 나누는 조용하고 나지막한 대화 외에는 작품 속에 다른 효과음이 존재할 것이라 상상하기 어렵다.
호퍼는 대도시 속 사람들의 모습을 주로 그리는 화가였다. 이 작품 역시 맨해튼 근처의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한 간이식당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것이라 한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의 풍경이 낯설지 않은 것은 도시 속 사람들의 적막감, 외로운 정서를 담아냈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에 있으나 외로운 사람들. 함께 있으나 내밀한 상호작용은 하지 않는 사람들.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느껴봤을 쓸쓸한 정서가 작품 속에 녹아있다.
나이들수록 공감과 소통이 쉽지 않은 이유
호퍼의 그림에서 쓸쓸함과 적막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답은 간단하다. 공감과 소통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림 속 그들은 같이 있지만 피상적인 관계만 맺고 있다. 우리가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관계를 맺어도 돌아서면 외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우리가 인간관계를 통해 근본적으로 원하는 것은 겉핥기 식 대화가 아니다. 서로의 관심사나 고민에 대해 깊이 있게 터놓고 공감해주며 위로하는 과정에서 관계 맺기의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공감과 소통에 중요한 것은 마음의 여유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이런 여유를 가질 틈이 없다. 특히 나이가 먹어 갈수록 직장과 가정생활이 최우선의 과제가 된다. 그 외의 인간관계에 마음 쓸 에너지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더구나 나이가 먹어갈수록 현재 상황이나 가지고 있는 것에 미묘한 차이가 생긴다. 결혼과 출산 여부, 직업의 유무, 경제력 수준, 자녀의 상황 등 갖가지 조건에 따라 대화의 소재 방향과 공감대가 판이하게 달라진다. 가령 미혼인 사람이 기혼인데다 자녀가 있는 사람들의 대화에 흥미를 느끼기는 쉽지 않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화를 나누면서 머릿속으로 서로의 가진 것을 비교하게 되는 일도 생긴다. - 물론 상대방이 가진 것이 얼마인지 대놓고 구체적인 숫자로 캐묻는 사람들도 가끔 존재한다 - 나보다 상황이 괜찮아 보이는 상대방의 고민이 배부른 투정이나 은근한 자랑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서로 배려심을 발휘해 대화를 나누어도 나의 말이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아닌지 머릿속으로 자기 검열을 하게 되기도 한다.
이미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라도 서로 처지나 입장, 생각이 달라지면서 대화 소재가 줄어드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대화의 소재를 찾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으니 피상적인 이야기만 반복하는 경우도 있다. 머릿속으로 갖가지 자기 검열과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처리하는데 에너지를 써야 하니 공감하고 소통하는데 쓸 에너지가 줄어들어 버린다.
이미 쌓아온 관계 맺음의 경험치가 우리에게 새로운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안기기도 한다. 우리는 살면서 이미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져 보았다. 이것은 인간관계가 주는 기쁨과 행복의 순간과 함께, 실망과 상처의 경험도 쌓아왔다는 말이 된다. 우리는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서로의 차이점을 이해하고 맞춰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마음에 조금씩 생채기를 내고, 한 순간의 권태기를 겪어내야만 한다는 사실도 안다.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기 전에 그 지난한 과정을 또다시 거쳐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움과 귀찮음이 앞선다. '굳이 내 에너지를 써가며 이 관계를 겪어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 시점에, 인간관계에 휘둘리며 지내야 하는지 회의감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가벼운 용기가 필요한 시점
만약 혼자 있는 것에 충분히 만족한다면 사회성을 꼭 길러야 할 필요는 없다. '인싸'로 사는 것도 '아싸'로 사는 것도 결국은 선택의 문제지, 어느 한쪽이 형편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맺는데 너무 힘을 쏟을 필요도 없다. 깊게 공감하고 소통하는 상대방은 1~3명이면 충분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관계를 내려놓고 싶으나 한편으로 혼자인 것이 너무 외로운 시점이 있다. 이런 때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다면 간단하지만 어려운 몇 가지 처방이 필요하다.
먼저 인간관계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은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새로운 이를 만나고 가까워질 때에는 상대방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무장하는 것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물론 피상적인 대화만 이어지거나 취향이나 의견이 맞지 않는다면 관계를 반드시 유지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깊은 소통이 되는 관계로 발전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다만, 관계 맺음의 과정에서 생기는 생채기나 권태기를 어느 정도 감내하겠다는 약간의 의지가 필요하다.
가끔은 인간관계에 환기(換氣)도 필요하다. 늘 만나던 이들 외에 공통된 관심사를 가졌으나 그동안 만나본적 없는 유형의 사람들을 한 번쯤 만나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나의 경우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취미 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나와 직업도 생활패턴도 다르지만,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환기의 효과가 생긴다. 신선한 생각을 머리에 불어넣고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는 기회를 얻는 셈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안의 에너지를 먼저 축적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단 나와 잘 지내야 한다. 내가 나를 공감해주지 않고 위로해주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이 내 마음을 들여다봐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수다. 애쓰며 사는 나를 스스로 격려해주고, 나와 잘 노는 시간을 가지면서 에너지를 축적해놓을 필요가 있다. 내가 나와 잘 지내면 타인과의 관계에 지나친 기대감을 조금 내려놓게 된다. "쟤가 왜 날 몰라주지" "쟤는 왜 나에게 공감해주지 않지" 이런 식으로 타인에게 가지는 억울한 마음도 줄어든다. 사람을 만나도 헛헛한 마음이 나와의 소통으로 먼저 채워지면. 인간관계에 대한 부담이 약간 덜어질 수 있다.
생각해보니 단순히 사람 만나는 것이 어렵거나 귀찮고 피곤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상처 받기 싫다는 두려움, 어차피 허무하게 이어질 관계에 내 에너지 쓰기 싫다는 회피 심리일 가능성이 크다. 사회성을 키우기 위해 억지로 노력을 하기보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한 발 내밀어 보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