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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Jun 09. 2020

인간관계를 망치는 최악의 착각

저의 전부를 알고 있다고요? 삑! 당신의 착각입니다.

타인의 전부를 안다는 흔한 착각 



 한 지인 부부를 만나 대화한 적이 있다. 그 부부의 남편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와이프는 애를 기르는 것 보면 마음이 너무 약해요.
강단이 없어서 직장에서도 적응을 잘 못했을 거예요."

 

 거부감이 들었다. 일단 와이프를 무시하는 듯한 이야기가 거슬렸다. 와이프가 마음이 약해 보여 직장에서 적응을 못했을 거라고 단정 짓다니. 자신의 부인에 대해 그렇게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는 말인가.


 직장에서 그 와이프가 어떻게 지냈을지 남편은 모른다. 사람은 원래 입체적인 존재다. 육아를 할 때 아이에게 마음 약하게 굴더라도 직장에서는 강단 있게 일을 해내는 사람도 있다. 실제 그 와이프가 그렇게 마음이 약한 편도 아닌데 남편이 아내에 대해 마음대로 판단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는 타인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이런 실수를 자주 저지른다. 배우자나 형제자매, 친구에 관한 사실 전부를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머릿속 생각에 대해 모두 알지 못하지만, 그저 알고 있다고 착각한 후 내가 만든 틀 안에서 그 사람의 행동이나 성향을 평가하려 든다.


 반대로 우리가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상대방이 나를 단정 짓는 부정적인 말에 휘둘리는 경우가 생긴다. 부모나 배우자, 연인이 '너는 의지력이 약해. 너는 실수투성이야. 너는 이런 일을 잘 해내지 못할 거야. 넌 싫증을 잘 내고 참을성이 없어' 식으로 늘어놓는 말에 하염없이 슬퍼지기도 한다. 난 정말 그렇게 형편없는 인간인 걸까 한참 생각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그 말이 진실이라 믿고 스스로를 폄하하기도 한다. 


 하루는 친정엄마가 나를 평가하는 사소한 말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유랑이는 모든 행동이 어설퍼서 불안해. 믿음이 안가"


 엄마의 눈에 비친 나는 항상 행동이 불안한, 실수가 많은 존재였던 건가 일순간 슬퍼졌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엄마는 어차피 나의 모든 면을 다 알지 못한다. 직장에서의 나, 아내로서의 나, 친구들 무리에서의 내가 어떤 모습인지 엄마는 모른다. 아무리 엄마라 해도 '나'라는 인간을 100% 알지 못한다. 엄마는 그저 엄마가 알고 있는 나의 일부분에 대해 이야기한 것 뿐이었다.


 

상대의 영혼까지 이해할 수 있을 때, <잔의 초상>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화가였다.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을 늑막염, 폐렴, 폐결핵 등 병마와 싸우며 살았다. 미술전에 그림을 출품하는 등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였으나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다. 다만 미남이었던 덕분에 여성들에게는 인기가 꽤 많았다고 한다.


 1917년 모딜리아니는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보다 14살 어렸던 화가 지망생 잔 에뷔테른이었다. 32세의 모딜리아니와 18세의 잔은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부유한 중산층이었던 잔의 부모는 딸이 가난한 화가와 가까이 지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모딜리아니와 잔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중해 연안의 코느다쥐르라는 곳에 가서 동거를 시작한다. 모딜리아니의 건강이 악화되자 요양을 위해 니스로 옮겨가 그들의 첫 아이도 낳았다.

큰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아메데르 모딜리아니,1918)

 

 모딜리아니는 잔과 함께 한 3년간 그녀를 모델로 여러 작품을 그렸다. 그중 특히 유명한 그림이 '큰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1918)'이다. 모딜리아니는 평생 인물화를 그리는데 집중했는데, 사람들을 길쭉한 얼굴로 묘사하고는 했다. 어딘지 우수를 담고 있는 듯한 신비로운 얼굴이다. 작품에서 눈을 끄는 요소 중 하나는 아몬드 모양의 눈 안에 잔의 눈동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눈동자가 없는 얼굴은 자칫 괴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모딜리아니의 그림에서는 오히려 인물의 매력을 살리는 역할을 했다. 그림 속 눈동자가 없는 잔의 얼굴은 애수와 쓸쓸함, 고고함 등을 고루 담고 있다.


잔은 어느 날 모딜리아니에게 왜 자신의 눈동자를 그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모딜리아니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눈동자를 그리겠소.
잔의 초상(아메데오 모딜리아니, 1919)



둘의 결혼 생활이 시작된 후 모딜리아니는 점차 잔의 초상화에 눈동자를 그리기 시작한다. 물론 그 이후에도 그녀의 눈동자를 그리지 않는 날도 있었다. 잔의 영혼을 나름대로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 이후에도, 아직 그녀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느낀 날도 존재했던 것일까.


그들의 행복한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폐결핵에 시달리던 모딜리아니는 1920년 결국 건강 악화로 죽음에 이른다. 잔에게 '천국에서도 나의 모델이 되어달라'는 유언을 남긴 후였다. 사랑하던 남편의 죽음을 견디지 못한 잔은 모딜리아니가 죽은 다음 날 자신의 집 6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그들의 둘째를 뱃속에 임신한 상태였다.

 




  모딜리아니와 잔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났다. 그러나 모딜리아니가 한 말을 되짚어 보면 그가 잔을 얼마나 사랑했으며 그녀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존중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모딜리아니는 연인관계라고 해서 잔의 전부를 알고 있다고 함부로 단정 짓지 않았다. 그녀의 영혼까지 파악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거나 우정을 쌓아갈 때, 우리는 상대에 대해 친밀감을 느낀다. 더불어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 또는 그녀-가 나의 소울메이트라는 생각. 상대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착각은 때로 상대를 숨 막히게 만들 수 있다. 


"너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잖아."

"너는 이런 성향의 사람이지? 난 알고 있어."

"너는 그런 성격이니까 늘 비슷한 종류의 실수를 하는 거야."

"우리는 비슷한 취향을 가졌잖아. 그러니까 너는 나처럼 이선택해야지."

 

 이런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은 상대방과 자신과의 거리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다. 아무리 친하다 해도, 함께 사는 배우자라 해도 타인은 엄연히 타인이다. 모든 개인은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상대방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판단하고 멋대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상대방을 개인으로서 존중하지 못하는 것이다. 상대를 개인으로 존중하지 못하는 말은 서서히 상대방을 힘들게 하고 마음을 멀어지게 하며, 때로는 상처를 준다.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타인을 함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만든 틀 안에서 상대의 전부를 판단하는 것은 위험한 착각이다.


 나를 부정적으로 단정 짓는 사람들의 말에도 너무 흔들릴 필요가 없다. 그들은 어차피 나를 전부 알지 못하므로. 나라는 인간의 세계는 나만 알고 있다. 가까운 사람이 나에 대해 "너는 이런 사람이야. 너의 한계는 여기야."라고 말한다면 마음속으로라도 이렇게 맞받아치자.  


"나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삑! 그건 당신의 착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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