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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 환자의 마음 재활

소통이 필요하다



나의 창문소동이 있은 후로, 나와 남편은 의기투합하여 이 상황을 헤쳐 나가자며 의지를 다질 줄 알았지만, 이 일은 서로에게 너무나 상처이면서 트라우마가 되어 서로를 바라보는 것조차 힘들만큼 멀어져버렸다. 나는 모든 치료의 담당 치료사들과 사이가 좋아서 치료실에서는 여러 가지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일과를 보냈지만, 치료일과가 끝나고 병실에 오거나 개인운동 시간을 가질 때면, 자꾸만 기분이 가라앉았다. 아마 남편에게 면목 없기도 하고 내 마음도 안정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내 기분과 마음은 하루하루 지하실처럼 깊은 곳을 향해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넌 소중한 내 친구야. 사랑해..♡”


복용 중지했던 약간의 우울증약을 다시 처방 받아 복용했고, 그런 시기에 전 직장 동료로부터 안부 메시지를 받았다. 신입사원 연수 시절에 합숙하던 동료인데, 그 때도 내게 인생선배, 언니 같은 친구였다. 그 당시 나의 투병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친구 중 한명이기도 했다. 재활병원으로 잘 옮겼는지, 생활은 어떤지 등의 안부인사 차 연락을 줬고, 나는 힘든 상황과 마음을 얘기했다. 그 친구는 내게 사랑한다며 응원의 말을 해주었고, 힘들다는 마음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발병 후 한 번도 괴롭거나 힘들다고 내색하지 않던 나의 무뎌진 마음이 조금씩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사랑해”라는 한 마디에 나는 또 눈물을 쏟아내며 억눌려있던 괴로움을 분출해냈다. 발병 후 처음 들어본 말이기도 했다. 나에게 감격, 안도, 고마움, 감동 등 여러 가지 기분을 안겨 준 이 한마디는 먹구름 가득한 하늘에 빛이 들어올 구멍을 하나 뚫어준 셈이었다.




블로그의 시작


친구의 응원에 숨통이 트이는 것을 느꼈고, 불안한 나를 더 이상 캄캄하기만 한 내 안에만 가두면 안 되겠다 , 세상으로 나가서 부딪히고 소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제약으로 나는 온라인을 활용해야 했고, 그렇게 소통의 창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 블로그였다.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나의 생각과 마음을 잘 표현하는 게 어려워서 남편과 그런 일들이 있었기도 했기에 나의 생각과 마음을 남편에게 알아달라고 말하는 수단으로써 블로그를 개설하기도 했다. 그런 의도를 위해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남편에게도 블로그를 알려주었는데, 그는 단순히 나의 여가활동 정도로만 느낀 것 같다. 블로그를 들어가 본 적도, 글을 읽어본 적도 없는 듯 했다. 여전히 그는 나의 마음엔 무관심했다. 남편과 가족을 향한 서운함과 나 스스로의 불안감, 생각 등을 블로그를 통해, 세상을 향해 이야기했고, 얼굴도 모르는 제 3자들로부터 많은 위로와 응원을 받기도 했다. 그 때부터 나의 마음이 점점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고, 나 스스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과 기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인지 기능도 점점 좋아지고 재활의 목표나 방향이 뚜렷해지고 있었다.



재활의지는 마음의 안정으로부터


결국, 재활에 대한 의지나 자존감, 인지 수준이 좋아지려면 마음의 안정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친구의 메시지, 인터넷 속 이웃들의 위로와 응원으로 마음이 안정되어 가는 나는 비로소 가족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를 비롯한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회성은 ‘나’에게서부터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 나와 남편. 그리고 그런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들이 불편했고 마음의 여유가 없던 우리는 약간은 폐쇄적(?)인 병원 생활을 하고 있었다. 병실과 치료실, 운동실을 다니는 것 외에는 가지 않았고, 같은 병실에서 지내는 사람들 빼고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자주 나누거나 하지도 않았다. 발병 이전, 나름대로 붙임성도 좋고 싹싹했던 나는 나사 몇 개 빠진 섬망 속에 살던 그 시기에 잠깐 사람들을 좋아했고, 그 이후로는 사람이 싫어졌었다. 담당 치료사들을 제외하고는 모르는 사람들과 별로 말을 많이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들과 대화하며 말을 듣고, 이해하고, 답변을 하는 자체로 내게는 큰 에너지소모였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하며 나의 존재를 내가 인식할 수 있게 되고, 얼굴도 모르는 나의 글을 보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 덕분에 나의 가치도 스스로 조금씩 인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에 대한 인식이 좋아질수록 사회성도 생겨났다. 자주 보던 사람들과 밝게 인사하고 농담도 나눌 수 있었으며, 나의 붙임성도 날로 좋아져서 다양한 사람들과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이 사회는 많은 사회구성원들이 이루고 있는 것도 맞지만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내가보는 ‘사회’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있어야 나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존재하게 되고 그렇게 세상을 조금씩 인식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뇌졸중 이후의 사회성, 자신감 결여


뇌졸중 이전에 사회적 지위가 높고, 사회적 활동이 활발할수록 발병 이후에 사회성이 결여되거나 사회에 적응하는 것을 유난히 더 힘들어 하는 것 같다. 뇌졸중으로 달라진 자신의 모습과 더 많이 비교가 되면 될수록 좌절감의 정도가 더 심한 것 같다, 나도 발병 후에는 가장 친한 몇 명의 친구들에게만 투병 사실을 전했고, 그 외에는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연락을 할 정신도, 능력도 되지 않았다.(핸드폰 자판조차 제대로 누를 수 없었다)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 지, 얼마나 안쓰럽게 볼지 이런 것들을 걱정하기 시작하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사회로 나가는 것도 점점 두려워진다. 그래서인지 중년의 남자 환자들에게서 이런 특징들이 많이 보인다. 이전과 많이 달라진 자신의 모습과 환경에 과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현재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면서 재활치료나 운동에도 소극적인데, 이것은 회복을 방해하기도 한다.


편견없는 응원의 힘


뇌졸중 이후에는 지인들의 응원과 위로보다 제3자들의 응원과 위로가 마음이 더 편하다. 지인들은 서로를 아는 부분이 있다 보니 나를 더 안쓰럽게 보거나, 기존의 나와 비교해서 보거나 할 수 있지만, 그 밖의 인물들은, 제3자들은 나에게 프레임을 씌우지 않고 뇌졸중 이후의 나 그대로를 보기 때문에 그들에게 털어놓는 것이 더 쉽고, 위로를 받아도 덜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담당치료사들과 소통을 많이 한 편이다. 담당치료사가 완벽한 제3자는 아니지만 뇌졸중 이전의 환자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어서 속을 터놓기 좋다. 치료사와의 관계형성도 재활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치료사와의 라포르(LAPPORT)


라포르란, 두 사람 사이의 공감적인 인간관계. 또는 그 친밀도. 특히 치료자와 환자 사이의 관계(_네이버 사전) 말하는 프랑스어로, 주로 심리학에서 쓰이는 단어이다. 치료사도 환자와의 라포르형성을 위해 노력하지만, 환자도 노력해야 한다. 교통재활병원에는 치료사 수가 많은 만큼 젊은 치료사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나의 담당치료사들은 주로 언니, 오빠, 동생 할 수 있을 정도의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선생님들이었다. 나이대가 비슷하다보니 공감대도 많았고, 대화의 주제도 다양해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라포르 형성이 잘 된 만큼 속마음도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을 수 있는 유일한 상대였고, 친밀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치료도 집중해서 받을 수 있었다. 치료시간 이외에는 정신없던 내가 30분의 치료만큼은 고도로 집중해서 치료를 받았다. 가끔 담당치료사의 부재로 대체치료를 하면 처음보는 대체치료사가 나에게 집중하는 거 무섭다고 할 정도였다.


(TIP! 신경가소성은 고도의 집중 상태에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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