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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환자의 마음재활(5)

몸이 좋아져야 마음도 좋아진다


뇌졸중환자의 외로움


이 장 앞부분에도 썼듯이 뇌졸중 환자의 재활과정에서 특히, 우리나라 뇌졸중 재활에는 심리적인 치유의 과정이 거의 없다. 중증 심리장애가 있을 경우 신경정신과 진료를 의뢰하는 정도? 뇌졸중 이후 환자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게 되느냐 보다는 어떤 신체적 모습이 되어야하는지에 관심이 많다. 이런 외적인 부분에서의 욕심은 환자를 더 외롭게 만들기도 한다. 환자 입장에서는 스스로 발병 이전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주변사람들의 재활에 대한 욕심이나 가족들의 회복에 대한 바람이 담긴 언행은 환자가 완성형으로 회복해야만 사람으로 인정해주겠다는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보호자들의 지치고 힘든 마음이 너 때문이라고, 너 한명이 아파서 우리가 이런 고생을 하고 짜증이 난다. 빨리 멀쩡해져서, 빨리 퇴원해서 이 고생을 끝내달라고만 한다. 아니 환자인들 마음 편히 병원 생활을 하는가 말이다. 기억을 잘 못하고, 사리분별도 잘 못하고, 운동도 적극적으로 잘 안할 수도 있지만 그런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대해줘야 하는지 의문이다. 아니 불만이다. 우리 가족은 나를 정성스럽게 돌보기도 했지만 늘 빠른 퇴원을 바랐다. 그리고 완벽하게 낫기만을 바랐다. 기억을 못해서 실수하거나, 약간 생각 없어 보이는 짓(?)들을 하게 되면 엄마와 남편은 ‘아우 얘가 진짜.’라고 면박주거나, ‘뭐 이런 게 다 있나’ 하는 듯이 경멸하는 눈빛을 주거나 그랬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병원에서의 나, 뇌졸중이 온 환자로서의 나는 인정 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더욱 도움을 거절했다. 신체 반쪽으로 일상생활을 하는 만큼 씻거나, 옷 입을 때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남의 도움을 받는 일이 있더라도 가족의 도움은 받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혼자 할 수 있어야만 가족들이 나를 조금이라도 인정해줄까 싶었다. 가족이라서 그런지 가족구성원 모두가 안 좋은 점은 똑 닮아 있었다. 이런 마음을 헤아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이 약해지는 소리만 한다며 더 강하게 마음먹어라, 가족들이 온통 재활에 신경 쓰고 있는 것일 뿐, 네가 서운하게 생각한 거다 등등. 결국 또 나의 문제였다. 가족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 만큼 나도 가족들에게 의지하지 않았다. 차라리 가족들이 남이었으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이런 외로움 속에서 내가 의지할 수 있던 건 담당 치료사들이었다. 그래도 나의 마음이나 고충들을 조금은 이해해주고 같이 해결해주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담당치료사가 내 가족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병원에서 만나는 담당치료사들에는 크게 두 부류가 있었다.


심리적인 안정과 치료사와의 라포를 통해서 환자가 치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유형

전문적인 지식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환자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일단 치료하고 뭐든 시키는 유형



첫 번째를 마음안정형, 두 번째를 신체발달형 이라고 부르겠다.



마음안정형 치료사


마음안정형의 치료사들은 환자와의 라포 형성을 일순위로 한다. 이들은 환자의 기능적인 회복보다 환자의 인지 기능 개선 또는 환자의 기분에 관심이 많다. 환자가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그 기분을 가지고 치료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편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그 치료를 가는 것이 마음이 편하고 부담스럽지도 않다. 그리고 30분의 치료시간을 별 생각 없이 흘려보낼 수 있다. 하지만 기능적인 회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지 않는 만큼 치료 내용에 특별한 기대감이 없다. 그냥 외로운 마음 달래러, 수다 떨러 가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편하게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다보니 마음안정형 치료사가 대상이 되는 것이다.



신체발달형 치료사


이들은 대부분 차가워 보이는 게 일반적이다. 환자의 마음과 상황에 크게 공감하지 못하고 관심도 없다. 이들은 오로지 어떤 치료를 할까 무슨 치료법을 이용해볼까를 고민한다. 치료 후에 몸이 달라지는 것을 기대하게 되지만 어딘가 눈치 보이고 두려워지는 치료시간이기도 하다. 치료시간에 일상대화는 잘 오가지 않으며 분위기가 서먹서먹한 게 특징이다.




치료내용이나 분위기는 치료사의 성향이나 스타일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딱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 것으로 규정지을 수 없지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몸과 마음, 어떤 것을 더 신경써주는 치료사가 환자에게 도움이 되느냐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마음안정형 치료사와의 경험


내가 경험한 마음안정형 치료사는 작업치료사였는데, 작업치료와 물리치료를 구분 지어 비교하려는 것이 아니라 작업치료의 정의(각 개인에게 의미있는 작업(Occupation)의 향상을 통하여 건강과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 보건의료 전문가이다. 작업치료사는 가정, 학교, 직장, 지역사회에서 주어진 역할과 환경에의 참여가 저하된 개인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작업치료를 시행한다. 작업치료사는 대상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며, 신체적,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 측면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수행능력 향상에 초점을 맞춘다._대한작업치료사협회)에 따라 환자가 독립적으로 과제를 수행 해냄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중점적으로 배운 듯하다. 치료기간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가정주부인 내가 다시 요리 등의 살림에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치료시간에 요리를 했는데, 그동안 요리 같은 일상생활동작치료를 거부하고 직접적 치료를 요구해왔던 나였기에 그 치료사는 내가 참여하는 모습이 뿌듯했나보다. 치료 초기와 후기의 내 참여도가 많이 달라졌다면서 본인이 의도한대로 변화한 모습이 좋다고, 고맙다며 격려도 해주는데, 속으로는 ‘대체 그 긴 치료기간동안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지, 내 손은 여전히 안 움직이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치료의 목적에 맞게 직업적 역할을 잘 수행한 치료사였지만 나의 재활 과정에서는 그리 기억에 남지 않고 도움되지도 않았던 치료였다.



신체발달형 치료사와의 경험

내가 경험한 신체발달형 치료사는 그야말로 차가운 사람이었다. 내가 치료시간에 집중을 잘 못하거나 흐름을 잘 따라가지 못하면 잔소리를 시전 했다. 약간의 귀찮음과 짜증이 섞여있었다. 나에게 구박을 일삼던 그 치료사는 본인의 실력과 지식에도 자부심이 굉장했다. 배우고 공부한 게 많은 만큼 치료도 굉장히 적극적으로 했고, 내 초기보행의 8할을 만들어 준 치료사기도 하다.

치료시간에 모진 말들로 나를 울린 적도 많았고, 그 치료 시간이 다가오면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만들었던 치료사였는데, 적극적으로 치료를 한 만큼 점점 기능회복이 되고 있었고, 본인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나에게 시도, 접목해보려고 한 여러 가지 치료방법들이 좋은 경험과 도움이 되었다.

신체발달형치료사와 보행치료중


좋은 치료사란


환자들 사이에서 좋은 치료사는 당연히 치료 잘하는 치료사이다. 하지만 치료를 잘한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 누구는 잘한다고 하지만 내 기준엔 아니고, 내 기준엔 잘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기도 하고. 같은 뇌졸중이어도 환자마다 특징이 다 다른 만큼, 치료도 환자마다 느끼는 게 다 다르다. 그래서 환자 스스로가 몸이 달라지는 게 느껴지면 그 치료사는 본인에게는 치료 잘하는 치료사가 된다. 다른 환자들의 의견과 느낌은 중요하지 않다. 간혹 이런 부분을 고민하는 치료사들이 있다. 환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달래가며 치료를 임해야하는지 vs 환자가 잘 따라오지 않더라도,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않더라도 치료에 억지로라도 개입시켜야하는지. 몸과 마음 어느 것을 더 중점적으로 다뤄야 하는지 말이다. 환자나 치료사나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이다.


몸이 좋아지면 마음도 좋아진다.

환자 스스로가 치료에 불만이고 감정도 좋지 않고 하더라도, 본인의 몸이 좋아지고 기능회복이 어느 정도 되면 점점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해지면서 자기효능감이 생긴다. 자기 효능감을 바탕으로 인지기능과 감정의 회복 나아가 신체회복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같은 맥락으로 치료사가 당장은 환자와 통하는 것 같지 않고, 환자가 힘들게 하더라도 환자의 기능회복에 큰 도움을 준다면 환자는 치료사에게 신뢰가 생기고 잘 따르게 될 것이다.


이것저것 다 꼬이고 뭐부터 해야할 지 모르는 환자나 치료사는 일단 재활치료나 운동을 열심히 하자. 몸이 좋아지다 보면 다른 부수적인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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