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여름잠 08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기명 Jun 09. 2022

내가 그린 감정 그림

 요즘 주위에 보이는 감정들은 이모티콘의 모습을 하고 있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화나거나, 삐치거나, 웃기거나, 축하하거나,  아무 생각 없거나. 이모티콘 하나로 표현되곤 한다. 편리성에 입각해 단출해진 감정 표현. 달랑 이모티콘만 보내면 성의 없어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을 타겟팅하는지 갈수록 이모티콘은 복잡해진다. 모션이 있거나, 글자가 써진다거나, 화면을 꽉 채우거나. 말라가는 감정들을 채우는 건 신상 이모티콘들이다.


 이런 이모티콘이라도 존재감과 필요성은 명확하다. 대답하기 애매할 때, 귀찮을 때, 누군가 이모티콘으로 말을 걸 때, 바쁠 때. 이럴 땐 나름 이모티콘에 정성이 들어간다고 믿는다. 자기합리화일지도, 상대방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본인은 꽤 많은 정성을 들여 이모티콘을 선별하고 보낸다. 그것도 전 세계가 가지고 있는 공용의 이모티콘이 아니라 내가 투자한 감정표현 대체제를 보낸다. 나 대신 격한 모션감으로 상대를 공감하고 리액션하고 자연스럽게 대화의 끝맺음을 지을 수 있다.


 ‘제제의 발그림 이초티콘 4’ 유일한 유료 이모티콘인데 여자친구가 귀엽다고 선물로 줬다. 누군가 선물을 주면 구멍이 날 때까지 쓰는 성향이라 초반에 남발했고 지금도 적절한 시기에 잘 쓰고 있다. 귀여운 이모티콘이 보이면 구매하는 여자친구지만 막상 나와 대화할 때 쓰는 걸 못 봤다. 나 말고 다른 친구들한테 쓰는 건가…? 여하튼 우리는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표출하기보단 어쩌다 보니 느낌표로 감정을 공유하게 되었다. 이분법적이다. 평소엔 느낌표 한 개 기쁘거나 놀라울 때 느낌표 두 개 이상이 있다면,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느낌표가 비어있다. 하나의 시그널이 되었다.


 소설가 김영하가 강의 시간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소설을 쓸 때 짜증난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짜증이란 단어는 수많은 감정을 함축하고 있어 답답하거나 화나거나 슬프거나 심지어 웃길 때도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와 카톡으로 대화해보고 싶다. 이모티콘을 쓸까? 만약 사용한다면 어떤 경우에, 왜 쓸까. 그도 바쁘거나 귀찮거나 대답하기 애매할 때 하나의 매크로처럼 활용할까? 아마도 그는, 내가 믿고 있는 그는 어떠한 경우라도 완성된 단어와 말로 대답을 할 것이다. 바쁘다는 뉘앙스가 담긴 대답을, 귀찮거나 애매하다는 뉘앙스의 감정 표현을 어떻게든 구현 할 수 있겠지?


 어떠한 상황에서도 글은 하찮은 게 아니니까. 이모티콘에 정성 들여 나름 감정 표현을 한 것이라고 자기합리화했던 나를 반성하게 된다. 소설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글 쓰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으니까 짧더라도 풍부하고 광범위하게 감정을 담아 표현해보자란 원대한 다짐을 한다.

이전 07화 오늘도 편의점에 들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