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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여름잠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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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Jul 27. 2022

마음 속 창문의 재질

 우리 모두 창문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미닫이인지 방충망이 달렸는지는 혹은 녹이 슬어서 잘 열리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눈코입이 강제적으로 주입하는 걸 일차적으로 막는 내면의 창문이 있다. 그걸 사람들은 ‘판단’이란 단어로 붙인 듯하다. 남의 마음의 창문을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나의 창문은 보이지 않더라도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 알기 쉽다. 때론 원하는 모양과 열림의 강도 또한 내 상황에 따라 마음대로 정할 수 있으니까.


내 창문은 멀리서 보면 견고한 성벽처럼 보일 것 같다. 외부에서 열기 힘들어 보이는, 내부에 해괴한 잠금장치가 걸려있을 것 같은. 외부인의 감정을 그대로 복사하는 거울 재질의 창문과 정반대의 속성을 지닐 것이다. 표정이 전혀 보이지 않는 무광의 재질. 하지만 터치 한 번이면 스르륵 열린다. 열리는 순간 창문이 투명해지거나 거울의 재질을 하고 있으면 좋겠지만 여전히 무광인 듯하다. 유광을 흉내 내는 무광일 때도 있었을 테다.


 우리 회사의 입사 동기는 6명이었다. 지금은 절반이 나가서 3명만 남았지만… 같은 해 중고 신입으로 들어온 다른 사원 3명도 동기로 속하게 되었는데 이미 알고 있던 한 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타회사 사람들이었다. 따로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웠는데 업무상으로도 겹치는 게 없었고 더군다나 누군가는 빠른 년생이고 한 살 언니랑 친구를 하기로 했다는 등 나이도 꼬여서 호칭 정리도 애매했다. 노량진에서 동기 회식을 한 적이 있고 그제서야 이야기를 나눠봤고 역시 또래 친구들이라 유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문은 닫혀있었다. 말 놓는 순간 꼬이니까 그냥 ‘~씨’라고 부르자고 정하는 순간 창문은 견고했다. 그렇게 편안하게 이름을 부르기까지 대략적으로 1년이 흘렀다.


 “나중에 점심 같이 먹어요”란 카톡이 없었다면 “나중에 술 한잔해요”란 대답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꾹 닫힌 창문에 쌓인 여러 감정들이 한 번에 쑥 흘러왔다. 계속 열어두었으면 희미한 먼지처럼 느껴졌을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큰 덩어리를 만들어낸 듯하다. 말 놓기로 하고 하루 이틀도 안 되어서 입사 동기들만큼 거리낌이 없어졌다. 업무상으로 만나는 관계가 아니다 보니까 동네 친구처럼 느껴진다. 일적인 이야기보다 좋아하는 영화를 추천해 주고 디엠으로 드립도 치는 등 오히려 더 편한 마음이다.


 내 마음의 창문은 어쩌다가 이런 속성을 지니게 되었을까. 원래부터 그랬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귀찮은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 한몫을 한 것 같다. 창문을 여는 순간 들리는 여러 소리들과 들어오는 먼지나 잡종 벌레들. 항시 햇살은 들어오게 되겠지만 내가 신경 써야 할 게 더 많아지긴 하는 건 변치 않았다. 내게 방충망이 생겨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점점 쌓이는 방충망의 개수들로 인해 한 번 닫힌 창문이 잘 열리지 않게 되었다. 단 열리는 순간 방충망들도 싹 날아가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도 적절한 선은 지키겠지만 문이 열린 순간만큼은 내면의 장난기 있는 철없는 모습도 서슴없이 보여줄 수 있을 만큼 투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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