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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여름잠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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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Jul 16. 2022

오늘도 편의점에 들릅니다

 발걸음은 가볍지만 마냥 편하진 않은 곳이 있다. 집을 드나들 듯 하루의 루틴처럼 들리는 곳이지만 여전히 낯선 사람과 마주하게 되는 곳, 편의점. 이곳은 슈퍼마켓과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내 가족 구성원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계시는 슈퍼 아주머니와 달리 편의점 아저씨 앞에 서면 마치 뷰티인사이드 주인공이 된 듯하다. 맥주를 사갈 때 어떤 날엔 신분증 검사를 하고 어떤 날엔 안 하는 걸 보면 가족 구성원은커녕 내가 동네 주민인 것도 모를 것 같다. 마스크 벗어보라 하곤 넌지시 쳐다보시는 그의 눈초리는 낯선 사람을 대할 때의 눈빛이다. 물론 마스크를 써서 다 비슷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술을 판매할 땐 신분증을 검사해야 한다는 매뉴얼에 엄격한 편일 수 있겠지만 편의점 아저씨와 나의 유대감은 깊어지기 힘들겠다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비교적 유대감이 있었던 슈퍼에 가진 않는다. 슈퍼와 편의점 사이에 정확히 우리집이 위치하는데 10에 9번은 편의점에 간다. 그중 1번은 비가 오는 날 파전과 같이 마실 막걸리를 사오라는 심부름할 때다. 슈퍼보다 편의점에 가게 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소액 카드 결제 때문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예전엔 소액결제는 현금으로 해야 한다는 슈퍼의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카드 될까요?” 조심스레 물어보면 살짝 헛기침을 하시며 이번만 해줄게란 뉘앙스를 풍기셨었다. 요즘은 간단한 간식이나 맥주 한 캔을 사러 가니 자연스레 소액결제에 관대한 편의점에 저절로 발길이 가게 된 것 같다.


 친한 친구가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 위치도 딱 7호선 라인이라 퇴근길에 자주 들르게 되더라. 평소 편의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실제로 어떤 제품들이 잘 나가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간략하게나마 집행된 광고의 효과가 있는지도 체감할 수 있지 않나. 사실 손님이 우리 회사 제품을 구매할 때 느껴지는 희열감에 편의점 방문을 좋아했던 것 같다. 친구는 유통기한이 다가오는 도시락과 마카롱 등을 선별해 내게 줬다. 몇 시간 뒤면 폐기될 테지만 아직은 멀쩡한 음식을 먹으며 친구가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구경한 적이 있다. 손님 응대하고, 계산하고, 2+1이니 하나 더 가져오라고 안내하고, 손님이 없을 땐 비어있는 제품이 뭐가 있는지 스캔한다. 한 40분 정도 옆에 있었나? 별다른 거 없이 위의 과정을 반복하는 듯했고 내 눈은 사람들이 어떤 제품을 사느냐보단 친구의 반복되고 있는 행동들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행동을 지켜보면 자연스레 고등학생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까진 나만의 루틴을 만드는 걸 좋아했다. 오그라들지만 나만의 행운 문구가 있었고 시험을 보기 전이나 중요한 순간을 앞둔 순간에 그 문구를 책상이나 벽에 낙서하기도 했다. 정말 간절할 때는 문구 위에 이루어졌으면 하는 소망을 적기도 했는데… 그땐 왜 그랬을까…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루틴 속에 나를 가두지 않기로 했었다. 사소하지만 친구들과 대화할 때도 반복되는 이야기는 되도록 안 하고 싶었다. 대화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새로운 걸 시도하다 보니까 사회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직업도 매번 새로운 걸 했으면 했고 다행히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야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언젠가는 매번 새로운 걸 추구하는 내 성향도 나와 일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느슨해질 때쯤이면 다른 식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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