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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여름잠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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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Oct 13. 2022

언제까지 '한국의 스위스'만 가볼 거야

 해외여행 하나로도 다양한 선택지가 생긴다. 여행이냐 휴양이냐. 패키지냐 자유냐. 단기냐 장기냐. 여행을 앞두고부터 결정해야 할 일은 수많은 검토들의 산더미다. 몸이 편한 직항이냐 몸이 불편한 경유냐. 지갑이 가벼울 호텔이냐 무거운 캐리어 끌고 구글 지도에 의지한 채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닌 후 겨우 찾아낸 외진 숙소냐. 또 택시를 탈 건지 렌트를 한 건지까지. 어쩌면 중대한 결정일 수도 있으므로 최대한 안전하면서도 가성비가 있는 최선의 선택들로 여행 옵션을 구축한다.


 전세계엔 237개 국가가 있단다. 내가 가본 해외라곤 단 하나. 중국뿐인데 공교롭게도 여기만 두 번 가봤다. 대한민국은 그나마 매달 여행 비슷하게 다니고 있으니 아직 235개의 세계관이 남아있다. 여행유튜버처럼 도장깨기는 안 하겠지만 마음으로는 이미 갔다 와본,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10월 11일. 2년 7개월 만에 개인 여행 해제가 된다는 일본. 여자친구 선정 “내가 좋아할 만한 곳” 독일. 그리고 좋아하는 색으로 가득 찬 스위스. 이렇게 3곳은 한 번쯤 여행을 목적으로 방문하고 싶다.


 언젠가는 가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 미국은 왠지 여행보단 일을 해보고 싶다. 미국이 광고의 메카라고 하지 않나. 우리가 레퍼런스를 삼고 있는 광고를 직접 만들고픈 욕심은 있다. 해외에서 일을 한다는 건 보통 아닌 일이다. 영어는 네이티브에 가까워야 하는 건 기본일 테고 지금까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던 사람들도 공감하고 놀랄만한 크리에이티브와 인사이트. 무엇보다 한국에서도 어려운 걸 해외에서도 해낼 수 있다는 뻔뻔한 자신감이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 아직 한국어로 가득한 카피를 쓰는 것도 어려운데 어릴 때 남들 따라 TOPIA어학원에서 바짝 배운 시험용 영어로는 카피를 쓸 순 없을 테다.


 어쩔 때는 꼭 해외를 가봐야 하나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유행처럼 번졌던 유럽여행과 워킹홀리데이. 세계 랜드마크 앞에서 찍은 사진들.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수없이 봐서 그런지 이미 갔다 온 듯하다. 눈이라는 감각기관이 얻어낸 정보를 뉴런이란 중간 단계를 거쳐 뇌는 이해하니까. 이미 수많은 해외의 사진을 본 내가 느끼는 감정들보다 더 원초적인 감정을 느꼈을 테다. 뇌는 이미 퍼스트클래스를 타고 여러 해외를 가봤다고 해도 체감상으론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직접 가보지 않고도 누구보다 더 깊은 공감과 몰입도 높은 상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유튜브나 메타버스로도 여행의 다른 이름인 설렘을 꽤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듯하다.


 유튜브나 메타버스 같은 게 없는 시절, 예를 들면 조선시대 같은 경우는 해외를 이토록 갈망하진 않았을 것이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해외여행을 통해 얻고자 한 영감은 일종의 지름길일 테다. 천재적인 건축가 가우디는 어린 시절 건강이 좋지 않아 집 근처 작업실에서만 보냈다고 한다. 그는 본인의 스승을 ‘작업실 앞 나무’라고 할 정도 집돌이였다고 한다. 성인이 되고서도 가난한 탓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보단 도서관에서 여러 책을 읽었다고 한다. 해외 여러 건축 관련 서적이나 철학과 미학. 해외여행 한 번 없이 그는 전세계가 놀랄만한 건축물을 탄생시켰다.


 혹시 가우디가 한국에 놀러 왔더라면 어땠을까. 동양적인 미가 무의식적으로 첨가된 천재적인 건축물을 구상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구엘공원 가운데에 위치한 한국적 미가 다분한 정자에서 한가롭게 책일 읽고 있는 스페인 할머니 할아버지. 이런 정겨운 모습을 상상해 보면 해외여행이란 영감의 지름길을 굳이 안 갈 필요는 없겠다. 일본을 시작으로 독일, 스위스 그리고 미국까지. 차근차근 가봐야겠다. 신라면에 돼지고기 수육을 넣을 때가, 편의점에서 독일산 흑맥주 바이드만 슈바르츠를 고를 순간이, 강원도에 있는 ‘한국의 스위스’를 가서 미네랄 가득한 공기를 마셨던 예전을 회상할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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