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여름잠 10화

업데이트 말고 새로운 거

by 무기명

방구석에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심지어 무료 서비스인 오래전 사진첩 들여다보기. 몇 번 봤던 사진이겠지만 강한 저항을 맞닥뜨릴 수도 있다. 주체할 수없이 손발이 오그라들거나. 췌장에서 튀어나오듯 툭 튀어나오는 웃음. 이건 내 미래에 지장을 줄 수 있겠다는 사진들을 마주하곤 앨범에서 살짝 빼둘까 고민도 한다. 이렇게 추억여행하는 것도 이젠 간단해졌다. 묵직한 먼지가 쌓인 사진앨범을 찾을 필요 없이 핸드폰 앨범 스크롤을 쭉 내리기만 하면 되니까.


성수와 서울숲 부근을 돌아다니다 골목길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한 카페에 들어갔다. 트렌드는 이곳임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싶은 카페였다. 간판도 없는, 방금 갈은 것 같은 거친 돌로 된 의자, 무심한 직원. 그리고 메뉴를 상세히 볼 수 있는 홈버튼이 달려있는 아이패드 미니. 홈버튼을 누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른 채 사진을 옆으로 넘겼다. 주문을 마치고 든 생각은 이거였다. 어딘가 방전되어 있는 아이패드 미니1을 찾아봐야겠다. 그렇게 아이패드 미니1을 탄 추억여행이 시작되었다.


실컷 앨범을 누비다 거실에 버려져 있는 거치대를 발견했고 카페처럼 아이패드를 상시 비치해두면 어떨까 싶었다. 넷플릭스나 유튜브도 보면 딱이겠다 싶어 앱 설치하려는데 ‘이 iPad에 호환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만 떴다. 뭐 넷플릭스는 이해하겠는데 유튜브마저… 일상의 기본이 된 넷플릭스와 유튜브조차 버거운 존재가 돼버린 아이패드 미니1을 보니 역시 기계 따윈 인간을 이길 수 없구나란 터무니없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기기 자체 내에선 최신 업데이트 버전인데도 불구하고 호환할 수 없다는 iPad의 처절한 외침은 곧 끝을 마주하게 된 유언과 버금가지 않을까.


반면 인간은 평생 업데이트가 가능할까. 어느 책에서 말하길 인간의 뇌는 20대가 넘어가면 더디게 업데이트된다고 하더라. 불행 중 다행히도 더디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대니까 남은 기간 압축적으로 업데이트를 미리미리 해둬야겠다란 다짐이 생긴다. 또 신기하게도 30대가 되기 전 이것저것 해보라는 사수의 이야기도 있었기에 뭐라도 해야지란 다짐은 의지가 되었다. 여러 리스트가 작성되었는데 그중 영어 스피킹, 테니스, 요리, 연기 등. 이전에 해왔지만 완벽하게 끝내지 못한 활동이나 시도하려고 문 앞까지 갔던 것들이 먼저 생각났다.


업데이트를 하기 앞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가 진정 업데이트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 그걸로 만족할까? 이전에 해왔던 걸 반복하는 게 아닐까. 이미 뇌에게 익숙한 걸 또 들이밀면 반가워할까. 자극이 있을까. 새로운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다. 정말 생뚱맞을 수도 있지만 아예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닌. 모두가 하는 게 아닌 유일해 보이는 그것. 내 인식에서의 무의 지경에 있는 그것을 실체 있음으로 드러내야 하는데 역시나 무가 뭔지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며칠째 뭐가 있을지 서치 해보고 있는데 납득이 안되고 포용이 안된다. 이러한 과정 자체야말로 자기 계발 아닐까. ‘무’란 무엇일까 계속 고민해보다 머리가 텅텅 빈 그 찰나의 순간을 마주할 때 잠시 무의 상태를 경험했고 이게 무였구나 깨닫듯. 기존에 해오지 않은 그 무언갈하기엔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주위 친구들은 새로운 걸 하고 있을까. 이야길 들어보면 스페인에서 워홀을 하기 위해 스페인어를 배운다던가. 소주를 좋아하지만 위스키를 공부한다든지. 이전에 하지 못했던 수영을 배우고 어느 정도 실력이 올라가자 프리다이빙까지 배우고 싶다든지.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어 했고, 못했던 수영을 하고 싶어 했다는 목적이 있었다. 제로가 아닌 조금이라도 할 수 있다면 만족할 수도 있고 성취감 또한 뚜렷한 것. 기억 속에 잔재하지 않은 무언가를 하고 싶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가장 쉬운 자극은 가보지 않은 곳으로 떠나는 해외여행이지 않을까. 심지어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 2022년 목표로 일본을 가봐야겠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되도록이면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가보고 싶다. 그렇게 시작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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