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그림을 참 잘그렸다.
입체적인 도형그림도, 명암, 색감의 조화는 어쩜 그리 표현을 잘해내던지 그저 신기했다.
어린시절 뭐든 잘해내는 오빠는 참 멋졌고 항상 어른들은 오빠를 칭찬하기 바빴다.
그런 오빠가 질투도 나고 닮고 싶었지만, 그림은 예술적인건 감각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 나는 일찌감치 그 감각 없음을 인정했다. 없는건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지나고보면 참 귀여운 모습인걸 그땐 그게 커보이고 제일 속상하더라.
하지만 오빠에겐 예민하고 조금은 날선 구석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빤 까칠한 재능남이었고 난 부드러운 귀염둥이었다.
그런 모습을 알아가면서 더 이상 난 내게 그가 가진 재능이 없다고 슬프지 않았다. 난 예술적 감각을 얻는 대신 까칠함을 갖어야한다면 단숨에 'no'라고 말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찌 생각해보면 그 까칠함은 재능을 지켜내기 위함이었으리라. 하지만 그 과정이 어떻든 내가 원하는 모습은 그 모습이 아니기에 받기가 겁난다.
내가 갖고 싶지 않은 모습을 갖는 대신에 감수해야하는 것이 있다면 나는 지금 감각이나 재능이 없는 지금 내 모습이 좋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새로운것을 배우는것을 좋아하는 나에겐 오히려 재능이 없는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나씩 배워가는 재미가 있으니 말이다.
살아가다보면
남에게 질투와 시기, 자격지심을 느낄때가 많다.
신은 공평하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어느정도 비슷하게 서로 맘 상하지 않을 정도로는 만들어 놓으신건 아닐까? 고리타분 할 수 있지만 뭐든 마음먹기에 달렸다. 나에게 없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나에게 있는것에 집중하고 감사하면 그 안좋은 마음이 다 사라진다. 천천히, 차분히.
여전히 오빤 그림을 잘 그린다. 재능은 어디 가지 않나보다.
어릴적 그려놓은 그림을 보면 기특하기까지하다.
지금 어린 오빠를 만난다면 넓은 마음으로, 진심으로 잘 그렸다고 훌륭하다고 어린날의 어른들이 했던 것처럼 칭찬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