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이는 스스로 일어설 수 있다

아빠가 되길 잘했다

by 박희종

아이가 나와 놀아줄 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세가 있다. 내가 바닥에서 등을 기대고 무릎을 굽히고 앉으면 내 허벅지에 아이를 기대서 눕히는 거다. 그럼 아이와 내가 마주 보는 자세가 되고 아이에게는 아빠가 조절해주는 자동 리클라이너가 된다. 나는 내가 아이와 눈을 맞추고 놀 수도 있고 두 손이 자유로워 침을 닦아주거나 책을 펴주기도 좋아서 항상 이자세로 함께 논다. 그런데 아이도 이 자세가 편한지 아빠 무릎에만 올라오면 항상 응가를 한다. 지금보다 더 아기일 때부터 이 자세로 놀았는데 두 달이 지나서쯤부터인지 자꾸 낑낑대고 일어나고 싶어 했다. 그때는 아직 다리에 힘이 없을 때라서 일으켜 세워 준다고 해도 거의 내가 들어주는 것이지만 그래도 일어서면 그렇게 좋아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다리도 굵어지고 힘도 더 생겨서 그 자세로 얌전히 기대고 있지 않는다. 마치 윗몸일으키기를 하려는 것처럼 그렇게 자꾸 일어서려고 하는데 이제는 두 손만 손가락으로 잡아줘도 만세를 하면서 일어나버린다.

그렇게 스스로 일어나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나만의 착각일지는 모르지만 내가 겨드랑이에 팔을 넣어서 일으켜 주는 것보다 자기가 스스로 일어나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조카들의 경험을 비추어 보면 우리 아이는 곧 무엇인가를 잡고 일어설 것이고, 몇 번을 넘어지면서도 다시 서고 걸으려고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다리에 힘이 생기는 순간부터 스스로 일어서고 싶어 하고 혼자 걷고 싶어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일도 안된 아이들이 그런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의 본능이라고 말하기에 너무 당연한 이야기 일 것이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스스로 일어서려고 하고 스스로 걸어 나간다. 그리고 부모의 역할은 손을 내밀어 조금 도와주거나 넘어졌을 때 괜찮다고 다시 한번 일어나 보라고 응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많은 부모님들은 아이의 삶에 더 많은 것들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아이의 꿈도 정해주고 미래도 설계해주고 짧은 삶이지만 그 아이가 어떻게 자라왔는지 그럴싸하게 포장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성장하는 아이들이 과연 자신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정확하게 인지하고 스스로 나아갈 수 있을까?


나는 이제 고작 130일이 조금 넘은 아이의 아빠다. 너무너무 초보인 부모이자, 아직은 모르는 것이 넘쳐나는 부족한 아빠다. 그래서 내가 쓰는 육아에 대한 글들이 시간이 갈수록 나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나의 다리 힘을 믿어주는 그래서 나의 걸음걸음을 묵묵히 응원해주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그들은 항상 본인이 뒷바라지를 많이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지만, 나에게는 그것 이상의 뒷바라지는 없었다.


"너는 항상 한다고 하면 꼭 하는 애야"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아빠한테 물어보지 말고 잘할 수 있잖아"


어린 시절 내가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하면 부모님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들이었다. 나의 부모님들은 내가 무엇인가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단 한 번도 안된다고 말하지 않으셨다. 어쩌면 경험상 말려도 결국은 할 것이란 걸 아셨는지도 모르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을 좋아하셨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믿어주고 응원해주시는 부모님 덕분에 나는 연극을 시작했고, 글을 쓰기도 했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기도 하고, 20대에 장사를 하기도 했다.(우리 부모님의 응원은 금전적인 것은 아니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항상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고, 금전적으로 도와주시는 경우도 많았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은 내가 벌어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의 부모님은 항상 나의 과정을 조용히 바라보시고 내가 이루어 냈을 때 정말 많이 좋아해 주셨다.


내가 막상 나의 아이를 기르면서 점점 커지는 욕심에 그리고 먼저 살아온 선배로서의 조바심에 무엇인가 압박하고 닦달하며 꿈과 노력을 강요할지도 모른다. 나도 부모는 처음이기 때문에 지금은 자신하지만 변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최대한 참아보려고 한다. 내가 그랬듯이 우리 아이도 스스로 잘 찾아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어쩌면 요즘 같은 세상에 아이를 믿고 지켜봐 주는 것이 부모가 쫓아다니며 대신해주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대부분의 부모가 더 많은 것을 만들어 주고 그런 아이들과 경쟁하게 나의 아이가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점점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키워지고 있다면 나는 더 나의 아이를 스스로 일어서는 아이로 키워 나가고 싶다. 그래야 그 아이가 더 멀리까지 갈 힘이 생길 것 같아서 말이다.


모든 사람은 다리에 힘이 생기는 순간부터 스스로 일어서려고 하는 의지와 앞으로 걷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 혹시 지금이라도 누군가의 모습이 불안하여 옆에서 닦달하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만 더 믿어보는 것은 어떨까? 분명히 스스로 일어설 수도 앞으로 걸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도 그랬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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