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너의 낮잠이 우리 가정을 지킨단다

부모의 먹놀잠

by 박희종

어제 나는 아이의 예방접종때문에 연차를 쓰고 집에 있었다. 와이프는 내가 회사를 안 간다는 사실에 너무 많이 좋아했고, 연차 전날 아이의 목욕을 시키는 것도 아이가 잠을 좀 늦게 자던 것도 부담이 덜했던 것 같다. 누군가는 그게 뭐 큰일이라고 저렇게 까지 좋아하나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연차를 내고 하루 종일 아이와 놀아본다면 단 하루의 경험만으로도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 내가 퇴근을 하고 들어왔을 때 아내의 표정이나 컨디션을 보면 우리 아이가 낮에 낮잠을 잤는지 안 잤는지 바로 알 수 있다. 물론, 이미 통화와 카톡으로 아이의 상태를 알고 있지만 나도 직상생활 중이고 와이프도 혼자 아이를 케어하고 있으니 자세한 내막은 알기 어렵다. 하지만 퇴근을 맞아주는 와이프에 표정은 그 어떤 자세한 연락들 보다도 정확하고 농축되어있는 아이의 정보를 알 수 있다.

아이가 낮잠을 잔 날은 와이프의 표정이 아주 밝다. 나를 반갑게 맞아주기도 하고, 내가 들어와서 씻고 아이를 받기까지의 시간을 여유 있게 기다려 주기도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와이프의 휴식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하루 종일 혼자 아이를 돌보는 와이프에게 아이의 낮잠시간은 엄청난 시간이다. (물론 1~2시간 이상 푹 자주는 시간을 이야기한다.) 보통 그 시간에는 밤에 부족했던 낮잠을 자거나 아니면 미뤄뒀던 집안일을 하게 되는데 둘 중에 무엇이든 상관없이 와이프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우선 아이와 함께 낮잠을 잤다고 하면 와이프의 컨디션은 당연히 훨씬 좋아진다. 그래서 내가 집에 와서 아이를 받는 순간 와이프는 저녁을 차려주고, 간단한 집안일들을 한다. (물론, 힘든 집안일들은 아이가 잠들고 나서 같이 하거나 내가 하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분위기는 너무 좋다. 틈틈이 와이프는 나와 아이에게 와서 같이 놀기도 하고 상을 차리거나 정리하는 와이프를 아이를 안고 쫒았다니며, 같이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러니 누가 집안일을 하느냐 마느냐의 싸움은 벌어지지 않고, 서로 할 수 있는 일들을 기분 좋게 하게 된다.

만약, 아이가 낮잠을 자는 시간에 와이프가 잠이 오지 않아 집안일을 했다면 그 역시도 나쁘지 않다. 내가 돌아왔을 때 분명히 와이프의 표정은 피곤해 보이겠지만, 대신 집안일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다. 그러니 내가 씻고 아이를 받으면, 그 뒤로 쿨하게 침실로 가서 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아이가 낮잠을 자지 않은 날도 너무 피곤하기 때문에 내가 씻고 나면 바로 들어가서 쉬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정리되지 않은 집에, 눈에 보이는 일을 두고 침대로 들어가는 일은 몸은 좀 편해질 지라도 마음은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낮에 그래도 아이가 자는 시간에 어느 정도의 집안일을 해 놓았다면 정말 부담 없이 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수많은 카페와 블로그에서 그리고 다양한 육아서적에서 아이의 먹놀잠이 너무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아이가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시스템만 잘 습관이 된다면 육아가 수월하기도 하고 아이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아이의 먹놀잠만큼이나 육아를 하는 엄마와 아빠의 먹놀잠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육아에 지친 부모들은 우선 밥을 잘 챙겨 먹지 못한다. 집에서 육아를 하고 있는 엄마들은 당연한 것이고, 나의 경우도 주말에 집에서 아이와 놀다 보면 아이의 먹는 스케줄이 중요하지 나와 와이프의 밥은 대충 때우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엄청난 운동에너지를 쓰고 있는 육아에서 밥을 잘 먹지 못하는 것은 당연히 컨디션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나머지 모든 것에 다 영향을 주게 된다. 나는 그래서 적어도 와이프의 밥은 꼭 챙겨주고 싶어 한다. (챙겨준다라고 확실히 말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만큼 꼼꼼하게 챙기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 내가 주로 하는 것은 옥수수, 고구마, 호박 등 밥을 잘 챙겨 먹지 못할 때 허기라도 간단히 채울 수 있는 건강한 간식들은 챙겨놓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다음은 노는 것이다. 하루 종일 아이와 단둘이 주로 거실에서만 생활하다 보면 와이프의 스트레스는 아이의 귀여움과는 상관없이 쌓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와이프가 조금이라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것들이 있어야 하는 데, 솔직히 우리도 아직 답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나마 와이프가 좋아하는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해서 볼 수 있게 해 주거나 혹은 내가 아이를 볼 때는 되도록이면 공간을 분리해서 신경 쓰지 않고 푹 쉴 수 있게 하려고 한다. 거기다 가끔 혼자 산책이나 도서관이라도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나가라고 자꾸 등을 떠밀기도 한다. (가끔 보고 싶은 영화를 처제랑 극장 가서 보고 오라고 하기도 하지만 와이프는 정작 쉽게 아이를 두고 긴 시간을 나가기가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엄마도 잘 놀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육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집에만 있는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래야 아이와 함께 있을 때 더 밝고 행복한 표정으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처음부터 말했던 잠이다. 와이프는 임신기간 때부터 밤에 잠을 잘 들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겪는 임신의 증상이기는 하지만 아이가 오고 나니 아이의 작은 소리에도 신경이 쓰여 쉽게 잠들지 못하거나 중간에 자꾸 깨게 된다. 그러니 밤에 잠을 푹 자지 못한 와이프는 낮에도 계속 컨디션이 안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낮잠이라도 자면 그 사이 쪽잠이라도 자서 피로를 푸는 것인데, 낮잠까지 자지 않는 날은 와이프의 컨디션과 기분이 좋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행복한 육아를 하기 위해서는 엄마의 수면시간이 가장 중요한 필수 조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얼마 전에 내가 읽은 기사 중에 제일 충격적인 것이 3~40대 이혼하는 부부의 이혼사유 중에 90%가 직접적인 육아의 트러블이거나 연관된 사건들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이야기들이자 현실적으로 가장 큰 리스크들인데 결국 중요한 것은 아빠나 엄마나 심지어 아이나 모두 힘든 시기라는 것이다. 그 힘든 시기를 서로의 배려과 지혜로 어떻게 잘 이겨 나가느냐가 우리 가정의 미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자 행복한 가정의 가장 큰 포인트일 것이다.

우리는 아이를 기르면서 모든 것이 아이에게 집중되어진다. 부모의 모든 시간과 공간은 아이에 의해 지배되고 부모의 행동은 모두 아이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아이의 육아를 위해 모든 것을 후순위로 미루기만 한다면 아이도 행복할 수 없다. 부모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도 행복하게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아이의 분유를 고르는 것만큼 부모가 먹고 싶은 것도 찾아봐야 하며, 아이의 예쁜 옷을 사는 것만큼 엄마의 예쁜 수유복도 아빠의 출근 옷도 사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쉬고 노는 만큼 부모도 쉬고 놀아야 한다. 우리의 육아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며, 쉽게 편해지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육아하는 삶도 잘 돌봐야 하지 않을까? 육아를 하는 우리의 삶을 좀 더 애틋한 마음으로 보살펴야만 조금은 더 행복한 육아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딸아이가 조금만 더 크면 꼭 자주 말해줄 것이다.


"딸아, 너의 낮잠이 우리의 가정을 지킨단다"


"어서 자렴.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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