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한 밤 스웨덴에 도착했을 때,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엔 조그만 태양이 떠올랐다.
다니엘 Daniel!
한국에서부터 꾸준히 메일을 보내 안부를 묻던 나의 버디* 다니엘이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다. 엄청나게 커다란 덩치의 금발머리 외국인이 다섯 손가락을 펴 손을 흔드는데, 꼭 태양이 떠오른 것 같았다. 낯선 땅을 밟자마자 아는 사람, 아니 앞으로 알아갈 사람을 만났다는 안도감과 이 많은 짐들을 끌고 기숙사까지 갈 수 있겠다는 확신. 190cm 거구의 다니엘이 온몸으로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공항에서 804번 버스를 타고 웁살라 uppsala 대학교 기숙사로 향했다. 내가 배정받은 기숙사 <플록스타flogsta>는 매일 밤 10시 창문 밖으로 있는 힘껏 소리를 내지르는 전통, ‘플록스타 스크림 flogsta scream’으로 유명했고, 파티 기숙사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었다. 국제학생 비율이 높고, 매일 밤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파티에 학생들 사이에서는 평이 극명히 갈렸다. 진득이 공부 좀 해보려는 학생에겐 최악으로, 이번 교환학기 제대로 즐겨보려는 학생에겐 최상의 환경으로. 평생 파티라고는 집 근처 피자헛에서 생일파티밖에 해본 적 없는 나는 그 ‘파티’라는 것을 슬그머니 기대하고 있었다. 물론 그 기대와는 별개로 여분의 귀마개를 두둑이 챙겨 왔지만.
다니엘은 스웨덴이 낯선 동양의 버디를 위해 100kr(스웨덴 크로나-약 12,000원)가 충전된 버스카드를 준비해왔다. 산더미 같은 짐을 이고 지고 가는 와중에 정신없음을 핑계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의 배려가 아주 오랜 습관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드르륵
드르르륵
32kg 캐리어를 끌고 눈과 흙이 섞인 길을 걸었다. 앞서 걷는 다니엘은 덩치만큼 커다란 가방을 들고 발걸음이 씩씩했다. 거리는 얼마 되지도 않는데, 정류장에서 기숙사까지가 왜 이렇게 멀게만 느껴지는지, 온 세상이 어두컴컴했다. 겨울의 스웨덴은 오후 세시만 되면 해가 진다는데, 앞으로 이 어두컴컴한 길을 홀로 걸어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컴컴했다. 내가 이 어둠에 적응할 수 있을까. 밤이 너무 길면, 그 밤이 지겨워지는 순간이 오면 나는 괜찮을 수 있을까.
앞으로의 행복만 생각하려 노력했는데, 쉽지가 않았다. 다니엘에겐 기대감 가득한 표정만 보여주고 싶었는데. 스웨덴 땅을 밟은 지 한 시간, 삐죽삐죽 눈물이 나려는 걸 참느라 고개를 쳐들고 온 신경을 그쪽에 집중하고 있던 그때였다. 진짜 태양이 떠올랐다.
태양 모양의 등을 밖을 향해 켜 둔 방이 빛났다. 어둠을 이기려는 듯 진심을 다해 빛나는 태양.
이곳의 재치가 마음에 들었다.
이곳이 점점 더 마음에 들 것만 같았다.
어쩌면 진짜로 행복할지도 모르겠어.
*버디
inbound 교환학생이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재학생과 교환학생을 1:1 혹은 1:2로 매치하는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