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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정 Sep 10. 2024

서울에서 집 없이 산다는 것

머무르는 것은 편안하지만 그것이 삶의 이유는 아니다

자취방이 침수되었다고 말하자 김해경은 잠시 말이 없었다. 수화기 너머 짧은 침묵이 이어지더니 곧 침착한 목소리로 잘 곳이 있냐고 물어왔다.


이 인간은 놀라지도 않는 걸까? 어쨌든 물어볼까봐 긴장했는데 다행이었다.


"... 재워주십니까?"

'비밀번호 문자로 보낼 테니까 우리 집에서 자요. 난 집에 잘 안 들어가니까.'

"... 과장님은 대체 왜 집에 안 들어가세요?"

'이 대리,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집에서 살면 안 돼요. 어젯밤에 나랑 길바닥에서 자서 이 대리가 자취방과 함께 침수되지 않은 거예요.'

"... 주소나 찍어요, 진짜 짜증나니까..."


***


김해경의 집으로 가는 스 안에서 창에 머리를 기댄 채 차창 너머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부럽지 않던 사람들이었는데 이제는 나와 달리 서울 하늘 아래 잘 곳이 있는 걱정 없는 들이었다.


핸드폰으로 근처 매물로 나온 전셋집을 검색했다. 1억 아래로는 있지도 않았고 그나마 간간이 보이는 1억대는 다시 침수될 것 같은 반지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씨와는 말도 않을 것이다.


8평짜리 원룸에 들어가려 해도 적어도 2억은 필요했다. 도대체 사람한테 어떻게 2억이 있단 말인가. 침수된 반지하 자취방에도 이미 1억이 넘는 대출이 들어가 있었고, 그에 비해 내 월급은 대기업 한 달 출장비 정도였으니 머리에 총 맞은 게 아닌 이상 은행에서 돈을 더 빌려줄 리 없었다. 솔직히 제2금융권에서도 '선생님, 이건 좀...' 할 처참한 소득이었다. 월세를 찾아봐도 50만 원 아래인 방은 없었다. 파인애플을 한 달 내내 썰어도 50만 원은 벌기 어려웠다.


나는 버스가 움직이는 대로 멍하니 흔들리다가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집이 없어졌다고 간단히 알렸다. 이미 내 파혼으로 심신이 쇠약해져 있던 엄마는 꽥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이사 갈 돈이 없다는 내 말에 갑자기 누구보다 침착해지더니 그동안 돈을 안 모으고 뭘 했냐고 정색을 했다.


글을 썼다고 하자 엄마는 그놈의 글 때문에 그 아가씨에게도 차이고 지상으로 올라갈 돈이 없어 집도 침수된 것 아니냐고 혼란스러운 인과관계를 표명하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글이니 책이니 하는 비현실적인 것들은 그만둘 나이 되지 않았냐는 엄마의 간곡한 호소를 뒤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버스는 여전히 탈탈거리며 김해경에게로 달려갔고 나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나에게는 오늘 잘 곳조차 없는데 밖에는 높고 균일한 아파트가 수없이 즐비했다. 규칙적인 직사각형 외관동일한 창을 모양새가 마치 저들의 세계를 나 같은 낙오자와 구분하는 것처럼 견고해 보였다.


그만둘 줄 아는 것도 용기라는 엄마의 마지막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을 누가 모른단 말인가.


***


김해경의 집에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아주 최소한 물건들만 있었다. 거의 짐을 쌓아놓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가끔 보이는 물건들은 죄다 평범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아주 먼 나라에서 온 것 같은 희한이거나 수상할 정도로 값비싼 고가였다.

 

거실에는 이불과 베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는데 강아지가 따로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안타깝게도 내 잠자리인 것 같았다. 나는 지갑과 여권, 도장 같은 것만 쑤셔 담은 배낭 차림으로 거실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김해경은 막 나가려던 참이었는지 거실에서 외투를 입고 있었다.


"과장님 어디 가세요?"

"이 대리가 내 여자친구예요, 어디 가는지 말해야 되게?" 김해경이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럼 저 남의 집에 혼자 있으라고요...?"

"강하게 커요." 김해경이 간단하게 말했다.

"... 제가 여기 뒤져서 뭐 훔쳐가면 어떡하려고요?"

"훔쳐간 거 잘 쓰길 바라야죠. 다용도실은 열지 말아요, 시체 있으니까."

"... 오늘 집에 들어오긴 하세요?"


나는 묻자마자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해경은 왕복 기차표를 끊는 사람이 아니었다. 마음대로 갔다가 아무 때나 돌아올 것이다.


나는 모른 척 배낭을 풀고 바닥에 주저앉아 김해경을 올려다보았다.


"어쨌든 피난처 주신 고맙습니다. 오늘만 신세 지겠습니다."

"알아서 해요."

"... 내일도 자도 되나요?"

"일일이 묻지 말고 독립적으로 합시다."

"... 그럼 집 구할 때까지 자도..."

"이 대리, 지금 나에게 질문할  아니라 본인 스스로에게 질문해 봐요."

"... 왜 침수됐는지 저한테 질문하라고요? 사주에 물이 없어서라는데..."


김해경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도대체 왜 그럴 수도 있겠다는 표정을 짓는 거예요?" 내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집보다 중요한 게 뭡니까?"

"... 빈대 붙을 수 있는 남의 집?"

"자유입니다." 김해경이 간결하게 말했다. "본인이 정말 집이 필요한지 생각해 봐요. 필요하다고 믿는 것과 필요한 것은 다릅니다. 남들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나에게도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 하지만 여기도 집이잖아요! 그리고 과장님도 집 있잖... 잠깐만, 이거 과장님 집 아니예요...?"

"그러니까 단순히 잘 곳이 필요한 거면 이 대리에게는 이제 이곳이 있으니 다른 집을 구할 필요가 없겠죠. 잠은 여기 자도 깨어있을 때는 죽은 것처럼 이곳에 멈춰있지 말아요. 나가서 자기 삶을 살아요.  곳에 머무르는 것은 편안하지만 그것이 이 대리 삶의 이유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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