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약은 쓰잖아...
알약 삼키는 게 힘들다는 걸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됐다. 어릴 때는 알약을 못 삼키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삼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나는 어릴 때 가루약이 너무 싫었다. 그때는 시럽약도 같이 준 기억이 없고, 그냥 가루약만 줬던 거 같은데 우리 집 어른들은 나에게 그저 물에다 가루약을 주었다. 그 어린아이가 음료나 사탕 없이 그냥 물에 가루약을 먹었으니 얼마나 쓰고 맛이 없었을까. 그래서 난 빨리 알약을 주길 바랐다. 알약을 못 먹을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실제로 알약을 받기 시작했고, 먹기 시작했을 때 너무 쉽게 알약을 삼켰다. 가루약을 먹기 싫었던 나의 간절함이 알약을 꿀꺽 삼키지 않았을까.
이랬던 나이기에 우리 아이들도 때가 되면 알약을 삼킬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알약 삼키는 건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그냥 알약이 있다 생각하지 말고 물 삼키듯이 자연스럽게 삼켜봐."
말이 쉽지.. 아이들한텐 이미 입에 알약이 있는데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나 보다. 물을 하도 많이 마셔서 알약 먹을 때마다 물배가 차서 배가 산더미가 되었다. 그래도 큰 딸은 조금 낫다. 그렇게 물배가 차더라도 어떻게든 주어진 알약을 삼키긴 했으니까... 그렇게 매일 물 배가 차다 작년인가부터는 한 두 알씩은 삼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5~6알도 한 번에 꿀꺽 잘 삼킨다.
문제는 작은 딸이다. 똑같이 알약을 먹으려면 물을 너무 많이 많이 물배가 뽈록 나온다. 하지만 물배만 나올 뿐 알약은 그대로 남아있다는 게 문제다. 전혀 삼키지를 못하고 자꾸 토해낸다. 물도 토하고 알약도 토하고... 그래서 항상 병원에 가면 아직 알약 못 먹어요를 시전... 가루약으로 받아오는데 알약 먹어야 하는 애가 가루약으로 가사오니 양이 어마어마하다. 시럽양도 많다. 그리고 맛도 없고, 쓰니까 아이가 너무 힘들어한다. 그러면서도 알약은 죽어도 못 삼키겠다 한다.
잘 먹는 아이지만 조금이라도 성장에 영양을 채워주고자 성장영양제를 샀는데... 맙소사... 알약이었다. 오 마이갓! 당연히 그동안 먹었던 영양제처럼 구미 형태나 캔디류의 영양제인줄 알았는데 삼켜야 하는 알약이라니... 그래 언젠간 삼켜야 하니까 지금부터라도 노력해 보자 하고 아이에게 알약을 먹자고 했다. 난리가 났다. 자기 못한다며... 못 삼킨다며... 시도조차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잘 설득했다. 어차피 앞으로는 알약을 먹어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 도전해 보자 하고...
근데 역시나... 너무 힘들었다. 하필이면 4알이나 됐다. 삼키기 전에 물 한 컵과 유튜브를 준비했다. 유튜브에서 알약 잘 먹는 방법을 검색했다. 가장 그럴싸한 게 빨대로 물을 먹는 것이었다. 그래서 빨대도 준비했다. 오!!! 첫 시도만에 한 알 성공했다. 희망이 보인다. 두 번째 알약 도전! 대 실패...! 하도 먹고 뱉고를 반복하다 보니 알약이 다 녹아버렸다. 형태를 알아볼 수가 없는 데다가 녹아버리니 써서 더 삼키질 못했다. 답답했다. 도대체 이게 왜 안 되는 건지, 노력조차 안 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 결국 간신히 4알 중 2알만 어찌어찌 삼키고 2알은 버렸다. 고민에 빠졌다. 아이는 이번일로 인해서 더 알약을 먹지 않으려 했다.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다.
결국 6박스 중 한 박스는 아이 친구에게 주고, 두 박스는 중고거래를 했다. (다행히 영양제도 중고거래가 되도록 법이 바뀌었다.) 남은 세 박스... 이건 꼭 먹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맘 편하게 알약을 가루로 만들어 먹이기로 했다. 아이도 가루약으로 만들어주면 그건 먹겠다고 했다. 처음엔 미니 절구로 부셔서 가루를 만들어줬다. 근데 힘들었다. 매번 이 짓을 언제 하고 있어야 하는지... 그래서 혹시나 하고 검색해 보니 알약 분쇄기라는 게 있었다. 그냥 넣고 돌리면서 부수면 되는 방식이라 쉬워 보여 바로 주문했다.
엄청 귀여웠다. 아이도 좋아했다.
알약을 넣어주고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가며 갈았다. 쉬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어갔다. 알약 자체가 워낙 딴딴하기도 해서 더 힘든 것도 있었다. 그렇게 간 영양제를 아이에게 줬다.
"분명 갈아주면 먹는다고 했다.?"
아이는 나랑 한 약속이 있기 때문에 차마 먹기 싫다고도 못하고 내가 갈아준 약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냉장고를 열고 요구르트를 찾았다. 병원에서 약 지어올 때마다 약이 쓰니까 요구르트를 사서 같이 먹였기 때문에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없지. 병원약이 아니잖아. 그래서 안 사다 놨지."
"그럼 다른 음료수라도 먹을래."
"그래."
다행히 토마토주스가 있었다. 토마토 주스랑 먹어도 쓴 건 쓴 거고, 맛없는 건 맛없는 거였다. 첨에 삼킬 때 욱 하며 토하려고 하다 간신히 삼켰다. 그렇게 영양제를 먹기 시작했다. 먹을 때마다 알약이 아니어도 힘들어하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넘어가는 게 어디냐 싶다. 가루약도 쉽진 않지? 그러니까 빨리 알약 먹자.
알약을 먹는 그날까지 열심히 갈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