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속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있듯이, 사업을 하면서도 사장인 나의 마음속에는 '좋은 고객'과 '싫은 고객'이 있다. '좋은 고객'은 대화를 할수록 기분이 좋아지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지는 사람이다. '싫은 고객'은 대화를 하는 순간 기분을 가라앉게 한다. 가끔은 당장 결제한 돈을 던져주고 문 밖으로 쫓아내고 싶을 때도 있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무인 스터디 카페를 운영하면서 사람들을 직접 마주할 일이 그렇게 많은가?"
답변부터 하자면 정말 많다. 다른 업종에 비해 가게에 상주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나조차도 이렇게 사람으로 인해 힘들지 몰랐다. 하지만 생각보다 스터디 카페 운영은 무인이 아닌 것과 다름없다는 점이 사업을 시작하고 가장 큰 반전이었다. 오히려 연중무휴 24시간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용자들과 굉장히 많은 연락을 주고받게 된다. 주중, 주말 심지어 새벽시간까지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의 성향은 '말'과 '행동'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특히, 본성은 사람이 없는 곳에서 어떤 행동을 할 때 혹은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대화를 할 때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내가 마음속에 콕 집어둔 '좋은 고객'은 언제 어디서든 자연스레 배려가 묻어있는 사람이다. 무인 스터디 카페이다 보니 한 사람의 배려 없는 행동이 전체 운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만약 누군가 테이블에 과자를 흘리고 음료를 쏟은 채 짐을 챙겨 나간다면 그 뒤에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그 자리 주변에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서 근처에 앉은 사람들이 공부하는데 방해가 된다. 끈적한 흔적들 위로 벌레가 꼬이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좌석을 예약한 다음 이용자의 기분이 굉장히 불쾌해지는 최악의 상황이 생긴다. 결국 이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 스터디 카페의 이미지에 영향을 끼친다. 그렇기 때문에 배려심 있고 책임감 있는 고객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개업날부터 청결한 관리를 위해 다 같이 이용할 수 있도록 물티슈, 미니 빗자루 세트, 베이킹소다 등을 구비해 놓았다. 그리고 책상마다 '다음 이용자를 위해 이용 후 좌석 정리를 부탁드립니다.'라는 문구를 붙여두었다. 먹던 과자 봉지나 컵을 그대로 두고 가는 몇몇 사람도 있는 반면, 대부분 본인이 이용한 자리를 꼼꼼히 정리하는 사람도 굉장히 많았다. 한 번은 본인의 방처럼 깨끗하게 자리를 청소하고 가는 학생이 있었다. 먼저 미니 빗자루를 가져와 꼼꼼하게 지우개 가루를 쓸어 담았다. 그리고는 물티슈로 닦고 물기를 다시 한번 휴지로 닦아주었다. 마무리로 스탠드를 끈 후 사용한 좌석을 둘러보며 의자까지 깔끔하게 넣고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보면 내 개인 공간도 아니고, 누군가 검사를 한다며 지켜보는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다음 사람을 배려하는 행동이 그 사람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내 모습도 되돌아보게 되었다. '어차피 아무도 안 보는데 뭐.'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자취방 쓰레기를 내다 버릴 때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적도 있었고, 배달 음식을 먹고 난 후 양념이 묻은 일회용 그릇을 헹구지 않은 채 그대로 버리기도 했다. 내 배려 없는 행동으로 '누군가는 더 고생을 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요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배려에 신경을 쓰고 있다. 나는 과연 무인으로 운영하는 곳에서 어땠는지 반성하게 되는 요즘이다.
어느 날은 퇴실 전 공부하면서 마신 음료수 컵을 버리는 여학생 둘을 보았다. 한 친구가 쓰레기통에 컵을 툭 버리면서 다른 친구에게 본인이 버려주겠다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 친구가 "컵은 냄새 안 나게 헹궈서 버려야지."라고 말하면서 앞서 친구가 버린 컵까지 다시 헹궈서 분리수거를 했다. 그러한 모습들이 무인 운영을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부분이라서 진심으로 고마웠다.
이러한 행동뿐 아니라 말에서도 좋은 고객은 배려가 묻어 나온다. 우리 스터디 카페는 관리자가 내부에 상주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문의사항이나 필요한 부분들을 고객과 카카오 채널로 소통하고 있다. 카카오 채널은 스터디카페를 카카오톡에 친구 추가한 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능이다. 하루에 수 십 명 정도의 이용자들과 대화를 한다. 입장 방법, 가격 문의, 비밀 번호 문의 등 일반적인 이용 문의부터 소음, 시설에 대한 컴플레인까지 정말 다양하다. 좋은 고객은 불편사항도 기분 나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인사성과 공손한 말투 가끔은 하트 이모티콘까지 뿅뿅 쏘며 정말 귀엽다. 단순한 텍스트인데도 '어디서든 사랑받는 사람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안녕하세요! 항상 청결하게 운영해 주셔서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겨울이 되고 나서 제 기준에 스터디 카페가 조금 건조한 듯합니다. 가습기를 구매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아니면 허락을 해주신다면 제 개인 가습기를 이용해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사장님. 앞 좌석 이용자 분의 소음으로 조금 신경이 쓰입니다. 스터디 존에서 노트북 사용 금지인 걸 모르는 듯한데, 마우스로 인한 딸각 소리가 신경 쓰여서 주의 문자 한 번 부탁드립니다. 항상 친절하고 빠르게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말을 밉게 하나 싶기도 하다. 이 사람 일상생활이 가능한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같은 상황에 대해 전혀 다르게 말하는 걸 보면 사람은 정말 다양하구나 놀라곤 한다. 말은 정말 '아' 다르고 '어' 다른 거구나.
"프린터 고장 났어요. 써야 하니까 고쳐놔 주세요."
"앞 좌석 사람 노트북 해요. 시끄럽다고 말하세요."
옛말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데, 미운 놈은 그냥 꿀밤을 한 대 탁 때리고 싶다. 고작 짧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것뿐인데, 좋았던 기분을 확 상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하루는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로 10시 마감을 하던 중 이런 카카오 채널을 받았다.
"마감 청소를 45분부터 하시나요? 빗자루 쓰는 소리부터 우당탕탕 정리하는 소리까지 너무 시끄럽네요. 열 시 마감이면 열 시부터 하는 게 맞지 않나요? 빨리 나가라고 눈치 주는 거 같네요."
10시가 마감이니 15분 전부터 사람이 없는 곳은 정리를 하고 있었다. 빨리 나가라고 눈치를 주려는 생각은 당연히 없었다. 게다가 우당탕 발생한 소음은 순간 택배를 놓쳐 바닥에 떨어뜨리면서 발생한 소리였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하고 온 터라 체력이 없었는지 순간 팔에 힘이 빠져서였다. 주변 이용자들에게는 죄송하다고 입모양으로 사과를 했는데 멀리서 소리만 듣고 오해를 한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마감 시간 전에 소음이 발생했기 때문에 고객 입장에서는 불만일 수 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피곤하고 지친 상태에서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10분 전 마감을 하든, 15분 전 마감을 하든 사장 마음이지 자기가 무슨 상관인지 싶었다. 어차피 다들 정리하고 나갈 시간 시간이라 어수선한데 10분 공부하면 얼마나 더 공부한다고 저러는지 속상하고 어이없었다. 몸이 좀 지쳤던 날이라 그런지 메시지를 받고 눈물까지 핑 돌았다.
하지만 크게 심호흡 후 잠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침착하게 상황을 설명하기로 했다. 나도 말투에 마음이 상했지만, 이용자 입장에서도 충분히 기분 나쁠 수 있으니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일단 실수로 물건을 떨어뜨려 소음이 발생했다고 사과하고 앞으로는 10시 이후에 도착해서 마감을 진행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돌아온 대답은 오늘따라 공부가 되지 않아서 괜히 순간 짜증을 부린 것 같다는 사과와 배려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답이었다. 나는 본인 기분이 나쁘면 함부로 화풀이해도 되는 사람이 아닌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사람을 상대한다는 건 참 쉽지 않다. '말'이라는 게 이렇더라. 기분을 둥둥 뜨게 할 수도, 저 바닥까지 끌어내릴 수도, 마구잡이로 흔들 수도 있구나. 괜스레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었다.
회사에서도, 일상에서도, 사업을 하면서도 '좋은 사람'만 만날 수는 없기에 누구를 만나든지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아직은 초보 사장이라 베스트셀러 책 제목처럼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기 위해 하루하루 더 성장하는 중이다.
모두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겠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는 어떤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