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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무 Apr 24. 2022

[Lv.20]스터디 카페에 어마무시한 진상이 등장했다.

 가끔 그런 느낌이 드는 날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싸한 기분 말이다. 하루의 시작부터 삐걱되던 날이었다. 고객사로 외근을 간 날이었는데 실수로 버스를 한 정류장 전에서 내려버렸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고객사까지 뛰어서 도착을 했다. 인사를 할 때부터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는 담당자 얼굴에서 고된 하루를 예상했다. "이것도 안된다, 저것도 안된다."라며 지적하던 담당자의 말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대체 정상적으로 되는 건 뭐냐는 짜증 섞인 말을 들으며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랬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시간이 지나 퇴근 시간이 되었다. 무언가 빠져버린 것 같은 정신을 부여잡고 아침에 뜀박질했던 길을 천천히 걸었다. 걷기라도 해야 이 기분을 발걸음에 털어버릴 수 있을 거 같았다.


 화풀이 대상이 된 것 같은 마음에 너무 속상해서 ‘역시 직장인은 적성에 안 맞는 건가?’ 생각을 하며 스터디 카페에 도착했다. 개업 기념으로 무료 개방을 하던 날이었는데 내부를 어슬렁거리는 사람이 있었다. 늘어진 운동복 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갸우뚱거리며 걷는 뒷모습이 무슨 불만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물건을 툭 집었다가 내려놓기도 하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닫아버리기도 했다. 아무튼, 좋지 않은 느낌과 함께 묘하게 시선이 가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휴게 공간에서 마주쳐서 필요한 게 있으신 건지 물었다. 그랬더니 음료수는 종류가 왜 이렇게 적은 지 툴툴댔고, 얼음 정수기 말고 제빙기 좀 사다 놓으라고 불만 섞인 목소리로 얘기했다. 안 그래도 하루 종일 욕만 먹었는데 욕하는 사람만 바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무료 개방 날 와서 왜 프로 불편러처럼 구나 싶었는데, 4 주권 구매와 함께 돌아와 엄청난 진상의 역사를 남겼다.


[이용 첫날]

 "독서대가 없네요. 지금 바로 써야 하는데."


 그날은 이용자가 많아서 독서대가 모두 대여 중인 상황이라고 설명해 드리자 당장 써야 한다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컴플레인은 처음이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일단 다른 이용자분들도 넉넉하게 사용했으면 해서 추가 구매하겠다고 답을 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기왕 구매하는 김에 크기를 다양하게 주문하라는 요청이었다. 뻔뻔함에 어이가 없을 무렵 또 연락이 왔다.


 "커피머신에는 라떼가 가능하다고 되어있는데 우유가 없네요."


 라떼가 가능한 커피머신을 구매했지만, 유제품이다 보니 혹시 관리가 잘되지 않으면 어떡하나 고민 중인 상황이었다. 중요한 시험을 준비하는 이용자도 많아서 괜히 배탈이라도 나면 서로 난감할 것 같았다. 잠시 결정 중인 부분으로 결정이 되면 다시 공지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우유는 상했는지 안 상했는지 본인이 먹고 알아서 판단할 테니 무작정 달라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만약 우유가 상하기라도 하면 가장 난리 할 것 같은 사람이 알아서하겠다니 정말 어이없었다. 앞으로 4주를 이용할 텐데 과연 아무 문제 없이 사용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이용 둘째 날]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가. 어김없이 연락이 왔다.


 "7번 좌석 하품 소리가 너무 거슬리는데 굳이 저렇게 해야 하는지 말 좀 해주세요. 계산기도 시끄럽습니다."


 조심스럽게 7번 고객님께 주의를 부탁드렸는데 당황스러운 상황이 생겼다. 7번 고객님은 조용히 공부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계산기도 이용한 적이 없어서 조금 억울하다는 답이었다. CCTV로 확인해 보니 실제로 계산기를 이용 중이지 않았다. '문의 준 분께서 좌석을 헷갈리신 거 같아요. 공부하시는데 괜히 감정 상하게 해 드린 거 같아 죄송합니다.'라는 진심 어린 사과를 보냈다. 다행히 7번 고객님은 이렇게 사과까지 하실 줄 몰랐는데 이용자의 기분을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해주었다. A 씨한테는 7번 고객이 아닌 거 같다고 설명해 주니 그럼 됐다는 답이 왔다. 본인이 좀 더 거슬리면 좌석을 확인해서 직접 이야기하겠다는 말을 하길래 싸움이 날까 봐 불안해졌다. 걱정이 되어서 좌석을 확인하면 우리가 말해줄 테니 꼭 연락 달라고 답을 남겼다. 이러다 조만간 큰 문제가 터지진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A 씨 때문에 매일같이 긴장 속에 사는 기분이었다.


[이용 셋째 날]

 A 씨는 스터디 카페 10번 좌석을 정말 좋아했다. 가장 구석에 있는 자리였는데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서 집착을 했다. 하지만 이용자가 그 자리를 독점하여 사용하는 고정석을 제공하고 있지는 않았다. 아무리 본인이 그 좌석이 좋아도 다른 사람이 이용하고 있으면 당연히 쫓아낼 수 없다. 그러던 중 어떤 이용자분께 연락을 받았다. 점심을 먹고 왔는데 이런 쪽지가 놓여 있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본인이 규정을 어기고 사용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


 쪽지 : 여기 자리 맡아놓고 늦게 들어올 거면 다른 사람 공부할 수 있게 미리 자리를 맡지 말거나 다른 자리로 가주세요.


 누군지 안 봐도 뻔했다. 쪽지 내용과 말투만 보더라도 CCTV를 돌려볼 필요도 없이 A 씨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당연히 먼저 좌석을 구매한 사람이 이용하는 거라 문제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고, 이런 쪽지를 받았다니  정말 기분이 상했을 것 같았다. A 씨에게 10번 이용자분은 정상 구매 후 사용 중이며 규정에 어긋나는 부분이 아닌 점을 안내했다. 돌아온 답변은 숨이 턱 막혔다. 논리는 무논리를 이기기 힘들다는 말이 A 씨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네. 그 쪽지 제가 남겼는데요. 자리 맡고 비울 거면 다른 사람 앉을 수 있는 게 맞지 않나요? 저도 아침 일찍 자리 맡고 앞으로 오후에나 와야겠네요. 왜 매일 그 자리 쓰는 사람도 있는데 피해를 줍니까? 저도 앞으로 그래야겠네요."


 본인 말대로 그 좌석을 쓰고 싶었으면 일찍 이용했으면 될 것을 왜 이용자한테 따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지금까지 행동에서 이해가 되는 부분은 하나도 없긴 했다. 사람들에게 계속 피해를 주기도 하고 우리도 피곤이 쌓일 대로 쌓이기 시작했다. 대체 왜 공부하러 와서 공부는 안 하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지 묻고 싶었다. 자리에 앉아서 공부하는 시간보다 딴지 거는 시간이 더 많아 보였다. 원래 스터디 카페에 이런 진상이 있는 건지, 앞으로도 이런 이용자가 계속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앞 날이 캄캄했다.


[이용 넷째 날]

 인테리어 업체에서 개업 후에도 부족한 곳을 조금씩 고쳐주고 있었는데 A 씨와 싸움이 날 뻔했다는 말을 해주셨다. 화장실 문을 수리하는 중 누가 다짜고짜 화장실 비밀번호가 너무 어려워서 외우기 힘들다고 짜증을 냈다는 것이다. 참고로 비밀번호는 4자리고 관리 앱만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다. 업체 분도 당황했지만 “사모님 죄송합니다. 제가 문 열어 드릴게요.” 사과하면서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나이가 가늠되지는 않지만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고 고객 응대를 많이 하시니 습관적으로 사모님이라는 호칭이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어딜 봐서 사모님이냐며 버럭버럭 화를 냈다. 죄송하다고 사모님이라는 호칭이 습관이 되었다고 사과해도 학생한테 무슨 말이냐며 씩씩거리면서 문을 쾅 닫고 가버려서 당황스러워하셨다. 괜히 우리한테 또 괜한 화풀이를 할까 알려주셨는데 정말 그럴 거 같아서 두려워졌다.


 A 씨 덕에 5일간 알림음 공포증이 생길 뻔했다. 결국 계속 CCTV로 지켜보거나 아예 스터디 카페에 가서 대기했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앉아서 대체 이게 무인 스터디 카페가 맞나 답답함만 쌓였다. A 씨 같은 사람이 3명 정도 있으면 절대 투잡으로 운영은 불가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주는 지난 거 같은 피로함인데 이용한 지 4일밖에 되지 않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결국 진상의 최고조를 찍는 사건이 생겼다.


 "환불 좀 요청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제가 기침이 심해서 이용이 힘드네요."


 당장 영구 정지 처리하고 쫓아내고 싶었는데 정말 반가운 연락이었다. 며칠 지켜봤는데 공부도 하지 않고 어슬렁거리더니 애초부터 공부할 생각이 없었구나 싶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바로 환불 처리를 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행동으로 봤을 때는 이 마지막 관문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걸 예상했다. 100퍼센트 환불 해달 라거나, 괜한 트집을 잡지 않을까 걱정되어 이용 기간별 환불 금액이 적혀있는 규정을 보여주었다. A 씨에게 확실히 확인했다는 답변을 받고 처리를 진행했다. 이 정도면 꽤 꼼꼼하게 방어했다고 생각했다.


 "돈이 넉넉한 게 아니라서 금액을 바로 받을 수 있을까요?”


 아뿔싸! 여기서 내가 놓친 부분이 있었다. 첫 환불 손님이다 보니 금액 처리가 언제,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신용카드 처리 일은 월말에 고정되어 있었다. 하필 시점이 월 초라서 정말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을 알려주자 바로 A 씨의 분노는 화룡점정을 찍었다.


 "매 월말에 비용 처리하는 것만 쏙 빼고 말한 건가요? 그 돈 당장 써야 하는데 바로 안 주면 학생은 어쩌라는 건가요? 학생 가지고 장난하는 건가요? 이런 부분만 쏙 빼고 공지를 안 하면 사기죠. 사기."


 이 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았다. 기분 나쁜 걸 넘어서서 이제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다시 살펴보니 결제 시 다음 달 말에 환불처리가 된다는 내용이 자세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환불 신청할 때만 보이고, 구매 시 안 보이잖아요. 숨겨 놓으면 사람을 두고 사기 치는 거죠."

 

 "환불 안내는 메인 화면과 결제창에 명확하게 공지되어 있고, 돈을 안 드리는 게 아니라 신용카드 처리 일자가 시스템상 정해져 있습니다."


 "제가 기침을 왜 하겠어요? 여기 스터디 카페 다니면서 공기가 안 좋아서 하는 거니까 환불해 주세요. 아, 아니면 기침해도 그냥 쓰라는 말씀이시죠? 저 그냥 쓸게요. 기침하면서 계속 나오겠습니다. 기침 계속할 테니까 뭐라 하지 마시길."


 정신이 이상한 사람을 내가 이길 수 있나 싶었다. 회사 다니면서 정말 많은 진상을 만났지만 이건 비교 불가의 수준이었다. 코로나 시국을 악용해서 기침해도 이용하겠다고 하니 정말 영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고민하고 있던 사이에 환불받았으니 필요 없다는 연락이 왔다. 아예 스터디 카페 앱 개발사에 엄청나게 항의해서 돈을 받아낸 것이다. 이 사람은 또 어딘가에 가서 같은 행동을 반복할 거로 생각하니 분노와 패배감에 휩싸였다. 순화해서 이 사람, A 씨라고 표현했지만 정말 솔직한 심정으로는 미친 X이라고 쓰고 싶을 정도의 강적이었다. 무논리가 논리를 이기는 미친 X.


 그러던 어느 날 동네에 있는 다른 스터디 카페 홈페이지를 보고 있었는데 A 씨 말투로 댓글이 달려있었다. 홈페이지에 제대로 설명이 없다거나 시설 사진을 이렇게 찍어 놓으면 이용자가 어떻게 알겠냐는 짜증 섞인 댓글이었다. 혹시나 해서 아이디를 통해 블로그를 들어가 보았는데 A 씨 사진이 떡하니 있었다. 게다가 올린 게시글들을 보니 모든 글이 세상에 대한 불만이었다. 자신을 면접에서 떨어뜨린 회사에 대한 욕, 뉴스 기사에 대한 욕, 성소수자에 대한 욕까지 세상의 모든 것에 불평불만인 사람이었다. 게다가 본인은 나이 어린 학생이라더니 30대 후반이 맞았다. 게다가 소름 끼치게 이웃 목록에 내 개인 블로그가 있어서 바로 차단을 했다. 이렇게 첫 진상 손님 사건이 끝나고 뒤이어 다양한 유형의 고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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