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 자고 일어난 기분 좋은 토요일 아침이었다. 평일이었다면 "나가서 돈 벌어와."라고 외치는 듯한 알람 소리에 눈을 떴을 텐데,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에 자연스럽게 잠에서 깼다. 어느 주말과 다름없이 이불을 돌돌 말고 머리맡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이상하게 블로그 알람이 잔뜩 쌓여있었다. 무슨 일인지 싶어서 어플에 들어가니 평소보다 방문자 수가 10배는 넘게 찍혀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인플루언서가 된 건가?' 하지만 그럴리는 없었다. 순간 싸한 기분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 가장 최근에 달린 댓글을 확인했다. 밑도 끝도 없는 '개 x끼'라는 댓글이 보였다. 일 방문자 500명 정도 되는 일상 블로그인데 왜 아침부터 쌍욕이 달려있지 의아했다. 다른 댓글들도 살펴보니 가관이었다.
ㄴ그러고 사니까 좋냐?
ㄴ여기가 할머니 무릎 꿇린 사람 좋다고 찬양하는 곳?
ㄴ블로그 수준 하고는.
아무런 맥락 없이 이런 글이 달려있으니 전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도 방문자수는 몇 배씩 폭주했다. 통계 탭에서 조회수가 가장 높은 글을 봤더니 이대 미용실에서 염색을 했던 글이었다. 살짝 감이 오기 시작했다. 여기 미용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미용실 이름으로 검색을 했더니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전단지를 돌리시는 할머니의 무릎을 꿇게 한 갑질 미용사라는 논란이었다. 어쩐지 댓글에 할머니 이야기가 많더니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아르바이트로 홍보 전단지를 돌리시는 할머니가 미용실 앞에 전단지를 놓고 가자 화가 난 미용사가 업체에 강하게 컴플레인을 걸었다. 광고 업체는 전화를 받자마자 사과를 했지만,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전단지를 놓고 간 할머니를 직접 보내 사과를 하라고 했다. 게다가 정말 반성한다면 무릎 꿇고 사과하라는 비인간적인 요구를 한 것이다. 할머니는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하며 무릎까지 꿇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더니 미용사는 바로 경찰을 불렀다. 놀라신 할머니께서는 경찰을 보자마자 겁에 질려 무릎을 꿇으셨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인간으로서 기본 도리도 없는 모습에 충분히 분노가 차올랐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건 무릎 꿇은 할머니의 모습이 담긴 CCTV 화면을 광고 업체에 보내 "사과받았습니다. 수고하세요."라고 한 것이었다.
실제 이야기인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갑질 사건이었다.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왔으면 어르신께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고작 할머니의 손자뻘 밖에 되지 않는 젊은 사장이 말이다. 이 외에도 손님에게 욕설을 했다거나 전화 테러를 했다는 다른 제보들도 등장했다. 관련 기사마다 미용사에 대한 제보와 분노의 댓글이 넘쳐났다. 그 미용실을 이용한 블로그 후기에도 욕설이 계속 늘어갔다. 검색을 해보니 나뿐만 아니라 다른 블로거들도 마찬가지로 댓글 테러를 당하고 있었다.
일단 체험단 사이트를 통해 협찬을 받아 이용한 곳이라 글을 마음대로 삭제할 수는 없었다. 보통 협찬을 받게 되면 몇 개월 이상 포스팅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빠르게 업체 측에 상황을 이야기한 후에 글을 삭제할 생각이었다. 답이 올 때까지 이대 미용실 포스팅은 댓글을 달 수 없도록 설정했다. 그랬더니 '조회수는 얻고 싶으니까 댓글만 막는 개념 없는 X'이라거나, '이런 미용실 이용하는 수준이 딱 보이네.'라고 하는 선 넘는 댓글과 쪽지 폭탄이 이어졌다. 내가 이용할 때도 미용사의 비도덕적인 점이 있었으면 이용하지 않았을 거고 지금 논란은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데도 비난을 받았다. 지금까진 직장인이나 스터디 카페 사장으로서 기분 나쁜 일을 꾹 참는 경우는 많았지만, 비겁하게 닉네임 뒤에 숨어 키보드로만 욕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참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기분 나쁜 댓글을 삭제만 하다가 비장하게 노트북 앞에 앉아 소매를 걷어붙였다.
ㄴ 얼굴 보면 한 마디도 못 할 거면서 익명이라고 숨어서 공격적인 말들 내뱉지 마세요. 댓글의 욕설과 IP 정보로 신고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디 검색해 보니 개인 정보도 많이 나오네요. 다른 블로그도 돌아다니면서 욕설 많이 적었던데, 설마 정의로운 비평가라고 생각하나요? 비난과 비판을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인 것 같네요.
잠시 후 확인해 보니 댓글은 삭제되어 있었다. 이렇게 조금만 좋지 않은 댓글이 달려도 심장이 쿵쾅거리는데,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을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았다. 반짝반짝 별 같은 연예인들이 악성 댓글로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앓고 심지어 스스로 목숨까지 끊을 때면 세상이 맞게 돌아가는 건가 싶다. 손가락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유명인뿐만 아니라 자영업자들도 댓글 피해를 입고 있다. 근거 없는 글 하나로 생계를 잃기도 하고, 악플러들에게 리뷰 테러를 당하기도 한다. 수많은 피해 사례들만 보더라도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
요즘에는 대안이랍시고 아예 댓글을 쓰지 못하도록 하기도 하는데 이는 너무 1차원적인 대응이다. 댓글 자체가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선플은 누군가에게 관심과 응원이 될 수도 있다. 혹은 사람들의 실제 후기들을 통해 유용한 정보를 공유할 수도 있다. 다만 댓글의 부작용으로 소중한 생명을 잃을 수도 있고 자영업자의 생계를 끊어버릴 수도 있다면 부작용을 개선할 새로운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눈 가리고 아웅처럼 댓글창만 막는 건 현명한 개선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면 은근히 댓글로 인해 기분 나쁠 일이 몇 번씩 생기곤 한다. 이런 작은 블로그에도 악플이 달릴 때면 어이가 없어서 웃기기까지 한다. 어떻게 보면 악플러들은 참 부지런한 것 같기도 하다. 한 번은 고장 난 세탁기를 고치는 방법에 대해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0E 에러가 뜨면서 배수가 되지 않고 몇 시간째 세탁기가 멈춰버린 상황이었다. 당장 써야 할 수건과 옷들이 모두 세탁기 속에 들어있었다. 물이 빠지지 않으니 세탁기 문도 열 수 없어서 인터넷으로 다급하게 검색을 했다. 필터에 이물질이 많으면 그럴 수 있다고 해서 필터 마개를 열어 뭉쳐진 머리카락을 전부 제거해 주었다. 세탁기는 고쳤지만 설명을 제대로 보지 않고 마개를 열어버려서 세탁기 안에 있던 물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대참사를 겪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상황일 때 도움을 주고 싶어서 '세탁기 배수가 되지 않을 때 조치 방법'을 포스팅했다. 생각보다 이런 일을 겪은 사람들이 많아서 정말 고맙다는 댓글을 남겨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블로그 댓글 알람이 울렸는데 기분이 확 상하는 말투와 내용이었다.
ㄴ 괜히 이 글 보고 해서 물 다샘. 역시 블로그는 믿고 걸러야지. 모두들 세탁기 고장 나면 전문가 부르시길.
이 외에도 내가 맛있게 먹고 온 식당 글에 본인은 별로였다 거나, 여행지가 별로였다는 댓글들이 달리기도 했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를 수 있는데 굳이 왜 이런 댓글을 적나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들도 꽤 있었다. 그럴 때는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의 차이를 꼭 말해주고 싶다. 모두가 자신의 말에 떳떳하게 책임을 질 수 있는 선에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직접 드러낼 때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두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