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참 많이 하게 되었다. 직장에서도, 운영하는 스터디 카페에서도 죄송해야 할 일이 참 많았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싶다가도 나의 태도가 수입과 직결되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 미운 놈한테 싫은 티 다 내고 살 수 없었다. 어떤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최대한 고객에게 맞춰 주어야 했고, 어떨 땐 죽어도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 싫었지만 뱉어내야 했다.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이상 어쩔 수 없는 건가 속상해졌다. 문득 잊고 있던 예전 생각이 났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3년 넘게 모은 아르바이트비로 유럽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취업 준비생이라 돈도 많이 없다 보니 게스트 하우스를 주로 이용했었다. 보통 2층 침대가 여러 개 놓여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했는데, 새로운 여행자들도 만날 수 있고 색다른 추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리의 게스트하우스에서 한 언니를 만났다. 하얗고 여리여리 해 보이는 첫인상의 언니였다. 서로 자기소개를 주고받았는데 언니는 콜센터에서 5년 넘게 근무했다고 말해주었다. 어쩐지 말투가 굉장히 조곤조곤하고 상냥해서 고객 센터에 전화했을 때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목소리였다. 매일같이 좋지 않은 소리를 듣고 죄송해야만 하는 본인의 삶이 너무 안쓰러워서 직장을 때려치우고 파리에 왔다고 했다. 5년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상처투성이가 되었다고 말하는 언니의 말투에서 지칠 대로 지쳤다는 것이 느껴졌다. 마른 낙엽처럼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모습에 언니의 행복한 퇴사 여행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어졌다.
어느 날은 언니가 게스트하우스 화장실에서 샤워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화장실 앞에서 남자의 비명이 들렸다. 규모가 작았던 게스트하우스는 남녀공용 화장실 하나뿐이었다. 사장님이 비어있는 줄 알고 청소를 하기 위해 문을 열었을 때, 하필 고장이 난 잠금장치 때문에 바로 열려버린 것이었다. 그때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른 건 남자 사장님이었고 화장실 안에서 너무 놀란 언니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처음 뱉은 말은 “죄송합니다.”였다. 사과하는 삶에 지쳐 먼 나라 파리로 떠나온 언니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죄송하다는 말을 먼저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경황이 없었기도 했고 자신 때문에 놀랐을 사장님께 죄송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고 했다.
그때는 그냥 언니가 정말 착한 사람이구나라고만 생각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니 모든 게 죄송해야만 했던 언니의 삶이 굉장히 마음 아픈 장면으로 재해석되었다. 그리고 나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런 어른의 삶을 살고 있다. 하루는 스터디 카페 앞에 떨어진 나뭇잎을 빗자루로 쓱쓱 치우고 있었다. 어디선가 화가 잔뜩 난 아주머니가 와서 반말로 왜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냐며 윽박질렀다. 소리를 지르는 모습에 놀라고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정체 모를 아주머니는 여기 개업하고 마음에 드는 게 없다는 둥 자기를 불편하게 하지 말라는 둥 잔뜩 짜증을 내고 가버렸다. 놀란 마음에 심장이 쿵쿵거렸다. 일단 침착하게 누구신데 그러는 건지 물었어야 했고,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는 것이 아닌 떨어진 낙엽을 옆으로 치우고 있다고 말했어야 했다. 내 행동이 잘못되었다면 낙엽도 쓰레기로 분류해야 하는지 몰랐다고 앞으로 쓰레기통에 담아 버리겠다고 하면 되는 거였다. 그리고 적어도 왜 나한테 반말로 화를 내냐고 해야 했다. 화가 난 사람 앞에서 잔뜩 얼어버린 채 죄송하단 말만 하고 바보처럼 서 있었다. 빗자루를 들고 있는 손이 파르르 떨렸다.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한 건가. 순간 그때 샤워실에서 죄송하다는 말만 하던 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항상 누군가에게 고개 숙이고 사과해야 할 처지라 속상했다. 치킨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매일같이 울고 들어 오던 동생이 스쳐 지나갔고, 민원인에게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내 동생, 내 친구 그리고 모두의 모습이라는 현실이 슬펐다.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는 꿈같은 세상이 오면 좋을 텐데 말이다.
여러 캐릭터로 살면서 느낀 건 참 다양한 사람들이 세상에 살아간다는 거였다. 일상에서도, 직장에서도, 사업을 하면서도 늘 이상한 사람이 있었다. 어느 무리에나 꼭 별로인 사람이 존재한다는 ‘또라이 보존 법칙’은 과학인가 싶었다. 물론 주변에는 소중하고 좋은 사람도 많았지만, 하루의 기분은 결국 나쁜 사람에 의해 한없이 좌지우지되곤 했다. 여기서 치이고 저기서 치여서 상처투성이가 된 날, 너무 지쳐서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사람들이 나한테 너무 심하게 말을 하는 거 같아."
엄마는 내가 사람들에게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나쁜 이야기는 흘려보내라고 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면서 무시하라고 위로해 주었다. 우리 큰 딸은 씩씩하니까 당차게 이겨내라고 했다. 그런데 엄마 말처럼 흘려보내는 게 쉽지 않았다. 지금 나의 상태는 엄마가 기대하는 언제나 강한 첫 째가 아니었다. 그 상황을 떨쳐버리려 애썼지만, 기분 나쁜 감정은 내 발목을 잡고 땅 속으로 끌어내렸다. 자꾸만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냥 더 열심히 살고 싶었을 뿐인데, 더 행복한 미래를 꿈꿨을 뿐인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모순적인 상황이었다. 내 잘못도 아닌 일로 고객사에서 욕을 먹는 것도 그만하고 싶었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사람의 연락도 그만 받고 싶었다. 나는 정말 그만 죄송하고 싶었다.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 조금이라도 무례한 사람을 만나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에도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게 되었다. 그 가시는 밖을 향하지 않고 나를 향해있었다. 무례한 사람에게 더 이상 웃으며 대처하고 싶지 않았다. 몸이 지쳐버리니 블로그에 즐겁게 글을 쓰지도 못했다. 그냥 휴대전화를 꺼놓은 채 두꺼운 이불속에 숨어버리고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