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기분은 온몸으로 퍼졌다. 그 기운은 두꺼운 겨울 이불을 발 끝까지 돌돌만 채 밖으로 나올 수 없도록 만들었다. 모든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잔뜩 웅크려있었다. 배터리가 1% 남은 휴대전화의 절전 모드처럼 위태롭고 어두웠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여러 일을 경험한 적이 없으니 해소하는 방법을 몰랐다.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떨쳐내지 못하고 끌어안고만 있는 꼴이었다. 짓누른다는 표현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그런 내 옆에서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도록 응원해 준 사람이 있었다. 함께 사업을 시작한 남자 친구였다.
"너가 없었으면, 우리 사업 여기까지 절대 못 왔을 거야.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모든 일들이 살면서 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었잖아. 100세 시대에 이제 겨우 스물여덟인데 정말 멋있게 살고 있는 거야.”
동업자인 남자 친구는 나 없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니 얼른 기운 차리라며 농담 반 진담 반 장난을 쳤다. 함께 시작했으니 끝까지 함께하자면서 힘들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삼겹살도 마음껏 사주겠다고 했다. 삼겹살에 크게 반응을 하지 않자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다 하게 해 준다고 했다.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듣고 속상한 감정들이 사르르 녹았다. 물론 힘이 들 때마다 이것저것 사달라고 해야지 라는 생각에 더 힘이 났다. 그 당시에 친구들의 위로도 잊지 못할 고마움이었다. 낮이든 밤이든 내 이야기에 화내 주고 공감해 주었다. 주변에 이렇게나 나를 위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제야 새로운 삶이 시작되려 하는데 이렇게 우울함에만 잠겨 있을 수는 없었다. 여러 캐릭터로 살면서 무채색이었던 지루한 일상이 알록달록 생동감 있게 물들어갔고, 또 다른 새로운 색을 칠하고 싶어졌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두꺼운 겨울 이불에서 나와야 할 시간이었다. 힘들 때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기 일처럼 함께 화내 주고, 응원해 주는 소중한 사람들이 나를 밖으로 끄집어냈다. 두꺼운 이불은 깨끗하게 빨아서 옷장 속에 고이 넣어두고 뽀송뽀송한 봄 이불과 함께 새로운 계절을 맞이했다. 하늘하늘한 봄바람이 불었고 꽃 향기가 났다.
본격적으로 우울함을 떨쳐버리기 위한 나만의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먼저 일기장에 하루의 일을 끄적끄적 적 적어보았다. 하루 중 웃는 가면을 벗고 가장 솔직해지는 시간이었다. 평소에 욕을 잘하지 않지만 심한 욕도 적어보고 남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부분들까지 적어 내렸다. 어느 날은 두 페이지가 훌쩍 넘어가는 날도 있었는데, 팔목이 떨어져 나갈 때쯤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일기장이 너덜거릴 정도로 진상에 대한 욕이 가득한 날도 많았다. 회사에서 겪은 일, 스터디 카페에서 만난 진상, 일상 속에서 짜증 났던 일들을 잔뜩 비워냈다. 하얀 일기장은 화를 꾹꾹 눌러 담은 검은색 글씨로 덮여갔다. 물론 기분 나쁜 이야기만 적는 데스노트는 아니었다. 행복했던 일들도 일기장에 적으면서 좋은 기분으로 함께 하루를 마무리했다.
휴대폰에는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을 가득 남겼다.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좋은 곳을 갈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사진으로 남겼는데, 힘든 순간에 행복한 순간의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되었다. 휴대폰 메모장에 내가 좋아하는 순간을 글로 남기는 습관도 생겼다. 하루는 휴가를 내고 본가인 여수에 내려온 날이었다. 평일 낮에 할 일도 없고 해서 책 한 권을 들고 언덕 끝에 있는 작은 카페에 갔다. 하늘과 가까워서인지 큰 창문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고 주문한 바닐라 라테는 어떤 날보다 달콤했다. 메모장을 열어 지금 느끼는 행복한 순간을 바로 적어보았다.
‘너무 크지 않은 아늑한 크기의 카페, 큰 창문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곳, 진하지 않은 바닐라 라테의 달콤함, 창 밖으로 살랑이는 초록 초록한 나무, 대중가요보다는 가사 모를 팝송의 멜로디, 파란 하늘에는 하얗고 몽글몽글한 구름이 느리게 흘러가는 날, 잔잔하게 스며드는 소설.’
메모장에 적고 나니 내가 느끼는 행복한 순간은 이런 거구나 싶었다. 나는 이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 뒤로는 행복한 순간을 바로바로 짤막한 메모로 남기곤 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일기를 쓸 때 저장해 둔 메모를 한 번 더 보곤 하는데, 그 순간의 기분이 더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도 좋았다. 은은한 노란 조명만 켜 둔 채 책상에 앉아 행복을 복습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힘든 순간은 행복으로 덮는 나만의 방법이 생겼다.
문득 아주 어린 시절 미술 시간이 떠올랐다.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흰 스케치북 가득 노랑, 주황, 파랑, 빨강의 다양한 색의 크레파스를 칠했다. 내 작품에 만족하고 있을 때쯤 검은색 크레파스로 모든 색을 덮으라고 했다. 알록달록한 색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까만색만 남은 스케치북을 보며 엉엉 울었다. 그때 선생님이 이쑤시개를 주며 원하는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셨다. 이쑤시개의 움직임에 따라 다시 색들이 나타났다. 어두컴컴한 배경에서 반짝반짝한 그림이 완성되었다. 어둠이 찾아올 땐 그렇게 이쑤시개를 들고 새로 그림을 그리면 되는 거였다.
그렇게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연고도 발라주고 밴드도 붙여주니 흉터로 남지는 않았다. 아예 상처를 받지 않을 수는 없지만, 상처를 희미하게 만들어갈 수는 있었다. 새살이 솔솔 돋을 때까지 잘 살펴주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