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둘이 꼭 별개로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더라.
셋째를 임신하고 처음 겪어 보는 일들이 많았다.
양 편에 두 딸내미 손을 잡고 뒤뚱뒤뚱 걷자니
엄마가 고생하네 싶은 동정 어린 시선
또는 셋째 성별을 궁금해하는 오지라퍼도 만나고
무엇보다 토덧을 해봤다.
그것도 딱 한 번이긴 했지만...
애초에 임신이 잘 안될까 걱정은 했지만
임신하고 컨디션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임신이 체질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둘째와 셋째가 연년생
월수로는 17개월 차이나다 보니
몸도 힘들고 스트레스도 매우 컸다.
세 아이 모두 같은 산부인과 원장님께서 받아주셨는데
셋째 임신 때는 배 초음파 촬영 도중에
누운 채로 엉엉 울어버렸다.
1년 새 산부인과 출입이 잦다 보니
임신 당사자가 아닌 남편에게 휴가 쓰라고 하는 게
눈치 아닌 눈치가 보여 혼자 다녀오마 얘기하고
괜찮다 괜찮다 스스로 추스르며
산부인과에 혼자 씩씩하게 들어갔는데
"힘들겠어요."
원장님의 그 한 마디에
꼭꼭 단속해 두었던 여러 감정들이
수문 열린 댐에서 물 쏟아지듯 와르르 쏟아져 내린 것.
"원장님, 저 아무래도 우울증 같아요.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요.
아시는 전문의 계시면 소개 좀 부탁드려요."
눈물을 겨우 다 삼켜내고
해결책 마련을 위해 이성적인 모드로 돌아와
제일 먼저 건넨 말이었다.
안타깝게도 연계해드리던 분이 클리닉을 정리하셔서
소개해주기가 어렵겠다는 말과 함께
너무 무리 말고 몸 잘 추스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후로는 정기 검진을 거르는 한이 있더라도
남편이랑 꼭 같이 산부인과에 갔고
힘들다는 말도 솔직하게 건네기도 했다.
가장 행운이며 은혜였던 건 나의 첫 코치님을 만났던 일.
예정되어 있던 저자 강연이 취소되어
강연 주최자였던 코치님께 아쉽다 건넨 말에,
"그냥 만나긴 소중한 시간이니 코칭 한 번 받아보실래요?"
그렇게 나의 산전 우울증이 씻겨 나간 4회기의 코칭이 시작되었다.
코칭의 매력에 사로잡혀 막내를 건강히 만나고
몸 풀자마자 코칭 교육을 받았다.
가슴에 모유가 차서 몸살이 올 지경이었지만
사흘을 꽉꽉 채운 교육과 실습에
너무도 신이 나고 행복했다.
내가 받은 은혜의 시간들을
나 또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을 것에 기대되었고
무엇보다 나의 아이들과
더 나은 관계로 나가는데 귀하게 사용될
코칭의 매력에 푹 담가졌다.
매일 개인 코칭(이라는 미명하의 실습이었지만)으로 목이 잠기고
나의 코치님이 오픈한 그룹 코칭 과정 참여 중에
나 또한 그룹 코칭을 오픈하는 패기도 보였다.
코칭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는 의심에
보기 좋게 한 방 먹인 결론을 냈고
첫 유료 고객과의 계약으로 번 돈을 모두 남편에게 선물했다.
그 간 공부하고 실습하느라 주말을 오롯이 양보해준 데 대한 감사의 마음과
거봐, 되지? 하는 자랑하는 마음을 담아.
세 아이를 맡길 사람이 없어 퇴사를 할 수밖에 없던 상황에
시어머니 카드가 갑자기 주어져 복직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코칭으로 월급 받기 프로젝트는 잠시 멈춰졌다.
올해 들어서는 연말 퇴사를 목표로
그간의 커리어를 정리하고
무엇보다 최선을 다해 마지막 한 해를 보내자고 다짐했다.
스스로를 압박할 정도의 부담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했다.
업무 외 시간에는 최선을 다해
사이드 프로젝트를 키워 나갔다.
코치로서의 전문성도 키워나가 프로 코치로 승급됐고
나 조차도 진행형이긴 했지만
넥스트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도 강연으로 전달드렸다.
온라인 인연들과 남편에게는
퇴사하고 1년은 놀 거라고 마통 쓸 거라고
큰 소리 떵떵 쳤지만
사실 나 자신도 코웃음을 쳤다. 내가? 과연?
그렇게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가고,
주위에 열심히 퇴사 이후의 삶을 준비한 분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아직 준비가 더 필요하겠다는 현타가 왔다.
사이드 프로젝트가 돈이 되는지에 대한 테스트는 마쳤다.
사이드 프로젝트와 업이 만날 수 있는 지점으로 이동한만큼
이제는 후회 없을 만큼 최선을 다해
매 순간 임하고 열매를 맛보는 게 이번 스텝의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