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깔아지고 가슴이 답답하다. 오늘은 설마 온전한 휴일이 주어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 기대가 무너지니 더 마음이 무겁다.
12일째 연속 출근이다. 오프인 날도 행사가 계속 잡혀서다. 물론 행사 다음날 오후 좀 일찍 퇴근하게 해주는 조치가 있긴 했다. 이것도 감사라면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온전히 쉬는 날 없이 연속으로 계속 출근을 하니 피로감이 쌓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피로감이 쌓일 대로 쌓였는지 몸과 마음이 천근만근 무겁다. 가슴이 턱 막힌 것 같다. 집중이 잘 안 된다. 간신히 마음을 다잡으면서 꾸역꾸역 업무를 했다.
그래도, 엊그제 오프인 날 또 출근을 했다고 오후 퇴근하라는 전달을 받았다. 사실 온전히 하루를 쉬게 해줘야 쉬는 게 쉬는 건데. 아쉽지만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불평해봤자 달라지는 것 없고. 그냥 오후라도 일찍 들어가는 거에 대해 감사하는 수밖에.
회사를 나오면서 어떻게 이 오후, 쉼의 시간을 잘 보낼까 고민했다. 피로와 마음의 탈진 증상이 이렇게 올 때 나는 그동안 어떤 조치들을 취했는지 내 기억의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본다. 그리고 내린 결론, 일단 좋은 걸 먹고, 낮잠을 좀 자고, 운동을 하자.
좋은 음식 먹기
몸의 컨디션이 마음의 컨디션과 직결된다고 나는 믿는다. 몸 상태가 좋으려면 일단 좋은 음식을 먹어둬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어떤 걸 먹느냐가 몸 컨디션에 상당한 영향을 끼침을 느낀다. 그래서 점심식사로 결정한 건 바로 본죽의 소고기 야채죽.
소고기 야채죽을 한 숟갈 한 숟갈 천천히 먹다 보면 분주한 마음의 템포도 서서히 가라앉는다. 장조림과 김치를 중간중간 곁들여 맛을 음미하며 식사한 뒤 동치미 국물까지 싹 마시면 개운하다. 고기의 단백질과 야채의 섬유질 및 비타민, 그리고 죽의 탄수화물까지 영양분을 잘 섭취한 느낌이 든다.
낮잠 자기
식사를 하고 낮잠을 잘 곳을 찾아본다. 카페나 도서관 책상에서 엎드려 잘까, 아니면 아예 사우나를 갈까. 오늘따라 구름이 끼고 날이 그리 덥지 않아 근처 천변 공원에 차를 세워 놓고 자기로 한다. 이런 때 고마운 차량용 목베개 쿠션. 의자를 뒤로 젖히고, 목과 머리를 쿠션에 대고 편안하게 몸을 이완시키니 금세 잠이 온다.
30분 알람에 깼다가 10분을 뒤척인 후 일어났다. 오늘 오전만 해도 몸이 한없이 깔아지는 것 같더니 40분 낮잠 잤다고 몸과 머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맨발 걷기
이제 시간이 없다. 아내와 약속한 시간까지 들어가기 전에, 몸을 움직여 운동을 좀 해야 한다. 일부러 운동을 하려고 아까 회사에서 나올 때부터 맨발로 황톳길을 걸을 수 있는 산 근처로 왔다. 그런데 이런,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지는 것 같다. 그냥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카페에서 커피나 한 잔 마시다 들어갈까 잠시 고민해 본다. 하지만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이렇게 황톳길을 걷겠나 싶어 3단 우산을 챙겨 들고 밖을 나섰다.
평일인데도, 또 금방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에도 사람들이 많다. 맨발 걷기의 효과를 아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얼마 전 가수 김윤아의 세바시를 봤는데 그 밑에 이런 댓글이 있었다.
"열정 있게 살되 닳지 마시길요. 일상에 자연을 추가해 보세요. 일광욕 + 맨발 걷기"
일상에 자연을 추가해 보라니. 참으로 맞는 말이다. 이 사람 역시 맨발 걷기의 효능을 아는 자임에 틀림없도다.
맨발 걷기가 발바닥과 연결되어 있는 여러 신경들에 좋은 자극을 주기에 운동 효과가 탁월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맨발로 걸을 때 자연인이 된 것 같아서 좋다. 신발 벗고, 양말 벗고 땅과 짚으로 엮어진 산책길을 발의 촉감으로 그대로 느낄 뿐인데 한없이 자유로워짐을 느낀다.
맨발로 걸을 땐 되도록 핸드폰도 차에 두고 내린다. 맨발로 걷는 시간만큼은 어떤 연결과도 차단되고, 그저 자연과 나 자신을 오롯이 느끼고 싶어서다.
황톳길의 부드럽고 몰랑한 흙의 감촉이 발바닥을 자극한다. 오르막 길을 오르니 심장 박동이 느껴지고 숨이 적당히 차오른다. 호흡을 하며 숨소리에 주목하며 다시금 확인하는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 책 <꾸뻬씨의 행복 여행>에서도 이런 말이 있었지. '행복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1시간여의 맨발 걷기로 '자연'과 '자유로움'과 '살아있다는 느낌'을 몸과 마음에 흡수하고 내려온다.
몸이 에너지를 얻으면
집으로 가는 길, 완벽하게 피로가 풀린 건 아니지만 그래도 몸과 마음의 회복에 있어 나에게는 나름 괜찮은 조합임을 확인하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이 조합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테다.
때로 부침이 오고 컨디션 저하가 찾아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만 이걸 어떻게 잘 회복하느냐가 문제일 뿐. 일단은 몸의 컨디션이 중요하다. 잘 먹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운동으로 몸에 활력을 주고. 몸이 에너지를 얻으면, 마음도 에너지를 얻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또 하나의 터널과 수렁을 지나가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