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결혼 11년 차 부부가 되었다. 8월 15일 광복절, 이 뜨거운 여름날에 결혼을 했다니. 아내가 얘기한다. "세상 민폐였네..." 아스라한 결혼식의 기억들이 잠시 머릿속을 스쳐간다.
결혼기념일이니 그래도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고 아내에게 제안했다. 딸아이와의 마카오 여행에 생각보다 큰 지출을 해서 돈이 좀 없긴 하지만 결혼기념일이다. 이날은 써야 하는 날이다. 아무리 아내가 기념일에 무던한 편이어도, 그래도 '이 사람이 뭔가 신경 쓰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다.
아내가 고른 나폴리식 화덕 피자 집에서 점심을 같이 했다. 여유롭게 소소한 대화들을 하며 식사하고 싶었으나 작년에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받은 특별한 선물 때문에 그럴 순 없었다. 이 선물은 아기 의자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칭얼댔다. 내가 아이를 안고 어르면 아내가 식사를 하고, 그렇게 교대로 아이를 케어하며 점심을 먹었다.
정신없긴 했지만 왠지 모를 여유가 있었다. 둘째라 그런가. 서로 대화는 거의 못하고 아이를 보면서 피자를 입에 넣고 있는데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이런 상황이 약간 웃겼던 것일까. 희미한 웃음이 눈가에 배어 있었다.
다시 한번 손가락으로 세어본다. 결혼을 2013년에 했고 4,5,6 ,,, 맞네, 정말 11년 됐네. 점점 내 나이가 헷갈리듯, 결혼한 지 얼마나 됐는지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또한 둘이 같이 살아온 세월의 연수가 주는 모종의 압박감을 느낀다. 결혼 11년 차 나와 아내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져 있나. 나는 어떤 점이 변했나. 나는 좀 더 성숙해졌나. 이런 것들.
결혼 전,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앞으로 자기를 평생 더 알아갈 거라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연구하는 마음으로. 그래서 자기에 관한 박사학위를 따는 것처럼 계속 알아갈 거라고. 아무래도 당시 호르몬 분비 이상으로 이런 말을 했을 거다.
아내는 이 말을 마음에 고이 간직하고 있었던지, 몇 년 전 어느 날 "평생 나에 대해 공부하고 알아간다더니, 개뿔." 이라 말했다. 반성한다. 그동안 당신에게 조금 무심했다. 퇴근하고 오면 어떻게든 직장에서의 일들은 잊고 싶었다. 그래서 나의 하루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당신에게도 묻지 않았고, 당신도 고생했다고, 얼마나 힘들었냐고 얘기해주지 못했다.
결혼 11년 차이지만 당신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빈약함을 고백한다. 그래도 한 번 써보자.
- 삼겹살을 좋아한다.
- 커피를 좋아한다.
- 얘기 잘 들어주는 걸 좋아한다.
- 저녁 차렸는데 냉장고에서 반찬 추가로 꺼내는 거 많이 싫어한다.
- 정치 문제에 관심이 있다.
- 요즘 아침 과일 다이어트를 한다.
또 뭐가 있을까. 당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관심 있는 것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결혼 연차가 늘어갈수록 그에 비례해 당신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조금이라도 더 깊어졌다고 말할 수가 없기에, 미안하고 부끄럽다.
그래도, 아주 조금 나아진 게 있다면, 당신이 화를 낼 때, '그럴만한 무언가가 있겠지'하고 좀 더 기다려 주고, 일단 받아주려고 한다는 것. 예전보다는 이게 좀 더 나아지지 않았나 싶다.
우리 아이들의 몸이 해마다 자라듯, 당신에 대한 나의 이해의 폭도 넓어졌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생각이 점점 깊어지듯 우리의 우정도 깊고 끈끈해졌으면 좋겠다. 짧은 인생, 신비한 인연으로 만나 부부가 되었으니 희로애락 속, 서로를 더 보듬어 줄 수 있기를.
축구든, 영화든, 글쓰기든, 음악이든, 무엇이든 아는 만큼 더 재밌게 보고 즐길 수 있지 않나. 당신과 남은 인생 더 재밌게 즐기고, 무수한 변수의 파도를 서핑하듯 살기 위해 당신을 좀 더 연구해 보겠다. 관찰하고 기록하고 공부해 보겠다. 늘어나고 쌓여가는 결혼 연차에 부끄럽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