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동료의 뒤통수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흰 머리카락 한 올. 검은 머리들 사이에서 길게 난 흰 머리카락에 눈길이 계속 간다.
집에 와서 내 뒤통수를 비춰보았다. 탁상용 거울을 들고, 뒤로 돌아, 화장실 벽거울에 비친 뒷머리를 면밀히 살펴본다. 아, 나에게도 있었다. 실낱같은 희망이. 아니, 있어서는 안 되는 실낱이. 뽑아내고픈 흰 실오라기 하나가. 아니, 하나가 아니네. 둘,, 셋,, 넷,,, 이럴 수가.
여기서 나는 인생의 심오한 진리를 하나 발견한다. 나 혼자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뒤통수에 난 흰머리 한 올을 뽑을 수 없다는 걸.
흰머리 뽑기는 고도의 정밀함이 요구된다. 일단 거울 앞에 서보자. 한 손으론 머리카락을 솎아내어 집고 있고, 다른 한 손으론 핀셋으로 솎아낸 머리카락 중 흰머리카락 하나를 정확하게 집어 뽑아낸다. 그러나 가능한 부위는 앞머리와 옆머리에 난 흰 머리카락.
뒷머리는 갖은 애를 써보았으나 실패였다. 일단 큰 거울에서 뒤를 돌아 한 손으론 작은 거울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핀셋 집은 손으로 흰머리카락을 찝어야 하는데, 무수한 머리카락들 사이에서 솎아냄 없이 흰머리카락만 집어 뺀다? 불가능이다. 팔이 세 개면 모를까.
"OO야~ 아빠 뒤통수에 난 흰머리 좀 뽑아줄래?"
아이고, 결국 나도 그 어른들이 하던 그 말을 아이에게 하고 있구나. 어쩔 수 없다. 뒤에 난 흰머리는 나 스스로 뽑을 수 없으니. 뽑지 않고 그대로 두자니 검은 머릿속 길게 난 흰머리가 눈에 띄는 걸 지금은 견딜 수 없으니까.
피부에 주름이 생기는 것처럼 흰머리가 생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이다. 지금은 드문드문 난 뒤통수의 흰머리카락이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걷잡을 수 없이 많아지겠지. 그때는 딸아이에게 뽑아달라고 얘기하지도 못할 거다.
아이가 꽤나 흰머리를 잘 골라내어 뽑는다. 일곱 살인가 여덟 살 때는 검은 머리카락도 두세 개씩 같이 뽑아 비명을 지르게 하더니, 이제는 아주 능숙하다. 편안하다. 흰머리가 뽑히는 시원함이 있다.
곧 흰머리가 뒤통수를 장악하기 전까지 아이에게 종종 흰머리 뽑기를 부탁해야지. 이것도 이때 아니면 더 못하는 거니까. 용돈을 주며, 뒤통수의 두피와 머리카락으로 아이의 손길을 느껴야겠다. 못 견뎌하지 말고 이렇게 점점 받아들이는 거다. 나의 일부로. 자연스러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