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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시옷 Nov 20. 2024

이게 끝이야? 무슨 소설이 이렇게 짧아.

킬러 문항 킬러 킬러, 이기호 외 13인

우리 사회의 먹고사는 일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자  <월급 사실주의> 소설 동인을 만들었던 장강명 소설가가 또 하나의 소설 동인을 탄생시켰다. 이번에는 우리 사회에서 먹고살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대학 간판을 따는 일,  '교육'의 문제를 다룬다. 총 14편의 소설들이 아주 길어도 10장을 넘지 않고 어떤 소설은 4장짜리다. 소설 한 편이 3분 안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긴 글 읽기가 쉽지 않은 이들에게 최적의 소설일 수도 있지만, 무슨 상황이 전개되는 중인지 이해하자마자 끝나버려 허무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 느낌,

누군가에겐 소설을 멀리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해서, 이번 연재의 주인공으로 낙첨했다.


소설은 '갈등'의 미학을 담은 예술이다. 내적 갈등, 외적 갈등이라는 말을 학교 국어 수업 시간에 종종 들었을 것이다. 인물과 인물의 대립인가? 인물과 집단, 혹은 사회와의 대립인가? 인물이 내부적으로 심리적 갈등을 겪는가? 이렇게 배웠지만 실제 소설을 읽으면서 수업 시간에 배운 갈등 유형을 염두에 두고 읽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 때는 반드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인물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으며, 무엇이 문제인가.


표제작 <킬러 문항 킬러 킬러>, 장강명


 수능날 아침, 고사장으로 향하기 직전 주황색 연질 캡슐을 사이에 둔 아버지와 아들 팽팽한 긴장감 위에 시작한다. 주황색 캡슐은 최대치의 집중력을 발휘하게 하는 약, 그러나 아무나 구할 수는 없는 약이다. 아버지는 대학 교수, 엄마는 치과의사로 이들이 상류층이 아니면 누가 상류층일까 싶을 정도의 부모라서 겨우 구한 약인데, 아들이 먹기를 거부하고 있다.

짧은 소설이니만큼 길게 흘릴 스포도 없다.

결국 아들은 알약을 입에 털어 넣는다. 팽팽하던 긴장감이 안개처럼 걷히고 부부는 짧게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러나 소설 속 인물들은 영원히 모를 이야기의 진짜 결말 앞에서 독자는 갈등의 본질을 알아챈다. 아버지(개인)와 아들(개인)의 갈등이 가정의 울타리를 너머 사회로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다른 아이>, 박서련


주인공 엄마는 아이의 영어유치원 담임교사를 만나러 가면서부터 끊임없는 내적 갈등에 휩싸인다. 커피라도 사갈까 말까, 하고. 그러나 상담이 시작되면, 외국인 선생님 마이클과의 갈등이 전개된다. 한국어가 묘하게 유창하면서 애매하게 무례하기도 한 마이클은 왜 소꿉놀이의 역할을 남자아이들끼리 하도록 내버려 두었는가.

마이클의 전언대로 내 아이가 먼저 제안한 것이라면, 내 아이가 게이란 말인가?

'그런 문제'라면 걱정할 것 없다는 말을 듣고 싶은 엄마는 예상치 못한 질문을 듣고 얼어붙는다.

(어쩌면 얼어붙는 것은 독자일 수도 있다.)

마치 시를 읽는 것처럼 화자의 정서에 깊이 이입되었다가 한 순간 빠져나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마도 박서련 소설의 매력이자, 이 소설집의 의도를 잘 드러내는 장치라 여겨진다.


소설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란 구성 단계를 거치며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인물의 캐릭터를 드러내고 주제를 형성해 간다. 그런데 이 소설은 갈등이  해결 단계에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위기이자 절정인 순간, 극적이고도 불편한 순간, 위기이자 절정인 순간이 곧 결말이다.

왜냐하면 그게 이 소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독자로 하여금 불편하게 하는 것,

대한민국 교육의 현재를 상기시키는 것.

한 개인의 도덕적 문제가 아니고, 한 가정의 자식 농사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 전체가 고민해 보아야 할 큰 갈등 상황 속에 우리가 놓여 있다. 도대체 해결 방법이 있긴 있을까? 하고 질문한다.

그러니 너무 짧은 소설에 당황하지 마시라, 해결은 어렵고 갈등은 산재한 우리 삶과 똑같다고 생각하면 조금 관대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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