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올해가 가기 전에 딱 한 권의 소설을 읽는다면?
스스로에게 희망이나 사랑을 줄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해 지우는 자신에게 겨우 '할일'을 줬다. 그중 하나가 연필 가루 위에 연필 가루를 얹는 일, 선 위에 또 다른 선을 보태는 일이었다.(8쪽)
지우는 어려서부터 지우개를 좋아했다. (중략) 훌쩍 키가 자란 뒤에도 지우는 종종 우울에 빠져들 때면 손에 미술용 떡지우개를 쥐고 굴렸다. 그러면 어디선가 옅은 수평선이 나타나 가슴을 지그시 눌러주는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대단히 훌륭한 사람은 될 수 없어도 그럭저럭 무난하고 무탈한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일었다.(8쪽)
각 문장을 둘러싼 암시와 추측, 해명과 부연이 이어졌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과정 자체가 괜찮은 자기소개가 됐다.(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