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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시옷 Nov 14. 2024

등장인물이 헷갈려요, 누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이 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올해가 가기 전에 딱 한 권의 소설을 읽는다면?


주저 없이 김애란의 신작, '이 중 하나는 거짓말'을 고른다.

김애란 작가는 첫 작품 출간부터 극찬이 자자했다. 최연소로 각종 문학상을 휩쓸 정도로 기발한 상상력과 개성 있는 문체가 독자들을 사로잡았었다. 이제는 중견 작가라는 네이밍을 붙여야겠지만, 그의 작품은 MZ세대의 감각을 섬세하게 풀어낼 줄 안다는 점에서 여전히 신인 같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이다.

스스로에게 희망이나 사랑을 줄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해 지우는 자신에게 겨우 '할일'을 줬다. 그중 하나가 연필 가루 위에 연필 가루를 얹는 일, 선 위에 또 다른 선을 보태는 일이었다.(8쪽)


무료하고 무심해 보이는 행동을 '충분히 강하지 못해'라고 표현한 문장은 타인에 대한 섬세한 상상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소설 속 인물들의 관계는 더욱 섬세하게 연결해 놓았.

지우와 채운, 소리의 이야기가 24장으로 나뉘어 번갈아 제시되는 구성을 취하고 있기에 독자가 소설 속 인물들의 관계에 한 명, 한 명 기울이다 보면 소설 초보 입장에서 지칠 수 있다.

다고 인물에 대한 정보를 메모하면서까지 읽기를 권하지는 않는다. 읽기 뒤에 '쓰기'의 과정이 필요한 분이라면 몰라도.


지우는 왜 '지우'일까?


작가가 소설을 쓰며 인물의 이름을 지을 때는 대체로 숨은 의도가 있다. 인물의 성격이나 인물이 놓은 상황을 은유할 때가 많다. 때로 독자가 가장 친근하게 느낄 평범한 이름을 짓기도 하고, 인상에 남을 만한 독특한 이름을 짓기도 한다.

춘향이와 향단이만 봐도 그렇다.

춘향이는 봄의 향기처럼, 멀리서도 알아볼 미모의 소유자다. 향단이의 ''은 '끝 단'이다. 춘향이 뒤를 졸졸 따라다녀야 하는 신세로 춘향이가 옥에 갇혀 죽기에 이르면 말 그대로 끈 떨어진 신세가 는 인물임을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인물이 두 세명 이상 등장할 때는 인물의 작명 이유를 추측하며 읽어보기를 권한다.


지우는 어려서부터 지우개를 좋아했다. (중략) 훌쩍 키가 자란 뒤에도 지우는 종종 우울에 빠져들 때면 손에 미술용 떡지우개를 쥐고 굴렸다. 그러면 어디선가 옅은 수평선이 나타나 가슴을 지그시 눌러주는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대단히 훌륭한 사람은 될 수 없어도 그럭저럭 무난하고 무탈한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일었다.(8쪽)


지우라는 이름과 지우개의 용도, 문장의 묘사를 연결하다 보면 한 아이의 현재와 과거를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박채운. 채운이란 이름은 '채우다'라는 단어에서 결핍이 연상된다. 이모집에 살 가족을 떠올리는 장면은 채운이의 상황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소리. 음악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아이인데, '소리'라고 작명한 이유가 가장 궁금했다. 손 잡는 행위에서 죽음을 예감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 소유자의 이름이 왜 '소리'인지 추측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깊이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만약, 이름에 담긴 의도 파악이 어렵더라도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독자는 인물을 상상하는 동안 적절한 속도와 온도로 읽었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타인을 향한 연결과 이해의 연습이 소설 읽기로 가능하다면 바로 이런 방식 때문이다.


'2024년의 나'를 소개해 보세요.


한 해의 마무리를 이 소설로 정한 이유는 제목이면서, 주제를 암시하는 '이 중 하나는 거짓말'이란 게임 때문이다.

채운이 전학을 왔을 때 담임 선생님자기소개의 한 방법으로 학기 초 학급에서 했던 '이 중 하나는 거짓말'을 제안한다.

자신에 대한 다섯 개의 문장을 말하되, 한 문장은 거짓이어야 하는 간단한 규칙이다.


각 문장을 둘러싼 암시와 추측, 해명과 부연이 이어졌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과정 자체가 괜찮은 자기소개가 됐다.(16쪽)


지우와 채운과 소리의 삶에도 진실과 거짓은 섞여 있었다.

진실이라고 짐작한 일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라고 믿고 싶은 일이 진실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 아이들의 성장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모여 '이 중 하나는 거짓말' 게임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해명과 부연이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깨닫게 될 것이다.

훌륭하거나 멋진 일상은 아니었지만 이만하면 무탈해서 감사한 한 해였다고.

2025년의 내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면, 얼마든지 기대해도 좋겠다는 마음으로 또 한 권의 책은 고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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