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WCO는 대략 150여 명이나 되는 다양한 국적의 무역·통상 전문가들이 근무하는 국제기구이다.
난 그곳에서 2016년 7월부터 근무가 시작됐다.
우리 가족은 워털루라는 중소 도시에 살게 되었으며, 위치는 브뤼셀 남쪽으로 20킬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나폴레옹이 영국·프로이센 연합군에게 크게 패전한 워털루 전투, 바로 그곳이다.
그래서 나폴레옹과 웰링턴 박물관이 있고, 프랑스 군대의 대포를 녹여 만든 사자 동상도 보인다. 그 사자는 프랑스를 바라보며 앞으로 벨기에 땅을 넘보지 말라는 듯이 눈을 부라리고 있다.
본래 근무하는 3년간 살아야 할 집을 임대하기 이전에, 임시주택에서 한 달간 기거를 하는 게 보통이며, 여러 부동산을 돌아보고 사용할 중고차도 구매하는 일련의 적응과정을 거친다.
첫 출근 날, 아침에 일어나 스마트해 보이는 넥타이를 거울 앞에서 두세 번 자꾸 고쳐 메 보다가, 결국은 처음 택했던 보라색 스트라이프를 목이 쪼이도록 -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 - 단단히 메고 첫 출근길에 나섰다.
국제 신사는 단정하고 깔끔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반복적인 당부 때문이었다. 나이 40살이 넘은 중년의 나이임에도 어머니의 잔소리는 굳이 듣고 실행하는 편에 속했다.
임시 주택 앞의 파란 풀밭은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 여러 달팽이들의 행진을 육안으로도 확연히 볼 수 있었다. 여유롭게 촉촉한 비로 샤워를 즐기며 동행하는 달팽이들의 춤추는 듯한 모습이 부럽기만 했다.
더군다나 그 달팽이들은 그 무거운 골뱅이 모양의 집도 등에 지지 않고 긴 몸을 늘어지게 기지개 켜며 행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회사에서 일어날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하는 복잡함 그 자체였기에 달팽이들의 그러한 여유는 내 모습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과연 벨기에에서의 해외 생활과 국제 무역 업무에 잘 적응하고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워털루 역에서 기차 타고 출근하는 도중에 미국 출신 국장과 깐깐하다고 소문난 인사 담당자를 만났을 때 멋있게 써먹으려는 영어 문장 쪽지를 남 모르게 여러 번 꺼내봤다, 집어넣다를 반복했다. 이제 그 문장들의 암기는 확실히 한 것 같아서 그나마 마음이 좀 놓였다.
처음에 브뤼셀 노드(북) 역에 도달했을 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기차에서 내려 WCO까지 5분간 걸으면서 큰 빌딩들이 보이자, ‘저 건물 중에 하나겠지’라고 생각하니 심장이 쪼여오는 압박을 느꼈다.
막상 큰 철문 현관에 다다르고, WCO라는 각 잡힌 강철 문패를 보고 왼쪽 안으로 꺾어 들어갔는데..... 빌딩 숲 안에 옹아리를 튼 연꽃처럼 야무진 5층짜리 건축물이 보였다.
처음 보는 순간 “그나마 건물이라도 위압적이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며 피식 웃었고, 쪼였던 심장이 허리띠를 풀자 탱탱한 고무장갑처럼 부풀어지는 거만함을 잠시 즐기기도 했다.
“그래 별거 아니야. 외국인들이 피부와 머리색만 다르지, 똑같은 사람일 거야”
라며 아랫배의 단전을 따뜻하게 끌어 모았다. 절대 당황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입술을 풀면서 여유 있게 현관을 열고 들어갔다.
보안 요원과 눈이 마주치면서 내가 외운 영어 문장을 입 밖으로 뱉어내려는 순간, 그는 2초간 흔들리는 내 동공과 입술을 보자마자, 먼저 빠르게 내게 말을 내뱉었다.
“Can you show me ID or passport?.... Are you a new staff here?"
“Sure. Yes, I am. Here you are."
라고 나는 자연스럽게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말한 것은 눈동자에 힘을 주고 ‘아, 패스포트!’였다. 그리고, 가방 속에서 여권을 꺼내 보였다. 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들을 스킨 헤드의 노련한 보안요원에게 이미 들켜 버리고 말았다. 임시 배지를 받아 든 나는 어설픈 미소로 ‘땡큐 베리 머취“를 소심하게 외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안내받은 3층으로 올라갔다.
내가 너무 일찍 와서 다행히도 복도는 조용하고 사무실들의 불빛들만 줄지어 목을 내밀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국인의 성실함인지, 조급함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출근 시간보다 30분 정도 미리 와 있었다. 대부분의 직원은 조기 출근도 없을뿐더러 야근도 없었고 주말 근무도 없었다.
아침 8시 이전에는 정문이 열리지 않고, 오후 7시 이후에는 강제로 문을 닫고 보안요원은 불빛이 있는 방의 전기불을 모두 꺼 버리며, 주차장 문까지 폐쇄시킨다. 급한 일이 남아 있다면 집에 가서 노트북으로 작업해야 하는 국제 표준화된 작업 환경이라 하겠다.
낯선 사무실 3.51호 - 둘만 쓰는 4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서로 마주 보는 책상 구조인데...
내 앞 친구는 누구일까? 영어를 얼마나 빠르게 말하는 친구일까? 날 잘 도와줄까, 아니면 한숨 쉬면서 발음 나쁜 동양인이라고 나를 무시할까?
온갖 잡념 속에 허리를 곧추 세워 앉아 있는데, 어느새 넥타이로 몸살을 앓고 있는 목 주변의 땀이 흥건하게 느껴진다. 답답하면 풀어버리면 될 것을 쯧쯧...
끝내 엄마의 말대로 넥타이를 풀지 못하고 소심하게 다리만 떨고 앉아 있다. 벌써 워털루 임시주택에 남겨 둔 아이들과 아내가 보고 싶어서 퇴근하고 싶어 진다.
낯선 곳의 공명은 사람을 위축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앞에 있는 컴퓨터를 로그인해 보려는데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넣으라고 한다.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도 몰라 그저 무심히 내려보는 벽만 쳐다본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직원들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자신감 넘치는 하이 톤의 영어 발음, 양 볼에 스킨십하는 프랑스식 인사와 큰 웃음소리들....
'저들은 즐거운 일들이 많은가 보네'.
난 도대체 이런 분위기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사실상 복도를 지나가는 즐거운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창문 쪽을 쳐다보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저함 없이 들어와 아침인사를 하고 악수를 건네는 남아공 출신인 그녀의 이름은 Hermie였다. 흑인이지만 아담한 체격이었고, 눈의 쌍꺼풀이 컸고 치아가 유독 하얗게 보였다. 비록 내 사무실 짝꿍은 아니었지만, 한참 일방적인 수다를 떨다가 자기 사무실로 걸어갔다.
아까 보았던 보안요원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쾌활하여 나름 자연스럽게 영어가 들리고 계속되는 질문에 간신히 단답형 생활영어로 디펜스 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에게 밝은 에너지를 전달하는 하이톤의 목소리, 하이힐 소리를 내며 걷는 작고 정 많은 수다쟁이였다.
난 혼자 속삭였다.
‘나도 모국어로 말한다면 저렇게 까불고 다닐 수 있을 텐데...’
그녀가 가고 나서 어줍지 않게 주머니 속의 닳아버린 쪽지를 다시 꺼냈다 읽어 보려다가 그냥 휴지통 속에 집어넣는다.
하지만, 그녀는 그 해 겨울에 3년의 파견 임기를 마치고 그녀의 나라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돌아갔다.
내가 벨기에 생활에 적응하는데 6개월간 친근하게 도와주었던 Hermie를 위해 나는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싶었다. 그래서 마음을 담은 영문 시를 만들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밤 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시상이 떠오르자, 1시간 만에 훌쩍 쓰게 되었다.
와이프와 대학생 시절 연애할 때 몇 번 해봤던 시 쓰는 감성이 20여 년 만에 먼지를 털어내니 꿈틀대기 시작했다. Ana 국장 비서인 Carine은 예쁜 색지로 그 시를 인쇄해 주었고 앤틱한 액자 속에 담아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송별 파티에서 마이크를 잡고 100여 명의 청중 앞에서 낭독하게 되었으며, 중간에 감정이 복받쳐서 울컥하였더니 그녀가 마이크를 받아 마지막 운율을 마무리하는 영화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그 시의 내용은 아래와 같으며, 파티 홀에 서 있던 청중들의 반응도 좋았고, 뭇 여성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은 그녀의 행복이 묻어난 미소와 눈물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Confessing in front of her name
Honestly, I'd like to confess.
Whenever seeing your round and cute face,
I am melting away.
Eagerly, I'd like to cheer up you.
Even though you are tiny, you already have an huge heart for sure.
Rudely, I'd like to advise to you.
Even if you were in the end of corridor,
I could hear your laughing sound and singing.
Without you, it would be calm like library.
Monotonously, I'd like to hear your greeting
again and again.
"Mr.Kim, How are you?" all the time, without skipping just once.
Idealy, I'd like to resemble your big smile.
You are inclined to disseminate some fresh air
to all of us.
Endlessly, I'd like to confess once again.
We've liked you and will miss your highhill shoes, curly hairs, gorgeous pants and smile like jewelry.
Thank you in the meantime and see you soon, HERMIE!
그녀의 이름 'HERMIE'의 한 글자, 한 글자를 각 시구의 첫 알파벳으로 배치하고 쓰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써졌다. 그만큼 그녀에게는 쓸 콘텐츠는 너무 많았고, 진심과 웃음을 전해주고 싶은 내 마음, 그뿐이었다.
남아공 출신 Hermie가 떠나기 전날 찍은 영시 프레임
원래부터 알고 있었지만, 누군가 떠나갈 때는 모두 아쉬워 하지만, 며칠만 지나면 그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도 하지 않을 정도로 서서히 잊혀간다.
모든 존재는 시간이 가면 먼지처럼, 담배연기처럼 그렇게 흔적이 사라진다. 나는 그 허탈감에 꽤 오랜 시간 슬럼프를 맞이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원래부터 이별이 이런 것이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