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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핫수진 Oct 22. 2023

삶의 무게 중심

걷기, 쓰기, 읽기



 워케이셔너(*)로서 내가 추구하는 여행의 본질은 ‘떠남’보다는 ‘머무름’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언제 어느 곳에서나 일상의 연속성을 놓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 앞으로 워케이션(Workation, Work와 Vacation의 합성어로 휴양지에서 일을 겸하는 것을 의미하는 합성어) 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워케이셔너(Workationer)'란 단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일상의 연속성을 어떻게 지키냐고? 그 답을 찾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다. 일례로 평소 샤워로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은 그 행위를 하지 않으면 온전한 정신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없다. 또 누군가는 헬스를 하지 않고는 찝찝한 마음을 버리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낼 것이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각자의 삶을 지탱하는 요소들이 있다. 그것들이 적당한 균형을 유지할 때, 다시 말해 삶의 무게 중심이 온전히 제자리를 지킬 때 일상이 제대로 유지된다.


 나의 경우에는 '걷기, 쓰기, 읽기'라는 세 가지 행위가 삶의 세 각을 이룬다. 트레드 밀 위를 걸으며 열정 넘치는 아침을 맞이하고, 하루종일 지식의 소비와 ~의 배출로 지친 정신과 마음을 독서를 통해 충만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감사와 생각의 변화를 기록하며 지난 하루를 털어낸다. 이 세가지가 완벽한 무게중심을 이룰 때 일상이 온전히 굴러간다. 한국에 있든, 지구 건너편에 있든 내 삶의 무게중심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날의 기록


 오늘은 라벤더 향으로 가득한 작은 섬, 흐바르에 한국의 일상을 고스란히 옮겨 본다.


 가장 먼저 아침에 일어나 레깅스를 꺼내 입고 섬의 가장 높은 곳으로 향했다. 트레드 밀 위를 걸을 때와 달리 매 순간이 새롭다. 방에 돌아와 가장 익숙한 한식으로 배를 채운 뒤, 노트북 앞에 앉아 금세 오피스 모드로 돌입한다. 해가 질 때쯤 다시 마을로 돌아가 섬 곳곳을 한참 쏘다니다 방에 돌아와 읽고 쓰기를 반복한다.


 짧지 않은 여행으로 일상의 패턴을 잃어버릴까 두려웠으나 반나절만에 달리는 것도, 일하는 것도, 읽고 쓰는 것도 익숙해지는 것을 보니 신기하다. 내가 그리는 미래의 일하고 살아가는 방식에 확신이 생기는 순간이다.


 이처럼 내 삶의 무게 중심은 여행 중에도 여전히 작용중이다.












무게 중심 1. 걷기


 작게 존재하기 위해 돌로미티로 향했다. 이 곳의 여행은 9할이 '걷기'다.


 첫 걸음은 설레는 마음과 시끌벅적한 웃음과 함께 시작한다. 광활하고 신비하며 거대한 자연 속을 걷고 걷고 또 걷다 보면, 거칠게 들고 나는 숨만이 남는다. 내일의 나도, 1년 후의 우리도 없다. 그저 머리와 마음을 텅 비운 채, 나의 모든 고군분투를 이 찰나에 담는다.


 찾았다. 우리가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 끊임없는 걸음과 들숨 그리고 날숨으로 점철된 이 곳을 사랑하는 이유.

무게 중심 2. 쓰기


오늘은 낡은 재즈바에 앉아 글을 쓴다.


동양 여자 홀로 이 어둑한 지하에 들어서자 시선이 닿는다. 흰머리 지긋한 노신사가 흐믓한 미소로 와인을 선물한다. 다수가 하나의 분위기에 어우러지는 경험이 꽤나 오랜만이다. 코로나가 완전히 잠든 것만 같다. 수영인지 춤일지 모를 날갯짓을 해대는 저 남자는 곧 날 것 같다. 그 옆의 단발머리 여자는 노래가 잠시 멈출 때마다 까마귀가 되어 소리친다. 나도 뒤지지 않으려 괜시리 식탁보 밑의 두 다리를 분주히 까딱거려본다.


 그 여자가 다가와 작가냐고 묻는다. 손끝에서 분출되는 텍스트를 이어 집(家)을 짓는다(作)는 의미에선 그럴지도. 술에 한껏 취한 상대와 긴 대화를 이어나갈 자신이 없어 일기라고 둘러댄다. 

 1837년부터 이어진 역사의 한 시점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왠지 비현실적이기만 하다. 그 몽롱함을 기억하기 위해 오늘도 쓴다.

 作家

무게 중심 3.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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