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글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구상했다. 걱정도 조금 들었다. 나는 미술 전공자도 아니고 미술에 관해 일자무식에 가까운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쩐지 신기하고 신비한 기분을 적어두고 싶었다. 이 글은 인사미술공간의 전시 <수퍼 히어로>전의 1층에서 열리는 우한나 작가의 <파자마 파티>에 대한 글이다.
나는 전시장에서 관람객 응대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관람의 유희보다 월급이 보장되는 노동으로서 먼저 전시장을 찾은 것이었다. 그런데 전시장에 들어서자 마자, 컬러풀한 커텐들과 롤러스케이트에 마치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은 아이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뭐야, 이런 일이라면 꽤 근사하잖아. 다양한 소품들이 벽에 걸려 있거나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고 물감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나는 전시 팜플렛을 읽고 그 공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소녀들이 한 바탕 놀다간 공간. 여성 히어로에 대한 새로운 모색.
아르바이트를 하러 내가 사는 동네를 떠날 때 마다, 나는 무대에 오르러 먼 길을 가는 기분이 든다. <파자마 파티>는 하나의 쇼가 끝난 무대같다. 나는 텅빈 무대를 지키는 일을 하러 전시장을 찾는다. 이렇게 생각하니 여러 디바들의 댄스곡이 떠오른다. 엄정화의 “ending credit” , 그리고 티파니의 “I just wanna dance”. 나는 실제로 분당에서 서울로 가는 출근길에 케이팝을 큰 볼륨으로 듣는다. 안전한 신도시에서 근사한 카오스로서의 대도시로 진입하면 내 마음의 풍경도 조금씩 다양한 빛깔을 얻는 것 같다.
대게 전시를 찾는 것은 이십대 청년들이다. 나는 친절하게 그들을 안내한다. 활기 어린 그들의 옷차림을 좋아한다.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인지) 힙스터를 비판하는 글도 많이 읽은 적이 있지만, 나는 대체로 멋부리고 나오는 젊은이들이 생기 있어 보인다. 그들은 야광 해파리 같다. 그들의 젊음과 개성이 아름답고 멋있다.
나는 청년 관객들을 보며 지난해부터 시작된 나의 새로운 취미, 댄스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이 창궐하기 전에, 춤을 추러 밤이 되면 서울로 나왔다. 주중에는 레스토랑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멋진 음악을 트는 클럽을 예매하고, 반짝이는 원피스를 입고서 춤을 추러 다녔다. 나는 가슴 뛰는 비트에 몸을 흔들며 즐거웠고, 또 집으로 돌아가는 새벽 택시 안에서 너무나도 근사한 공허감을 맛봤다.
아마도 단지 춤을 추고 싶은 소녀들이 놀다 사라져 버린 장소가 구현 된 곳이 이 전시장일 것이다. 히어로가 대수인가. 자기 자신이고 싶은 여자아이들, 또 그렇게 행동한 여자아이들이 수퍼 히어로이다. <파자마 파티>의 증발한 소녀들은 아마도 특별함에 대하여, 히어로란 말에 대하여 아무런 반감이 없을 것 같다. 그녀들은 명명되는 존재들이지 명명하는 존재가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다.
신기한 경험을 했다. 전시장에서 일을 시작하고 난 후, 휴무일에 친구와 호캉스를 갔었다. 밤이 되었고, 우리는 복숭아 맥주를 마시며 구십년대와 이천년대 댄스음악을 틀었다. 그리고 미친 듯이 춤을 췄다. 정말 파자마 파티를 벌인 것이다. 친구에게 구십년대 유행가란, 내게 이천년대 유행가란, 세포를 깨어나게 하고 눈물이 흐르게 하고 마음을 건들고 몸을 흔들게 하고 목청을 내게 하는 ... 우리를 우리답게 하면서 저 멀리로 보내버리는 어떤 웜홀같은 거다.
나는 일주일에 다섯 번 출근한다. 오늘은 금요일이었다. 전시장에 있으면서 작품들이 하루하루 새롭다. 어떤 날은 형광색 베개더미에 꽂힌 다트들을 발견하고 여러 가지 상상을 했다. 어떤 날은 천으로 만든 몰랑몰랑한 호박을 보고, 대학시절 무용지물이지만 아름다운 자수 손수건을 선물해준 옛친구를 추억했다. 퇴근을 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나는 전시장의 불을 끄고, 음악을 끄고, 그렇게 무대의 막을 내린다. 노동자이자 마지막 관객으로서 나는 매일 꿈같은 작품과 공간과 작별하고 평범하고 안전한 나의 동네로 돌아온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밤의 버스 안에서, 나는 애절한 댄스곡을 들으며 생각에 잠긴다.
최근에 내가 껍데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때문에 슬픈 기분이 들어 울기도 했다. 그런데 <파자마 파티> 공간 속에서 하루하루 내가 작품들을 닮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록달록한 작품들과 비슷한 뉘앙스를 띄게 되는 껍데기로서의 나. 나는 작품도 나 자신도 비난하는 게 아니다. 그냥 공명했다고 느꼈다. 퇴근길 대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내 텅 빈 기분이 <파자마 파티>의 공간과 공명한 것 같다고 짐작했다. 표면을 살아가는 것은 옳지 못한가? 나는 짙은 허무와 고독을 경쾌하게 다루는 이들이 사랑스럽다.
<파자마 파티>에서 내가 제일 먼저, 크게 느낀 것은 ‘색깔’ 과 ‘스타일’ 이다. 의미와 깊이는 처음에는 잘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파자마 파티>의 색깔과 스타일은 에너지를 발산한다. <파자마 파티>는 아마도 사유를 이끌어내려는 이야기가 있는 전시가 아니다. <파자마 파티>는 내 생각에, 에너지를 발산하는 하나의 콘서트다. 여기엔 음악이 있고 무대 연출이 있다. 이 공간에서 관객은 생동감을 다양한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다.
나는 올해 여름 나의 일상이 된 한 공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싶어 글을 썼다. 우한나 작가의 전시 <파자마 파티>를 다정하게 편들고 싶다. 모두가 무난하고 평범하고 싶어할 때, 우한나 작가는 그냥 한바탕 신나게 놀았다. 작가는 본인이 겁이 없는지 자각조차 못한 채로 작업을 한 게 아닐까? 나는 근래에 선명한 원피스를 좋아하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파자마 파티>에서 일하게 되었고. 어두컴컴한 밤 아름다운 불빛들 사이로 도로를 달리며 많은 우연들에 즐거워 웃었다. 애늙은이가 되기 보다, 영원한 젊음, 젊은 정신과 영혼을 지닌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여기서는 우한나 작가와 이 전시회를 찾는 모든 관객들)에게 이 편지를 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