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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유 Ayu Aug 25. 2024

스페인 워홀 1년 회고

2023년 6월 13일 워홀비자로 스페인으로 왔었는데,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 벌써 1년이 되었다!


1년 동안 뭘 했지... 돌아보면 딱히 한 게 없다.

어학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취업을 한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지금 내 나이대에 사람들이 하는 것들을 아무것도 해내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 때 전교 1등을 하면서부터 달라졌던 내 인생,

전교 1등, 반 1등, 수능 1등급, 명문대, 전문직을 향해 달렸던 20년...

그리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허전했지만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에 대해 불평해선 안된다고 생각하고 억누르면서 일했던 6년.


이 모든 것들이 진정 내가 원했던 게 아니라는 게 명확해지고 나서 용기 내어 방향을 틀었던 스페인행이었기에 무언갈한다(Do) 기보다 어떻게 존재(Be) 할 것인지, 나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습했던 1년이었다.



1년을 돌아봤을 때, 가장 바뀌었다고 느끼는 점을 간단히 적어볼까?


#1

한국에서 값을 매겨주는 것들에 따라 반듯하게 살아왔던 내 성취들은 스페인에 왔더니 아무것도 아니더라.


한국어를 야무지게 잘하고, 좋은 직업을 가졌고, 좋은 물건을 가졌던 그런 것들이 여기서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조건으로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스페인어를 못하는데 그런 게 통할 리가 있나!


그 모든 갑옷들을 벗고 나니 상처 많고 사랑이 고팠던 내면아이를 여실히 마주했다.


있는 그대로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어린 나,

스스로 못나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감과 자존감이 없었던 나.


1년 동안 그런 내면아이를 스스로 관찰하고 알아주고 돌보고 달래느라 나와의 시간을 가장 많이 보냈고, 모든 갑옷을 다 벗고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인정받고 소통하는 데에는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를 고민하고 연습했다.


#2

사실 의사소통에 있어 말의 내용은 7%를 차지할 뿐 표정, 억양, 제스처 등등의 비언어적 요소가 9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나는 스페인어를 잘 못하지만, 그걸 보완할 수 있는 비언어적 요소를 적극 활용했다.


적극적으로 미소 지으며 인사하고, 눈 보고 이야기하고, 천천히 말하고, 모르는 건 되묻고 또 공부하고.


이런 태도를 연습하면서 사람들 하나하나의 매력이 가지각색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말이 100% 통하지 않아도 그 사람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배웠다.


5월에 런던 갔을 때, 사람들이랑 스몰 톡이 롱 톡이 되는 일들이 자꾸 생겨서 이게 무슨 일인가 했는데 (심지어 다 여자였고, 나한테 아이 키우냐고까지 물었음...)

그래서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기지? 싶었는데 따뜻하게 바라보고, 경청하고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내 따뜻한 태도가 엄마 같아 보였나?로 정리가 되더라.


#3

가끔 이런 자세가 통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유난히 퉁명스럽거나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까지도 만나봤는데 그럴 때는 저 사람 마음속에 화가 많나 보다. 하고 넘길 수 있게 되었다.


똑같은 자세로 모든 사람을 대하는데 누구는 잘 받아주고 누구는 잘 안 받아주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맞이하다 보니, 이건 나의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문제라는 게 너무나 명확해졌다.


한 번 말 거는데 쳐다보면서까지 무시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순간 멍... 하고 화가 나긴 했는데

이게 내가 사람과 소통할 때 가장 두려워하고 걱정하던 일 아니던가?

그걸 그대로 마주했더니 이 정도의 타격이구나? 별거 아니네?라고 반응했던 나.

 오히려 스스로 만들던 걱정과 두려운 상황을 현실로 마주하고 나니 그런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졌던 순간이 되었다.


#4

사람들이 나를 조건을 매기고 따지고 평가한다면 그건 그 사람들에 대한 것이지 나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경험을 자주 하면서 나는 사람들에게서 무엇을 볼 것인가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유쾌하고, 재밌고, 긍정적이고, 칭찬이랑 농담을 적절히 잘하고

상대방에게 진심 어린 호기심과 관심을 보이고

자기만의 아우라로 카리스마를 풍기는 사람


스페인에서 1년간 살아보니 매력 있다고 느꼈던 사람들은 이런 특징을 가졌더라.


#5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가득 차 있던 성과주의적 태도를 잘 정화하고 내면을 새롭게 채울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1년 동안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했던 이 시기는 정체의 시기가 아니라 앞으로 꽃 피울 인생을 위한 밑거름이었다.


가진 게 없고 드러내지 않아도, 돈을 벌지 않고 성과를 내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살아도 행복하다는 걸 경험하면서 타인의 판단평가라는 시선에서 벗어나 진짜 내 삶의 주체성을 고민하기 시작하지 않았나…


언젠가 흐름에 따라 또다시 성취를 하고, 성공을 하고

그러다 또다시 비움의 시기가 오더라도 그때는 외부적 조건에 따라 기쁘거나 낙담하지 않고 언제나 내가 나를 최선으로 돌보고 지지해 줄 수 있다면... 그런 자세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내 삶의 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사진앨범을 돌아보다가 이런 사진을 발견했다.

10년 전에 어디에서 찍어둔 사진이던데, 그때 텍스트로 감명받았던 글을 이제야 경험하고 체득하고 있는 것 같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힘든 일들에 마음을 뺏겨 뿌리째 흔들리기보다는 내가 아닌 것들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나를 발견할 기회로 삼기를...


모두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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